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오룔.jpg|width=55%]] ||<-6><table align=center><bgcolor=white> [[보로디노급 전함|{{{#blue 보로디노급 전함}}}]] || ||[[보로디노]]||[[임페라트르 알렉산드르 3세]]||[[오룔(전함)|오룔]]||||[[크냐츠 수보로프]]||||[[슬라바(전함)|슬라바]]|| [목차] == 제원 == ||전장||121m|| ||전폭||23.22m|| ||높이||7.97m|| ||기준배수량||14,415t|| ||최대출력||15,012hp|| ||최대속력||16.2kt|| ||항속력||10kt로 2,600해리|| ||무장||30.5cm 연장포 2기, 15.2cm 연장속사포 6기, 7.5cm 단장속사포 20기, 47mm 단장속사포 20기, 7.62mm 기총 4기, 38.1cm 단장 어뢰발사관 수상2문, 수중 2문, 파라노프스키 6.35cm 야포 2기, 기뢰 50발|| ||탑재기 수||없음|| ||승원||835명|| ||동형함||보로디노, 임페라트르 알렉산드르 3세, 크냐츠 수보로프, 슬라바|| == 개요 == 오룔(Oryol, 러시아어 : Орёл)은 [[러시아 제국]]해군의 [[보로디노급 전함]] 제 3번함으로, 함명은 [[러시아어]]로 독수리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비잔티움 제국부터 이어져 온 러시아 황제의 문장이기도 한 '쌍두의 독수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함명은 1667년에 러시아 최초의 군함에 사용된 후 대대로 주력함에 붙여졌던 함명인데 그 이름을 이어받은 최후의 함이 바로 이 함선이다. 러시아에서는 포로가 된 자는 반역자로 취급되어 극형에 처해지는데 이 배도 일본에게 노획되었기 때문에 포로가 된 것으로 간주하여 더 이상 이 이름의 배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 상세 == * '''기본적인 설명은 [[보로디노급 전함]] 문서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 활동 == 1900년 5월 20일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갈렐누이 섬 조선소에서 기공해 1902년 7월 6일 진수 후 1904년 10월 1일에 완공된 오룔은 [[태평양]] 함대에 배치되어 함장으로는 니콜라이 융크 대령이 취임했다. [[러일전쟁]]으로 인하여 자매함 3척과 함께 제 2 태평양 함대 제 1 장갑함대 소속으로 극동으로 파견되었다. 1905년 5월 14일에 일어난 [[쓰시마 해전]]에서는 5발의 30.5cm 포탄, 2발의 25.4cm 포탄, 39발의 15.2cm 포탄, 그리고 21발의 소구경 포탄을 맞았지만 침몰에 이르는 큰 피해는 입지 않았다. 하지만 이 때 43명이 전사하고 80명 가까이가 부상당했다. 함장인 융크 대령도 이 때 부상을 입었다. 거의 모든 전투능력을 상실한 오룔은 [[전함]] '임페라트르 니콜라이 1세', 해방전함 '게네랄 아드미라르 아플라쿠신', '아드미라르 세냐빈', 2등 방호순양함 '이즈무르트'로 구성된 니콜라이 네브가도프 해군소장의 잔존함대에 합류하는데, 5월 15일에 [[일본해군]]에 포위된 네브가도프 소장은 [[일본군]]에 항복하면서 오룔도 일본해군에 넘겨졌다. 융크 대령은 5월 16일에 사망하여 바다에 수장 되었고 포획된 오룔은 2년에 걸친 개장공사 후 [[일본]]해군의 전함인 이와미(石見)[* 독도 문제로 한국과 악연이 많은 [[시마네]]현의 옛 이름이다.]로서 일본해군에 편입되었다. 제 1차 세계대전시 이와미는 동맹국이던 [[러시아]]에 반환되지 않아 칭다오 공략전에 참가했다. 시베리아 출병당시엔 1920년까지 연해주의 경비에 나섰으며 1921년까지는 캄차카의 경비에 종사했다. 1922년 9월 1일에 함적에서 제적된 이와미는 1923년 5월 9일에 무장이 철거된 후 잡역선으로 편입되어 표적함으로 지정된 후 1924년 7월에 폐선으로 지정되어 요코스카 및 미우라 반도에서 이루어진 5일부터 9일의 항공폭격 훈련시 표적함이 되어 7월 10일에 격침처분되었다. 현재 이와미의 주포인 30.5cm 포신이 [[쿄토]]의 요사노쵸에 남겨져 전시되고 있다. [*출처 : 해인사 세계의 함선 제 35권 - 러시아/소련해군 전함사] [[분류: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