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12183a><tablebgcolor=#ffffff,#191919>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7F7F7 0%, #FFFFFF 20%, #FFFFFF 80%, #F7F7F7);" [[FIFA|[[파일:국제축구연맹 로고.png|width=100]]]]}}}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fff 0%, #f0f0f0);" {{{#264178 '''FIFA 공인 에이전트'''}}}}}}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urn-newsml-dpa-com-20090101-200518-99-103000-large-4-3-jpg.jpg|width=100%]]}}} || ||<-2><height=40><colbgcolor=#12183a> {{{#ffffff '''이름'''}}} || '''{{{+1 옌스 노보트니}}} [br] Jens Nowotny''' || ||<-2><height=40> {{{#ffffff '''출생'''}}} ||[[1974년]] [[1월 11일]] /[br] {{{-1 [[서독]],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카를스루에]]}}} || ||<-2><height=40> {{{#ffffff '''국적'''}}} ||[[독일]] [[파일:독일 국기.svg|width=28]] || ||<-2><height=40> {{{#ffffff '''신체'''}}} ||187cm || ||<-2><height=40> {{{#ffffff '''직업'''}}} ||[[축구선수]]([[센터백|수비수]] / ^^은퇴^^) || ||<width=15%><height=40> {{{#ffffff ''' 소속 ''' }}} ||<width=15%><height=40><bgcolor=#12183a> {{{#ffffff ''' 선수 ''' }}} ||SV 슈필베르크(1979~1985 / ^^유스^^) [br] G.프리드리히슈탈(1985~1990 / ^^유스^^) [br] [[카를스루에 SC]](1990~1991 / ^^유스^^) [br] [[카를스루에 SC]] (1991~1996) [br] '''[[바이어 04 레버쿠젠]] (1996~2006)''' [br] [[NK 디나모 자그레브]] (2006~2007) || ||<-2><height=40> {{{#ffffff '''국가대표'''}}} ||48경기 1골^^([[독일 축구 국가대표팀|독일]] / 1997~2006)^^ || [목차] == 개요 == 90년대 말 혜성처럼 나타난 독일 출신의 거물급 수비수이자 2000년대 초반 바이어 레버쿠젠의 전성기의 주역. == 플레이 스타일 == 기본적인 수비능력이 뛰어난 데다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태클 능력과 훌륭한 공간 커버 능력, 수비수의 기본 덕목인 피지컬과 수비수 조율 능력까지 갖춘 토털 패키지형 수비수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수준높은 패싱력을 지녔으며 노보트니의 최대 장점이 바로 볼간수 능력이 매우 뛰어난 선수였다. == 클럽 경력 == === [[카를스루에 SC]] === 1991년 1군에 데뷔해 1996년까지 103경기에 출전하며 좋은모습을 보였다. === [[바이어 04 레버쿠젠]] === 1996년 [[바이어 04 레버쿠젠]]으로 이적했다. 레버쿠젠에서 2006년까지 10년간 뛰며 '''231경기'''에 출전했고, [[카르스텐 라멜로프]]와 함께 레버쿠젠의 전성기시절 주전 수비수로 활약했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 4연속 분데스리가 베스트 11에 선정되기도 했다. === [[NK 디나모 자그레브]] === 2006년 [[NK 디나모 자그레브]]로 이적했다. 계약기간은 3년. 그러나 계속해서 부상으로 힘들어했고 2006년 8월 19일 당한 부상으로 인해 수술까지 들어갔으나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고, 2007년 1월 22일 33살의 나이에 국가대표팀과 클럽팀에서 은퇴했다. == 국가대표 경력 == '''어떻게 보면 [[제바스티안 다이슬러]] 보다도 당시 암흑기의 독일축구의 실질적 희망이라 불린 선수''' 1997년 4월 90일 [[우크라이나]]와의 경기에서 [[프레디 보비치]]와 교체되며 데뷔했다. 이후 48경기에 출전하며 활약했다. 압박축구가 주를 이루는 현 시기에 볼 컨트롤 및 탈압박과 패싱 능력이 뛰어난 옌스 노보트니의 존재는 당시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의 --몰빵-- 빌드업에 의존하는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치명적인 단점을 보완해 주며 더 나아가 공격루트의 다양성을 제공해 줄 선수였다. [* [[크리스티안 뵈른스]]와, [[토마스 링케]]는 기본적인 수비수 덕목은 뛰어나지만, 패싱력이 좋지 않고, [[크리스티안 치게]]의 경우 [[대한민국]]의 [[홍명보]]라 보면된다. 패싱력이 뛰어나서 대표팀 전담 키커이지만 탈압박 능력이 떨어져, 치게가 압박을 받을 때, [[미하엘 발락]]이 [[크리스티안 치게|치게]]를 지원해서 빌드업을 지원하는 형국이였다. 그나마 [[카르스텐 라멜로프]]가 [[리베로]] 위치에 있으면서 [[크리스티안 치게|치게]]의 후방 빌드업을 지원했으나, [[카르스텐 라멜로프|라멜로프]]의 노쇠화와, 치게의 은퇴에 맞물려, 독일 대표팀 내에서의 빌드업을 이끌어 줄 선수가 없었다.] 당시 분데스리가 최고의 미드필더라 평가받는, [[파비안 에른스트]], [[프랑크 바우만]], [[하노 발리치]]는 국대에서의 호러급 경기력을 보였고, 센터백 역시 2006년 [[페어 메르테자커]]와 [[필립 람]]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전까진 빌드업은 커녕 상대의 강한 압박에 허둥지둥 거리는 상태였다. 그러나 2002년 4월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당하게 되며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 불참하게 되지만 [[유로 2004]]와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는 참가할수 있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부상이 그를 힘들게 했고 결국 월드컵이 끝난지 얼마 안되어 [[디나모 자그레브]]에서 뛰던도중 당한 부상으로 인해 은퇴하게 된다. == 은퇴후 == 은퇴이후 INSOCCER OHG INSOCCER OHG라는 회사에서 축구 에이전트를 맡고있다. [각주] [[분류:1974년 출생]][[분류:독일의 축구선수]][[분류:카를스루에 SC/은퇴, 이적]][[분류:바이어 04 레버쿠젠/은퇴, 이적]][[분류:독일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2006 FIFA 월드컵 독일 참가 선수]][[분류:UEFA 유로 2000 참가 선수]][[분류:UEFA 유로 2004 참가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