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able align=right><table width=400><table bordercolor=#bc0021><bgcolor=#bc0021><tablebgcolor=#ffffff,#1f2024>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9C001B, #BC0021 20%, #BC0021 80%, #9C001B)" {{{#ffffff '''국방위원회 부위원장[br]{{{+1 오극렬}}}[br]吳克烈 | Oh Guk Ryol'''}}}}}}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ogeukryeolportrait.jpg|width=390]]}}} || ||<bgcolor=#bc0021> {{{#ffffff '''출생'''}}} ||1930년 1월 7일|| ||<bgcolor=#bc0021> {{{#ffffff '''국적'''}}} ||[[파일:북한 국기.svg|width=28]] [[북한]] || ||<bgcolor=#bc0021> {{{#ffffff '''종교'''}}} ||[[무종교]] ([[주체사상]])|| ||<bgcolor=#bc0021> {{{#ffffff '''계급'''}}} ||대장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General_of_the_Air_Force_rank_insignia_%28North_Korea%29.svg.png|width=28]]|| ||<bgcolor=#bc0021> {{{#ffffff '''전직'''}}} ||조선인민군 공군사령관|| ||<bgcolor=#bc0021> {{{#ffffff '''정당'''}}} ||[include(틀:조선로동당)]|| [목차] == 개요 == [[북한]]의 [[군인]] 겸 [[정치인]]. == 생애 == [[중화인민공화국|중국]] [[지린 성]]에서 [[김일성]]의 측근 중 한 사람인 오중성[* 오중성은 다른 4형제들과 함께 [[빨치산]]으로 활동해 '유격대 오형제'로 알려져 있고, 그 중 오중흡은 (북한의 선전에 의하면) 김일성을 지키려다가 [[일본군]]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혁명투사로 이름을 남기고 있다. 북한군에서 특별한 공을 세운 부대에게 주어지는 명예칭호인 '''오중흡 7련대 칭호'''가 이 자의 이름을 딴 것.]의 아들로 태어났다. 광복 후 가족들과 북한으로 돌아와 [[만경대혁명학원]]에 입학했고, [[한국전쟁]] 시기에는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조선인민군 공군]]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전후에는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뒤 1962년에 [[소련]]의 [[프룬제 군사대학]]에서 2년 동안 유학했다. 귀국 후에는 공군 [[소장(계급)|소장]]([[대한민국 국군|한국군]]의 [[준장]]에 해당함)으로 진급해 장성이 되었으며, 동시에 김책공군대학 학장으로 부임했다. 3년 뒤인 1967년에는 [[중장]](한국군의 소장)으로 한 계급 더 올라 조선인민군 공군사령관 자리를 얻었으며, 동시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직도 겸임해 정치 이력도 시작했다. 이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직을 기수 별로 계속 겸임하면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과 부총참모장(한국군의 합동참모차장)을 거쳐 1979년에 조선인민군 총참모장(한국군의 [[합동참모의장]])이 되었다. 김일성 외에 후계자로 권력을 장악하게 된 [[김정일]]과도 괜찮은 관계여서 1980년대 들어서도 계속 승진을 거듭해 상장(한국군의 중장. 1980), [[대장(계급)|대장]](1985)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오극렬은 [[정치장교|정치위원]] 제도가 야전 사령관들의 지휘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생각했는지, 김정일에게 이 제도를 폐지 혹은 약화시킬 수 없는지를 물었다고 한다. 김정일은 처음에는 이에 호응했지만, 김일성에게 이 문제를 건의했다가 개[[갈굼]]을 당한 뒤 결국 포기했다. 애비에게 한바탕 깨진 김정일은 이후 오극렬을 시범 케이스 삼아 총참모장 직책에서 해임하고, 조선로동당 민방위부 부장이라는 한직으로 좌천시키는 선에서 이 문제를 마무리지었다. 나름 정치장교의 문제점을 자각하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군사적 안목은 있는듯 하다. 애당초 프룬제 아카데미가 공산권 최고의 군사교육기관으로서 거기에서 제대로 공부했다면 군사적 능력은 준수하다고 봐야 한다. 그 이후로는 거의 20년 동안 [[공기#s-6|존재감이 없는]] 고령의 장성으로 맴돌았지만, 2009년 2월에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출되면서 다시 부각되기 시작했다...는건 훼이크고, 군 내 실권자들이자 자기보다 후배인 [[리영호]]나 [[김영춘(북한)|김영춘]] 등에 밀려 여전히 퇴물 장군 취급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느 정도 존재감은 있는지, 김정일 사후 국가장의위원회에 이름을 올렸고 조선로동당 제4차 당대표자회의에서 당 중앙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출되는 등 형식적이나마 계속 고위직을 지키고 있다. 단, [[주성하]] 기자의 주장에 따르면 총참모장 직을 그만 둔 뒤 민방위부 부장으로 간게 아니라 진짜 실세인 로동당 작전부장으로 가서 20년간 자신의 소왕국을 만들고 세도를 부렸다고 한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0&aid=0002526362|#]] 한국전쟁 참전 경력에 김일성 측근의 아들이라는 배경도 있어서 정치적/군사적 영향력이 꽤 강한 인물이었고, 특히 공군사령관과 총참모장 시절에는 보급과 복지에 나름대로 신경쓰는 모습을 보여주어 군 내부에서는 꽤 신뢰도가 높았다고 한다. 군사적 성향은 대남 강경책을 주로 쓰는 매파로 분류되고 있고, 소련 유학 경험 때문인지 [[미사일]] 등 최신 무기 체계의 도입에도 적극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또 서방의 북한 통들은 매우 정교한 [[미국 달러|달러]] [[위조지폐|위폐]]인 슈퍼 노트의 제작 책임자가 오극렬이라고 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군사적 문제에 너무 신경쓰다 보니 정치력 면에서는 [[조명록]]이나 [[오진우]] 같은 ~~후빨 전문가~~라이벌들에게 발리는 형편이었고, 결정적으로 정치위원 문제를 대담하게 제시했다가 [[데꿀멍]]한 경력 때문에 이빨 빠진 [[호랑이]] 취급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다른 라이벌들이 [[차수(계급)|차수]] 혹은 조선인민군 [[원수(계급)|원수]]까지 진급할 동안 여전히 대장에 머물고 있는 [[안습]]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래도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 과정에서 계속 살아남은 인물이고, 이 과정에서 리영호의 [[숙청]]과 김영춘의 한직 좌천 등 군부 내 기존 실권자들이 [[버로우]]하는 데도 여전히 별다른 타격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 나름대로 기반을 계속 굳건히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계급은 여전히 대장 찌끄레기~~ 2012년 3월 8일에 [[국제 여성의 날]] 기념으로 [[평양대극장]]에서 개최된 [[은하수관현악단]] 음악회에서는 다른 주요 인사들처럼 무대로 불려나와 가족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는데, 부축을 받으며 나왔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건강은 별로 좋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 뒤로도 빈도 수는 [[최룡해]]나 [[김정각]], [[현영철]] 등 여타 군 최고위 장성들 만큼은 못하지만 계속 김일성/김정일 동상 제막식이나 정치 집회, 군 관련 행사, 예술 공연 등에 꼬박꼬박 얼굴을 내밀고 있다. 2013년 12월 [[장성택]]이 처형당하고 그 수하들도 줄숙청을 당한 여러 경제기관의 빈 자리를 오극렬 일파가 빼앗으면서 다시 권력 전면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5&oid=448&aid=0000012675|#]] 다만 치매가 왔다는 이야기도 있으므로 오극렬 일파도 그와 함께 몰락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김종학(1951)|김종학]] 피디를 몰락시키고, [[이병헌]]의 암흑기를 상징하는 [[백야 3.98]]이라는 드라마에서는 그를 모티브로 한 오국철 대장이 등장한다. 2018년 9.9절 열병식에서, 육군 대장 예복을 착용한 채 모습을 보였다. 직위를 맡고 있는 대장, 상장들과 달리 계급만 유지한 軍원로석에서 [[이용무]], [[김정각]] 차수와 함께 열병식을 관람하였다. [[분류: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분류:조선로동당 정치국 위원]][[분류:조선인민군 총참모장]][[분류:지린성 출신 인물]][[분류:1930년 출생]][[분류:북한의 무종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