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조선의 별궁과 궁가]][[분류:조선 시대의 없어진 건축물]] [include(틀:조선의 별궁과 궁가)] [목차] == 개요 == 영수궁(寧壽宮)은 [[태종(조선)|태종]]의 [[후궁]]들이 모여서 살았던 궁가의 말한다. 왕실의 궁가인만큼 영수궁의 위치는 한성부 안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현재 남아있는 유적의 흔적이 없으므로 자세히 알 수 없다. == 역사 == 조선 전기에 왕이 죽으면 왕의 후궁들은 모두 궁궐을 나와서 거처를 별궁으로 옮겨야 했다. 당연히 후궁은 [[재혼]]이 허락되지 않았고, 자식들과 함께 사가에서 살지 못하고, 나라에서 마련해준 궁가에 모여 살았다. 이때문에 왕자, 왕녀들이 자신들의 생모를 모시고 살길 원해도 허락받기가 매우 어려웠다.[* 예를 들어 [[금성대군]]은 자신을 키워준 [[의빈 권씨]]가 나이들어 병에 걸렸으므로 자신의 집으로 옮겨 간병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당시 '세종 연간에 궁인이 나가서 사는 일을 금지하였다'는 이유로 허락하지 않았다. [[http://sillok.history.go.kr/id/kfa_10106026_001|#]] ] 태종이 승하하자 [[세종(조선)|세종]]은 부왕의 후궁들을 위해 의빈궁을 설치하였다. 처음의 이름으로 보아 당시에는 태종의 후궁 [[의빈 권씨]]의 거처를 의미했을 것이다. 의빈궁이 설치된 이후에는 [[자수궁]], 수성궁, 창수궁, 정청궁, 인수궁 등이 설치되었다. 나중에 후궁의 궁가는 후궁들이 죽으면 곧 폐지되어, [[중종(조선)|중종]] 이후에는 자수궁과 인수궁만이 유지된다.[* 특히 자수궁와 인수궁은 불교에 귀의한 선왕의 후궁들이 불사를 행하여 많은 비판을 받았다. ] 궁가에 머무르는 후궁들은 모두 그에 걸맞는 예우를 받았다. 의식주와 관련된 각종 물품을 제공받고, 궁가의 유지를 위해 [[궁녀]]와 [[환관]], [[노비]] 및 여러 인력을 제공받았다. 당시 기록을 보면 신빈궁, 의빈궁 등의 이름이 언급되는데 모두 선왕의 후궁들이 거처하는 곳을 부르는 말이다. [[세조(조선)|세조]]는 의빈궁에 별감과 소친시 8인을 두어 관리하고 시중들게 하였다.[* 세조실록 2권, 세조 1년 11월 13일 갑신 2번째기사. [[http://sillok.history.go.kr/id/kga_10111013_002|#]] ] 의빈궁은 세조 연간에 [[자수궁]]과 수성궁[* [[문종(조선)|문종]]의 후궁들이 모여살던 궁가. ]의 제도에 의거하여 영수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세조실록 7권, 세조 3년 5월 22일 갑신 3번째기사. [[http://sillok.history.go.kr/id/kga_10305022_003|#]] ] 영수궁의 이름은 《[[성종실록]]》에서도 언급된다. 1471년(성종 2) 2월 이전까지 물품 등을 진상하다가 2월 이후의 기록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더이상 선왕의 후궁들이 남아있지 않아서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