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독일 국방군/장성급 장교)] ||<-2><tablealign=right><tablebordercolor=#666> [[파일:Otto_Ciliax.jpg|width=310]] || ||<#666> {{{#FFF 이름}}} ||'''Otto Ciliax''' 오토 칠리악스 || ||<#666> {{{#FFF 생몰년도}}} ||1891. 10. 30. ~ 1964. 12. 12 || ||<#666> {{{#FFF 복무}}} ||[[크릭스마리네]] || ||<#666> {{{#FFF 최종계급}}} ||대장 || ||<#666> {{{#FFF 주요참전}}} ||[[영국 해협 돌파작전]] || ||<#666> {{{#FFF 서훈}}} ||기사십자 철십자 훈장 대양함대기장[* High Seas Fleet Badge(Das Flottenkriegsabzeichen)] || == 개요 == 세계 1, 2차대전 독일 해군의 제독. [[영국 해협 돌파작전]]의 입안자로써 기함 [[샤른호르스트(전함)|샤른호르스트]]에 승선하여 항행을 지휘하였다. == 생애 ==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기에는 [[도이칠란트급 전함|SMS 하노버]]에서 근무하였고, 1916년에는 [[타운급 방호순양함#s-7|HMS 노팅엄]]을 격침하였던 SM U-52에 배속되었었다. 이후 1918년 SM UB-96, UC-27에서 근무하였고 1차대전이 끝나고 나서도 해군에 계속 남아 있었다. 전간기였던 1936년에는 해군최고사령부 작전부의 어뢰정 사령관 겸 참모로 재직하였고 그 이후부터 1938년까지는 [[도이칠란트급 장갑함|도이칠란트급 장갑함 아트미랄 셰어]] 함장으로써 근무하였다. [[스페인 내전]]이 발발했었던 1938~1939년 사이에는 [[샤른호르스트(전함)|샤른호르스트]]의 함장으로써 참전하였었다. 세계 2차대전 기간인 1941년, 해군의 함급별 사령관 중 전함사령관에 보임되었다. 1942년 [[비스마르크(전함)|비스마르크]]의 침몰 이후, 브래스트에 남아 있던 [[프린츠 오이겐]], [[그나이제나우]], [[샤른호르스트(전함)|샤른호르스트]] 3척의 전함의 주둔지를 빌헬름스하펜으로 이전하는 [[영국 해협 돌파작전|영국 해협 돌파작전(케르베로스 작전)]]을 입안, 현장 지휘하였다. 해군력이 비교적 안습이었던 당시 [[크릭스마리네]]의 상황에서 전함들의 역할보다 항공 전력의 엄호가 더 중요했고, 영국 해군도 [[비스마르크 추격전]]에서 주요 전함들이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전함 간의 교전은 없었다. 하지만 [[크릭스마리네]]의 주요 전함들은 영국의 기뢰가 매설된 해역을 지나면서 타격을 입었고 이 때 칠리악스가 승선해 있었던 샤른호르스트함도 폭발로 인해서 큰 손상을 입었다. 결국에는 목적지였던 빌헬름스하펜까지 무사히 주요 전력을 보존하여 복귀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이후 어뢰정 총감직을 맡았다가 1943년에는 대장으로 진급하여 노르웨이 해군집단사령부의 사령관에 취임하였다. 하지만 [[카를 되니츠]]와의 마찰로 인해서 1945년, 테오도어 크란케로 교체되었다. 1945년 종전과 함께 잠시 포로가 되었지만 1946년에 풀려났고 1964년에 사망한다. 참고로 아들 오토 H. 칠리악스도 [[독일 해군|독일 연방해군]]에서 근무하였고 준장(Flottillenadmiral)까지 올랐다. [[분류:독일제국군/군인]] [[분류:독일 국방군/인물]] [[분류:제1차 세계 대전/군인]] [[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 [[분류:1891년 출생]] [[분류:1964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