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augustin_chantrel.jpg]] || 이름 || 오귀스탱 샹트렐[br](Augustin Chantrel) || || 생년월일 || [[1906년]] [[11월 11일]] || || 사망년월일 || [[1956년]] [[9월 4일]] || || 국적 || [[프랑스]] || || 출신지 || 메흐레방 || || 포지션 || [[하프백]] || || 신체조건 || 165cm / 68kg || || 등번호 || -[*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 || || 소속팀 || [[레드 스타 FC|레드 스타 파리]] (1925-1929)[br]CASG 파리 (1930-1933)[* 1931년부터는 레드 스타 파리에 복귀했다는 기록도 있다][br]아미앵 SC (1933-1934)[br][[레드 스타 FC|레드 스타 파리]] (1934-1939) || || 국가대표 || 15경기 / 0골 (1928-1933) || '''월드컵 최초의 교체 선수''' [목차] == 생애 == === 선수 생활 === 어린 시절 샹트렐은 1925년 [[레드 스타 FC|레드 스타 파리]]에서 데려가기 전까지 파리대학교 팀에서 뛰었다. 그 때에 이미 마르셀 도르메그와 파울 바르텔 등과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으며 레드 스타 파리에서도 서포터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선수였다. 하지만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월드컵]]을 즈음하여 레드 스타 파리를 떠나 CASG 파리에서 뛰기도 하였고, 1932년 프로화가 된 첫 시즌에 레드 스타 파리가 강등당하자 아미앵 SC에서 잠시 활약하기도 하였다. 1939년 은퇴 직전에는 레드 스타 파리에서 플레잉 코치 역할을 맡으며 [[기예르모 스타빌레]] 감독을 보좌하기도 했다. ===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 === 1928년에 데뷔한 샹트렐은 총 15경기에 출전하였다. 데뷔한 지 얼마되지도 않아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올림픽]]에도 출전했지만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탈리아]]를 만나 4대3으로 패배하여 짐을 싸고 말았다.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1930년 초대 월드컵]]에도 프랑스 대표팀에 선발되어 참가했고 월드컵의 역사적인 첫 경기에서 특이한 경험을 하였다. 주전 [[골키퍼]]였던 [[알렉스 테포]]가 전반 24분에 입은 턱 부상으로 경기를 지속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골키퍼 자리가 공석이 되었다. 그 자리를 샹트렐이 메웠고 샹트렐은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멕시코]]를 상대로 1실점을 하며 나름 존재감을 과시했다. == 뒷이야기 == * 자신의 소속팀 동료 마르셀 피넬과 함께 대표팀 동료였던 [[셀레스탱 델메르]]를 [[왕따]]시켰다는 논란이 있다. 아마 축구계 최초일 듯. 그리고 80년 후에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비슷한 일]]이 훨씬 스케일이 크게 일어나고 말았다. == 수상 == === 클럽 === * [[쿠프 드 프랑스]] 우승 1회: 1928([[레드 스타 FC|레드 스타 파리]]) [각주] [[분류:1906년 출생]] [[분류:1956년 사망]] [[분류:프랑스의 축구선수]] [[분류:프랑스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분류: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 참가 선수]] [[분류:프랑스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