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吳仁正 (1100~1155) == 개요 == 고려의 관료. 한림학사를 지낸 [[오학린]]의 증손이다. 아버지 역시 한림학사를 지낸 오질이다. == 생애 == 본관은 고창. 오인정의 집안은 5대에 걸쳐 문장을 업으로 삼았는데, 청렴했기에 가난했다. 25세에 과거에 급제해 원흥진판관에 임명된다. 지공거는 [[김부식]]. 판관에 임명됐을 때는 유능하다는 평가가 있었으나, 그 뒤로 10년동안 임용되지 못한다. 자신을 뽑아준 김부식이 권력을 얻자 김부식에게 시를 지어 바친다. >天昏月嘿夜堂淸有▨▨作老龍鳴 >하늘 저물고 달 어두운 밤에, 당이 고요한데 ▨▨ 있으니 늙은 용마저 울게 하는구나. >---- >오인정이 김부식에게 바친 고검시(古劒詩)의 일부분 김부식은 "너는 내 문하생인데, 왜 아직도 ▨▨에 이르지 못했느냐?"[* 爾爲門生, 何不早詣於▨▨]며 오인정을 [[탐라|탁라도]]구당사에 임명해 탐라로 보낸다. 오인정은 내심 수도 개경에서 근무하고 싶었으나, 김부식은 오인정의 집안이 가난하니 탐라에서 옷과 음식을 마련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유 등을 들며 오인정을 타이른다. 오인정 묘지명의 훼손이 심해 오인정이 탐라에 간 뒤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1155년에 병을 얻어 제주도에서 개경으로 돌아왔으며, 같은 해 7월에 죽고 법운산 서북쪽에 장사지낸다. == 가족관계 == * '''오인정(吳仁正)''' * 장남: 오세공(吳世功) * 차남: 오세문(吳世文) * 삼남: [[오세재]](吳世才) 오인정이 세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우리 집안은 아들도 문장을 하고 손자도 문장을 했다. 선을 많이 쌓은 집안은 반드시 경사가 남는다는데,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문장으로 업을 삼은 것이 오래니 후사는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다. 너희는 문장에 힘쓰고 또 힘써라. 삼형제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 잊지 않았다. 보한집에 따르면 세 형제 모두 문장이 뛰어났으며, 막내 오세재가 가장 뛰어나고 둘째 오세문이 그 다음이었다. 장남 오세공은 1153년 청주목장서기에 임명된다. 이양윤묘지명, 권정평묘지명의 찬자(撰者)로 이름이 남아있기도 하다. 차남 오세문은 1152년 승보시(생원시)에 합격한다. 보한집에 비서성의 승을 지냈을 때 지은 한시 녹양역(綠楊驛)이, 파한집에 장원 황빈연에게 지은 답시가 남아있다. [[분류:1100년 출생]][[분류:1155년 사망]][[분류:고창 오씨]][[분류:고려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