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단양팔경)] ||[[파일:DYJS.jpg|width=900]]|| || 온달산성에서 내려다본 영춘면 일대. [[남한강]] 상류를 조망하기 용이하고 하안을 따라서 영월쪽으로 진출할 수 있는 거점이다. || ||<tablewidth=360><tablealign=right><bgcolor=#fff><tablebordercolor=#315288> [[파일:정부상징.svg|width=28]] '''[[대한민국의 사적|{{{#f39100 대한민국의 사적}}}]]''' '''{{{#f39100 제264호}}}''' || ||<bgcolor=#315288> {{{+1 {{{#fff '''단양 온달산성'''}}}}}} {{{-1 {{{#fff 丹陽 溫達山城}}}}}} {{{-1 {{{#fff Ondalsanseong Fortress}}}}}} || ||<bgcolor=#fff> {{{#!wiki style="margin: 0 -12px; border-right: 2px solid transparent; border-left: 2px solid transparent"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1px; margin-top: -6px; margin-bottom: -5px" ||<tablewidth=100%><tablebgcolor=#315288><width=22%> '''{{{#fff 소재지}}}''' ||<bgcolor=#fff>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하리 산67번지 || || '''{{{#fff 분류}}}''' ||<bgcolor=#fff>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 || '''{{{#fff 면적}}}''' ||<bgcolor=#fff> 31,640㎡ || || '''{{{#fff 지정연도}}}''' ||<bgcolor=#fff> 1979년 7월 26일 || || '''{{{#fff 제작시기}}}''' ||<bgcolor=#fff> [[삼국시대]] || ||<-2> '''{{{#fff 위치}}}''' || [include(틀:지도, 장소=온달산성, 너비=360)]}}}}}}}}} || [목차] [clearfix] == 개요 ==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에 소재한 [[신라]]의 [[산성]]. 1979년 [[대한민국의 사적|사적]] 제264호로 지정됐다. == 조사 내용 == 충청도 일대는 고대에 이른바 '중원(中原)'으로 불리던 곳으로 삼국시대 5~6세기 삼국의 주도권 쟁탈전을 벌이던 시점의 주무대였다. 그러한 바 중원지역에는 삼국시대의 성곽의 축조 밀집도가 굉장히 높은 편인데, 온달산성 또한 그러한 여러 사례 중 하나이다. 산성의 이름에서부터 [[온달]]이라 명명되었다. 고구려와 신라의 6세기대 주요 격전지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특히 아단성을 되찾아 오겠다고 했던 온달이 그 전쟁터에서 죽은 만큼 온달의 사망지, 아단성의 위치라는 측면에서 주목된 바 있었다. 그 중에서도 아단성의 유력한 후보로는 온달산성과 [[아차산성]]이 있다. 온달산성이 자리한 영춘면의 구 명칭은 을아단(乙阿但)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기록된 전설에서 온달이 을아조(乙阿朝)를 지키기 위해서 성을 쌓았다는 내용과 부합한다. 또 한편 온달산성이 구 아단성이었다는 견해를 지지하는 이들은 온달이 적시했던 공격목표는 [[죽령]]의 이서 지역이기 때문에 충청도 일대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타당하다는 것이다.[* 물론 [[아차산성]]도 아주 넓게 보면 포함되긴 한다.] 충청도 일대 중원지역의 향방을 보더라도 온달이 분개했던 시점은 6세기 후반으로 신라가 점차 중원지역으로 치고 올라오던 시점이다. 특히나 [[단양 적성비]]에도 나와있듯이 550년 즈음에는 공히 중원지역 인근으로 진출한 야욕을 드러내었다. 5-6세기 무렵 신라가 축성한 산성들이 충북, 경북 북부, 강원도 남부지방에 걸쳐 있다. 한편 아차산성이 [[백제]]의 [[책계왕]]대에 축조되었다는 기사가 있긴 하다. 하지만 아차산성은 ~~일단은~~ 현재까지의 조사내용으로 볼 때 신라산성이다. 그나마도 고구려 와당이 출토된 적이 있기 때문에 백제와 관련 있을 가능성은 더 떨어진다. 물론 아차산성을 포함한 일대에서 백제토기가 지표상에서나마 채집되므로 아차산성을 추가 발굴조사할 필요야 있겠지만, 현 시점에서는 지금의 아차산성을 책계왕 당시에 축조했다는 아차성(阿旦城[* 삼국사기에서는 단(旦)으로 표기했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파일:ODSS.jpg]] 온달산성의 북벽. 세장방형의 석재로 촘촘하게 쌓아올렸는데, 성벽의 구축 방식 자체는 [[삼년산성]]과 유사하다. 온달산성 자체적인 함정도 있다. 온달산성은 누가봐도 빼박 신라 산성이라는 점이다.[* 온달산성이 고구려에 의해서 쌓아졌다고 말하는 것은 구전 설화 및 여지도서의 기록 등을 미루어 본 것이지 고고학적인 사실관계로 본다면 고구려 산성의 특징이라고는 치성(雉)을 둔 점 말고는 없으며, 그나마도 전술적 요소지 특정 국가의 방식이라고 볼 수 없는 요소이다.] 성벽의 형태는 물론 구조적으로도 [[단양 적성비]]와 함께 만들어진 [[단양 적성]], [[삼년산성|보은 삼년산성]]과 거의 같은 구조, 같은 입지이다.[* 다만 지형적, 군사적 관점에서야 어느 나라가 와서 지었어도 당연히 그 입지를 택했을 부분이긴 하다.] 또 수구문지를 비롯하여 체성부의 외견상의 구조 등 모든 것이 빼박 신라라고 밖에 볼 수 없다. 특히 성 내부에서 바깥으로 배수하기 위한 시설 및 수구문지의 구조를 볼 때 전형적인 신라 스타일인데, 성벽 전체가 신라 스타일이라 단순 개축으로 바꾸었다고 보기가 어렵다.[* 원래 고구려 산성이 있었다면, 거의 성 전체를 뜯어고친 셈이다. 고구려 산성에도 배수시설은 있었을 텐데...] 물론 기존에 고구려 성이 있었지만 허물어져서 새로 쌓았을 수도 있고, 목책성 정도에 불과했는데 신라가 석성으로 개축하였을 가능성도 당연히 배제할 순 없다. 그래도 명백한 신라산성이라는 점은 온달의 사망지일 가능성이 아차산성보다 떨어지게 한다. 더군다나 온달이 590년에 사망했다고 친다면, 신라의 군사적인 진출과정에서 이미 6세기 후반, 7세기에는 고구려와 한탄강 등지에서 전선을 형성했다. [[고구려]]의 [[호로고루]][* 물론 그 이전에 대 백제 진출 거점으로 축조되었으나 나중에 다시 대 신라전에서도 사용된다.], 무등리 1, 2보루 등이 대표적이다. [[신라]] 역시 한탄강 남쪽 칠중성, 육계토성[* 고구려가 축조했으니 이후 신라가 점령했다고 추정하는 토성이다.]을 두는 등, 고구려와 신라의 성곽들의 대치한 양태가 확인되었다. 물론 온달이 ~~매우 흥분하여~~ 경기도 북부의 전선을 돌아서 강원도 방면을 통하여 충청도로 갔을...... 수도 있겠으나, 6세기 후반을 넘은 시점에는 [[충청도]]는 물론 [[경기도|경기]] 남부 일대에 신라 산성이 주요 거점마다 박힌 뒤였다. [[온달]] 항목의 추가적인 설명에 나오듯, 온달의 사망지는 [[아차산성]]과 온달산성 둘 다 일장일단의 근거와 약점이 있는 유력후보임은 분명하다. 진전된 성과는 아차산성의 최신 발굴성과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물론 파봐도 또 논쟁뿐이지만~~ == 그 밖에 == 온달산성이 소재하고 있는 산 아래, 온달산성의 초입 좌측으로는 온달동굴이 있다. 천연의 [[석회동굴]]로써 온달산성으로 인해서 온달동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입장료를 내고 관람할 수 있다. == 관련 유적 == 충북, 대전 일대는 소위 '''중원지역'''이라고 지칭되며 삼국시대 5~6세기의 각축장이었던 만큼 관방시설이 굉장히 많다. 중원지역의 삼국시대 산성들이 실제로 유네스코에 등재될 가능성은 낮지만 '''중부내륙 산성군'''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s-3.1.1|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등재'''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 중부내륙 산성군 * [[삼년산성]] * [[상당산성]] * 충주산성 * [[장미산성]] * 덕주산성 * '''온달산성''' * 미륵산성 == 바깥고리 == * [[https://ko.wikipedia.org/wiki/단양_온달산성|한국어 위키백과 : 단양 온달산성]]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34347&cid=46656&categoryId=46656|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단양온달산성]]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639288&cid=43065&categoryId=43065|고고학사전 : 온달산성]]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055819&cid=42840&categoryId=42853|답사여행의 길잡이 12 - 충북 : 온달산성]]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055956&cid=42840&categoryId=42853|답사여행의 길잡이 12 - 충북 : 단양 온달산성]]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011242&cid=42856&categoryId=42856|대한민국 구석구석 : 단양 온달산성]]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115193&cid=50392&categoryId=50392|대한민국 여행사전 : 온달산성]]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79711&cid=40942&categoryId=33541|두산백과 : 단양 온달산성]] == 사적 제264호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3,02640000,33&pageNo=1_1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 단양 온달산성 (丹陽 溫達山城)]] >남한강이 보이는 성산의 정상부근을 돌로 둘러쌓은 산성이다. 온달산성은 고구려 평원왕(재위 559∼590)의 사위인 온달장군의 이야기가 이 지방에 전해오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성이 언제 쌓아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조선 전기에 이미 성산성이란 이름으로 있었던 기록이 있다. > >벽의 안팎을 모두 비슷한 크기의 돌로 가지런히 쌓아 올린, 둘레 683m의 소규모 산성이다. 성 안에는 삼국시대의 유물이 출토되며, 우물터가 남아있고, 성벽 바깥부분에는 사다리꼴 모양의 배수구가 있다. 남서쪽 문터의 형식과 동문의 돌출부는 우리나라 고대 성곽에서 드물게 보이는 양식으로 주목할 만하다. > >성의 북동쪽 남한강의 강변 절벽 아래에는 온달굴이라는 석회암 동굴이 있고, 성을 바라보는 북쪽 강 건너의 산에도 온달과 관계되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성벽의 보존 상태가 좋아, 축성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유적이다. [[분류:산성]][[분류:대한민국의 사적]][[분류:성채/대한민국]][[분류:단양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