[[분류:조선의 후궁]][[분류:청주 한씨]][[분류:1581년 출생]][[분류:1664년 사망]] [include(틀:조선의 후궁(중종 ~ 고종))] ||<-3><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C23352><tablebgcolor=#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C23352 0%, #C23352 20%, #C23352 80%, #C23352)" '''{{{#ffd400 조선 선조의 후궁[br]{{{+1 온빈 한씨 | 溫嬪 韓氏 }}}}}}'''}}} || ||<width=50><bgcolor=#C23352> '''{{{#gold 빈호}}}''' ||<-2>온빈(溫嬪) || ||<bgcolor=#C23352> '''{{{#gold 출생}}}''' ||<-2>[[1581년]]^^([[하성군|선조]] 4년)^^ [[10월 7일]] || ||<bgcolor=#C23352> '''{{{#gold 사망}}}''' ||<-2>[[1664년]]^^([[현종(조선)|현종]] 5년)^^ [[10월 23일]][br]{{{-2 (향년 84세)}}} || ||<bgcolor=#C23352> '''{{{#gold 부모}}}''' ||<-2>부친 한사형(韓士亨) 모친 죽산 박씨 || ||<width=50><bgcolor=#C23352> '''{{{#gold 부군}}}''' ||<-2>[[조선]] [[선조(조선)|선조]] || ||<bgcolor=#C23352> '''{{{#gold 자녀}}}''' ||<-2>6남 2녀 ^^(1남)^^ [[흥안군]][* [[이괄]]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 흥안군을 왕으로 추대한 일로 처형당한다. ] ^^(2남)^^ [[경평군(1600)|경평군]] ^^(3남)^^ [[영성군]] ^^(1녀)^^ [[정화옹주]] || ||<bgcolor=#C23352> '''{{{#gold 묘소}}}''' ||<-2>[include(틀:지도, 장소=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복지리 485-1, 너비=100%)] ----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복지리 485-1 || [목차] [clearfix] == 개요 == [[선조(조선)|선조]]의 후궁.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 [[예종(조선)|예종]] 때 [[틀:조선 익대공신|익대공신]][* 1468년 10월 28일 [[남이]]의 역모를 평정한 공로로 예종에 의해 책록된 공신. ] 1등, [[성종(조선)|성종]] 때 [[틀:조선 좌리공신|좌리공신]][* 1471년 3월 2일 예종이 승하하고 성종을 즉위를 도운 공로로 성종에 의해 책록된 공신. ] 2등에 책록된 청평군(淸平君) 한계순(韓繼純)의 6세손이며, 아버지는 한사형(韓士亨)이다. == 생애 == 1592년(선조 25년)에 12세의 나이로 [[후궁]]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종4품 숙원, 종2품 숙의, 종1품 귀인을 거쳐 정1품 온빈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한씨는 지금으로 치면 한창 젊은 나이인 28세에 [[과부]]가 된다. [[선조(조선)|선조]]가 승하하고 사가로 나가서 살았지만, 슬하에 둔 자식들이 일으키는 문제로 평온하지는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무자식 상팔자-- == 자녀 문제 == 장남 [[흥안군]]과 차남 [[경평군(1600)|경평군]]은 늙은 부녀자 뿐만 아니라 사대부를 폭행하고 재산을 빼앗고 과부를 추행하고 궁궐 하인들을 몰래 데려가는 등의 다양한 사건 사고로 [[인조]] 시절까지 지속적으로 지탄 받았다. 조정의 탄핵에도 불구하고 [[하성군|선조]]의 아들이자 왕실의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보호받았다. 그러나 역모에 휘말리자 더이상의 보호도 통하지 않았다. 흥안군의 경우,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으로 인하여 처형당하는 최후를 맞이한다. 형이 처형당한 사실을 모르지 않을텐데, 1625년(인조 3년) 이후로도 경평군은 정신을 못 차렸다. 매년 백성들의 음식과 땅을 빼앗고 몰래 도둑질한 뒤에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우는 등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심지어 자신의 집을 짓는데 돈을 안 주었다며 관원들에게서 돈을 빼앗고 채무자를 가뒀다고 탄핵까지 받았다. 현대의 일부 학자들은 경평군을 '''정신 장애'''로 보고 있고, 당시 [[인조]]는 "다른 왕자는 이같지 않을 것인데, 그 중에 경평군(慶平君)은 실성한 사람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인조실록 24권, 인조 9년 6월 1일 계묘 2번째기사. [[http://sillok.history.go.kr/id/kpa_10906001_002|#]] ] 그런데 사실 선조의 자식들 중 문제가 없는 인간이 드물다. 그럼에도 인조가 유독 경평군 한 사람을 가르켜 실성했다고 말한 것은 나이 차이 때문으로 짐작된다. [[임해군]], [[정원군]], [[순화군]]도 백성들 사이에서 악명으로 드높았지만, 나이 차이로 인해 인조 때에는 세 사람 모두 죽고 없었기 때문이다. --싸이코의 세대 교체?!-- 여기에 한씨의 막내 아들 [[영성군]]도 한몫 거들었는데, 영성군이 부리는 종이 감옥에 들어가 죄수들을 마음대로 풀어줘서 관원들을 폭행하게 하는가 하면, [[인목왕후|소성대비]]의 연제(練祭)[* 사망하고 첫 기일에 지내는 제사로 흔히 소상제(小祥祭)라고도 부른다. ]를 병을 핑계삼아 불참했다가 탄핵을 받았다. 그래도 인조가 처벌하지 않은 걸 보면 인조의 참을성이 대단할 정도다. 그리고 선조의 막내 딸 정화옹주는 태어날때부터 벙어리에 자각이 없어서 혼기가 지나도록 혼인하지 못했다. 1629년(인조 7) 왕녀가 배필이 없을 수 없다는 어명에 따라 이복언니 정선옹주[* 선조와 후궁 정빈 민씨 사이에서 태어난 딸. ]의 남편 권대임의 재종동생 권대항과 혼인하지만,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