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align=center><:> [[파일:external/2.bp.blogspot.com/SuperMartyrio-2.5.jpg|width=350]] || ||<:> '''이름''' || [[스페인어|Óscar Arnulfo Romero y Galdámez]][br]('''오스카르''' 아르눌포 '''로메로''' 이 가르다메스) || ||<:> '''출생지''' || [[엘살바도르]] 시우다드바리오스 || ||<:> '''사망지''' || [[엘살바도르]] 산살바도르 || ||<:> '''생몰년도''' || [[1917년]] [[8월 15일]] ~ [[1980년]] [[3월 24일]] (62세) || ||<:> '''[[시복]]''' || [[2015년]] [[5월 23일]], [[프란치스코(교황)|교황 프란치스코]]를 대리한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 [[교황청]] 시성성 장관이다.] || ||<:> '''[[시성]]''' || [[2018년]] [[10월 14일]], [[프란치스코(교황)|교황 프란치스코]] || ||<:> '''축일''' || [[3월 24일]] || [목차] == 생애 == [[가톨릭]] [[성직자]]이자 [[성인]]으로 [[엘살바도르]]의 [[대주교]].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대변자'''.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원래 병약했고 학교도 12살 때까지만 다녔다고 한다. 이후에는 목수 일을 배우는 등 노동자로 일하다가 신학교에 입학, [[사제(성직자)|사제]]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유럽]]에 유학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고향에서 오랫동안 사목했고, 알콜 중독자의 재활을 지원하는 등 일반적인 사제로서의 길을 걸었다. 원래는 상당히 보수적인 인물로, 그가 [[1977년]] 대주교가 되었을 때는 군사정권 측에서 환영했을 정도로 사회정의운동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같은 사제이며 친구로 농민운동을 하던 그란데 신부가 암살당한 사건을 계기로, 반 독재운동에 가담하게 된다.[* 그란데 신부는 2020년 2월 바티칸에서 시복이 결정되었다.] 이후 [[1979년]] 쿠데타로 들어선 엘살바도르의 '''[[독재]] 정권에 항거'''하여 빈곤층을 돕고 인권침해를 고발했다. 그러다 1980년 프로비덴시아 병원 경당에서 [[미사]] 성찬기도 중 4명의 무장괴한들의 저격을 받아 [[암살]]당했다.[[https://www.abc.net.au/radionational/programs/religionandethicsreport/revolutionary-saint-oscar-romero/10359270|피격 직후 사진(노약자 클릭 주의)]] 당시 독재정부가 그의 죽음에 개입하였고, 사후 30년이 지난 [[2009년]]에야 이 사실이 정부에 의해 인정되었다. 사실 로메로 주교가 처음부터 진보 성향인 건 아니었다. 그는 본래 전통주의자였고, 독재정권의 무자비한 인권 탄압에 그리스도인으로 인권을 옹호했을 뿐, [[해방신학]]과는 거리가 있던 보수적인 [[주교]]였다. 일례로, 로메로 주교는 정통 신학 사제회로서 해방신학의 오류를 교리적으로 반박하는 임무를 맡은 [[오푸스 데이]]의 성 [[십자가]] 사제회에 참석하고 영적 도움을 받았다. 그가 [[순교]]한 날 아침에도 [[오푸스 데이]] 협력 사제 모임에 참가한 후 [[미사]] 집전 중에 피격을 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순교 후에 해방신학 추종자들이 자신들의 이미지를 덮어씌운 것이다. 그 결과 이젠 그가 [[해방신학]]의 아이콘처럼 된 것은 아이러니. 이런 이유로 진작에 시복시성이 되어야 했지만, 해방신학 추종자들이 이를 자신들의 교리를 정당화하는데 악용할 것을 우려한 교황청에서 이를 늦춘 것이다. 인권 탄압에 저항하는 것은 [[가톨릭]]에서는 보수건 진보건 당연한 일이다. 장례식장에 신자들 25만 명이 운집했는데 폭탄 테러와 총격전이 벌어져 40명이 죽은 것 역시 비극이었다. 그의 오랜 친구이자 동료였던 그레고리오 로사 차베스 신부는 2017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엘살바도르 천주교회의 사상 첫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 그는 1992년 엘살바도르의 오랜 내전을 종식시키는 과정에 기여했으며, 추기경이 된 2017년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 시복 == ||<tablealign=center><width=600px><:>[[파일:external/cuatrostatic-a.akamaihd.net/beatificacion-Oscar_Romero-San_Salvador_MDSIMA20150523_0075_21.jpg]] || ||<:> [[교황청]] 시성성 장관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이 집전한 오스카 로메로의 시복 미사, 2015년 5월 23일 || [[20세기]]의 [[순교자]] 중의 한 사람으로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성공회]])에 [[동상]]이 건립되었으며, [[요한 바오로 2세]] 때 '하느님의 종'[* [[성인#s-2|성인]]에 이르는 단계 중 하나. 그 위로는 [[가경자]], [[복자]], [[성인#s-2|성인]] 순으로 이어진다.]으로 인정되었으나 그가 종교적 문제가 아닌 정치적 문제로 죽었다는 점을 이유를 내세운 [[교황청]] 내의 반대 의견 때문에 절차가 지지부진했는데,[* 특히 [[베네딕토 16세]]는 라칭거 추기경 시절에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으로써 해방신학을 적극적으로 반박한 적이 있다. 이러다 보니 해방신학과 얽힌 문제가 진척될 리가 없었던 것.]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된지 6주만에 시성 절차가 재개되었다. [[http://www.pbc.co.kr/CMS/news/view_body.php?cid=449474&path=201304|기사]] 그리고 [[2015년]] [[2월 3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로메로 대주교의 죽음을 [[http://media.daum.net/foreign/others/newsview?newsid=20150203231017911|순교로 선포]]함에 따라 시복시성에 가속도가 붙었다.[* [[순교자]]가 아닌 사람이 시복되려면 기적의 사례가 인정되어야 하지만 순교자가 시복될 때는 기적 심사가 면제되기 때문이다.] 마침내 동년 [[5월 23일]] [[시복식]]이 [[http://media.daum.net/breakingnews/newsview?newsid=20150521095823137|거행되었다]].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살바도르의 살바도르 델 문도 [[광장]]에서 거행된 이번 시복 미사는 교황을 대리한 교황청 시성성 장관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이 집전했으며, 30만 명이 넘는 군중이 운집해 복자품에 오른 로메로 대주교를 기념했다. 축일은 [[3월 24일]]. ||<tablealign=center><:> [[파일:external/viamedia.or.kr/san-romero.jpg]] ||<:> [[파일:external/farm3.staticflickr.com/2045500665_356996d39d_z.jpg|height=366]] || ||<:>'''시복 이전'''에 그려진 [[이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설치된 20세기의 순교자 10인 조각상 || 정식 시성이 발표되기 이전부터 아메리카 대륙 일부에서는 그를 [[아메리카]] 대륙과 [[엘살바도르]]의 수호성인으로 여기는 움직임이 있었으며 그에게 헌정된 교회와 교구, [[이콘]]도 있다. 가톨릭 사제였지만 영국 국교회([[성공회]])를 포함한 기독교의 타 계열 분파에서도 존경받으며 그가 암살당했을 때는 전세계에서 추도객들이 찾아왔다. == 시성 == [[2018년]] [[3월 7일]], 교황 프란치스코가 교황 [[바오로 6세]]와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의 [[전구]]로 인한 [[기적]]을 인정하는 교령을 발표했다. [[http://catholicpress.kr/news/view.php?idx=4791|#]]. [[2018년]] [[10월 14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하여 교황 [[바오로 6세]] 등 동료 성인들과 함께 시성되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52&aid=0001203720|#]] == 미디어믹스 == [[파일:external/educationforjustice.org/Romero.jpg]] [[1989년]] 만들어진 영화 <로메로>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주인공인 로메로 역은 영화배우 [[라울 줄리아]]가 맡았다.[* 국내에는 괴기시트콤 [[아담스 패밀리]] 영화의 가장 역으로 제일 잘 알려진 배우이다.] 실제 인물과 닮은 모습과 함께 배우의 열연까지 더해진 덕분에 '대부분이 알지 못했던 참상'을 호소력 깊게 알리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http://blog.daum.net/hamssign2000/8923034|#]] 그 외 엘살바도르의 참혹한 현실을 고발한 [[올리버 스톤]] 감독의 <살바도르>에서도 그의 암살을 엘살바도르 내전의 발발 계기가 된 주요 사건으로 표현하고 있다. [[분류:엘살바도르의 가톨릭 대주교]] [[분류:가톨릭 성인]] [[분류:암살된 인물]] [[분류:1917년 출생]] [[분류:1980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