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소개 == 조선 중기의 재상이자 한국의 대표적인 친우 사이로 유명한 [[이항복]]과 [[이덕형]]을 이르는 말. 오성은 이항복의 작위명(오성 부원군)[* 이항복의 호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도 많은데, 이항복의 호 중 대표적인 것은 백사(白沙)이다. 젊은 시절에는 필운(弼雲)이라는 호를 쓰기도 했으며, 조선 시대 문인들이 다 그렇듯 이항복은 그 외에도 호가 많았다.]이고 한음은 이덕형의 호다. 두 사람과 얽힌 코믹한 에피소드가 민담, 전래 동화 등으로 많이 다뤄졌으며, 흔히 두 사람이 어릴 때부터 친구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두 사람이 진짜로 처음 만났던 때는 서기 1578년으로 두 사람이 과거 시험을 봤을 때였다. 이때가 이항복은 24세, 이덕형은 19세. * [[만력제|만력]] 6년(1578년), 이때 비로소 백사 이상국 항복과 교분을 맺었다. - <한음문고> * 신의 선조와 오성은 '''과거장에서 서로 사귀게 되었는데, 한 번 보고 매우 친밀해졌습니다'''. 이는 사적에 실려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서로 사귀었다고 하는 것은 민간에서 속되게 전하는 바'''입니다. 나이는 오성이 신의 선조보다 다섯 살 많습니다. - 이덕형의 후손인 참찬관 이명교의 말. <[[승정원일기]]> [[고종(대한제국)|고종]] 10년(1873년) 9월 14일 이덕형의 문집인 한음문고와 그의 후손 이명교가 밝혔듯이 둘은 과거장에서 처음 만났고, 이항복이 이덕형보다 5살이나 더 많다.[* 그런데 조선 시대에는 15살 이상 나이 차이가 나지 않으면 굳이 서열을 나누고 하지 않았다. [[류성룡]]과 [[이순신]]의 경우도 유성룡이 나이가 3살 더 많았고, 끝내 서로 앙숙이 되었지만 한때는 서로 친밀한 관계였던 [[송시열]]과 [[윤휴]]도 송시열이 10살 연상이었지만, 송시열은 윤휴를 벗으로 대우했다. 해동역사를 저술한 한치윤과 그 서문을 써준 유득공 역시 15세 이상 차이가 났지만 친구 관계였다. [[정몽주]]와 [[정도전]]도 정몽주가 5살이 더 많다. 사실 한두 살 나이 차이로 서열을 매기는 건 실제 조선시대 풍토와는 거리가 있다.][* 오늘날에도 60대 이상 장년층이나 노년층에서 나이 몇 년이 차이가 나도 친구로 지내는 경우를 의외로 적잖이 볼 수 있는데, 이 경우는 이 세대가 출생했던 무렵은 전쟁이나 행정체계의 미비, 영양상태 등 여러 이유가 작용해 [[출생신고]]가 제때 안 된 경우가 많아서(그래서 [[베이비붐 세대]]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은 나이를 말할 때 실제 나이랑 주민등록 나이를 구별해서 말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나이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지내는 것에 가깝다. 어떤 의미에서는 1, 2살 꼬치꼬치 따지는 건 기성세대보다도 젊은층에서 더 심해진 측면도 있다.] 이명교가 이렇게 밝히기 전에 고종은 이명교에게 "오성과 한음이 [[소꿉친구]]라는 게 정말인가? 그 사람들 장난친 일이 아직도 [[전설]]로 전해지니 매우 멋진 일인듯. 나이는 누가 많고 적은지 모르겠네?"라고 물었다고 한다. 고종이 태어나서 즉위할 때까지 궐 밖에서 살았던 인물이었던만큼 거리의 이야기꾼이나 여러 야담집을 통해 오성과 한음 이야기를 접해 알고 있었으며, 오성과 한음이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다는 이야기는 이때에도 민간에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는 조선 후기 백성들 중에서는 이항복의 '''본명'''이 '오성'인줄 알고 성을 오씨로 알았던 사람도 있었다고 전한다. 역사상의 이항복, 이덕형의 본모습보다 민담 속에서 그려진 이야기가 더 유명해진 케이스지만[* 비슷한 케이스를 들자면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가 있다.] 이 두 사람이 평생에 걸친 각별한 우정을 나눈 남다른 관계였던 것 자체는 분명한 사실이다. 특히 이덕형의 문집인 한음문고를 보면 이덕형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가 총 110여통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중 이항복에게 보낸 편지만 무려 '''77통'''에 이른다. 특히 이덕형은 이항복을 형(兄)이라는 매우 격식 없는 호칭으로 부르고 있으며 "형도 내 마음 몰라요"라고 징징대는 편지도 남아 있다. 그런데 정작 이항복의 문집인 백사집에는 이덕형을 위해 지어준 시가 몇 수 남아 있지만, 이덕형에게 보낸 편지는 한 통도 실려 있지 않다. --아놔 항복이형 [[카톡]] 보냈는데 확인 안 했어요?-- ~~[[읽씹]]~~ 하지만 이것만 보고 이항복이 이덕형을 특별히 생각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는 게 이덕형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이항복이 묘지명을 쓸 때 "내가 명보(이덕형의 자)를 그르쳤구나. 한스럽다."는 식으로 애통해 하고 있으며 이덕형이 세상을 떠났을 때 지은 시에서도 "목소리 죽여 남몰래 한원군(이덕형)을 곡하노라."는 구절이 남아 있다. 이항복이 꽤 인간 관계가 폭넓었던 것에 비해 이덕형은 인간 관계가 협소한 편이었지만 벼슬도 짝을 이뤄 한 경우도 있었고 실록에서도 이항복과 이덕형이 서로를 배려하는 기록도 남아 있던 만큼 두 사람이 매우 특별한 우정을 나눴던 것 자체는 분명하다. 이항복과 이덕형은 5살 차이였는데 공교롭게도 죽을 때에도 5년 차이가 났다. 이덕형은 1613년 52세로 사망했고, 이항복은 1618년 62세로 사망했다. 오성과 한음 말고 [[http://blog.naver.com/gang623/110096510871|조선조 말썽으로 유명했던 실존 인물로 영조 대의 영중추부사 이천보의 양자인 속칭 '말썽 괴수' 이문원이 있다.]] 이문원의 야사 또한 이 오성과 한음 이야기와 겹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야사에선 이문원가 일자무식이라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진사시는 합격했고 영조에게 과거시험장에서 3글자만 써서 그 당돌함 때문에 아버지 음덕으로 문과에 합격한 인물이다. 그렇지만 기본적인 학문만 알고있지 벼슬할 정도의 깊은 학식이 있는 건 아니였다. 맹꽁이 서당에선 이문원 친아버지가 이천보를 대감 아우라 하지만 정 반대로 이천보와 이문원은 나이 차가 42세로 조선시대로 치면 조부와 손자의 나이 차로 이천보가 이문원 친아버지의 친척 형 또는 친척 아저씨뻘이 된다. --하지만 이후 오성과 한음은 임진왜란 이후 유배를 가서....-- [[포천시]]는 그들과 유서가 깊은 지역이기 때문에 마스코트 역시 오성과 한음이다. == [[만화]] == 위 두 사람을 소재로 한 [[박수동]] 화백의 만화 제목. 1970년대에 소년 중앙에서 연재되었다. 이하 [[신판 오성과 한음]] 문서로. 또 비디오판 애니메이션이 있는데 사자성어 한자 공부용 비디오 만화이다.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다양한 사자성어를 알수있다. 투니버스 개국 초기인 1996년에 방영되기도 했다. == [[오성X한음]] == [[팬텀 하록]]으로 알려진 유승진이 [[한섬세대]]에 이어 [[네이버 웹툰]]에 연재를 시작한 웹툰. 해당 문서로. == [[고전게임]] == 1993년 에이플러스(A+)라는 교육 출판사 업체에서 만들고 금성 소프트(현재 [[LG그룹]])에서 배급한 어드벤처 게임. 오성과 한음을 조종하여 여러가지 임무를 맡는 게임. 방식은 물론 캐릭터 등의 그래픽 스타일마저 미국 어드벤처 게임 [[고블린(게임)|고블린]]의 영향이 상당히 짙게 드러난다. 이젠 레어가 된 [[http://game.playwares.com/xe/?mid=opencase&category=765152&document_srl=20330149|정품 구성]]. [[http://www.youtube.com/watch?v=X0Mn2LqfL0w|풀 플레이]] 이제는 [[도스박스]]로 실행해야 한다. == [[개그 콘서트]]의 전 코너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오성과 한음(개그 콘서트))] [[분류:동음이의어/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