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廉長(염장)|| ||<:>출생||생몰년도 미상|| [목차] == 개요 == [[신라]]의 인물. [[진덕여왕]] 때 활약을 하였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중요한 나라 일을 결정하는 4영지 회의에서 [[알천]](閼川), 임종(林宗), 술종(述宗), 호림(虎林), [[김유신]] 등과 함께 남산 오지암에서 나라 일을 결정했다고 하며 [[금입택]] 중에서 수망택이 바로 염장의 집이라고 한다. 필사본 [[화랑세기]]에서의 행적도 [[삼국유사]]와 비슷하다. == [[화랑세기]]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5><:><bgcolor=#4A2D5B> [[천마도|[[파일: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png|width=60]]]] [br] '''[[풍월주#s-3|{{{+1 {{{#ffffff 신라의 풍월주(風月主)}}}}}}]]'''[br],,[[박창화|{{{#ffffff 박창화}}}]]{{{#ffffff 가 필사했다고}}} [[위서|{{{#ffffff 주장하는}}}]] [[화랑세기|{{{#ffffff 화랑세기}}}]]{{{#ffffff 의 기록}}},, || ||<width=30%> 16대 [[보종#s-1|보종공]] 설보종 || {{{+1 ←}}} ||<width=30%><bgcolor=#4A2D5B> '''{{{#ffffff 17대 염장공 염장}}}''' || {{{+1 →}}} ||<width=30%> 18대 [[태종 무열왕|춘추공]] 김춘추 || ||<:>풍월주||17세 풍월주[* 31세에 풍월주가 되었다.]|| ||<:>출생||586~647|| ||<:>혈통||[[진흥왕]]의 아들인 천추공과 [[진지왕]]의 비인 지도태후의 아들[* [[김춘추]]의 아버지 용춘의 이부동모제]|| 호림이 14세 풍월주가 되자 18세의 나이로 전방대화랑이 되었다. [[보종]]과 사이가 좋아 보종이 [[김유신]]에게 부제의 자리와 차기 풍월주의 자리를 양보하자 혼자 반발하였다. 이것 때문에 아래처럼 김유신과 사이가 안 좋게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보종이 여색에 관심이 없어 여자를 자주 양보했다. 보종의 처 양명공주(김춘추의 장모)와 밀통하여 아들 장명을 낳았다. [[하종]]의 딸인 하희가 보종을 사모하였는데 "염장을 좋아한다면 나도 좋아할 것" 이라고 해 염장에게 시집가 하장, 윤장, 춘장을 낳았다. [[선덕여왕]]에게 붙어 [[칠숙]]의 난을 평정한 뒤 조부의 영이 되었는데 사적으로 치부하여 부유했다. 흔히 [[미생]]과 비교되었는데 미생은 사치스러웠지만 염장은 부유한데도 검소했다고 한다. == 대중매체에서 == === 드라마 [[대왕의 꿈]]의 등장인물 === ||<:>담당 배우||배도환(아역: 김기두)|| 처음에는 가야계라고 [[김유신(대왕의 꿈)|김유신]]을 깔보는 찌질한 역할로 나온다. 그러나 만용을 부려 고구려군에 붙잡혔다가 김유신에게 구출된 이후로는 형세 역전. 특히 장성해서는 화랑세기처럼 화랑의 풍월주를 맡고 있는데 승만왕후와 술판을 함께 벌이며 놀아나다가 김유신에게 개[[갈굼]]을 먹고 짤없이 [[데꿀멍]]한다. 10화에서는 사정부와 화랑도의 화해를 위한 연회 자리에서 [[강남스타일|서라벌 풍이야]]를 외치며 말춤을 준다. 김유신의 동생인 김흠순과 주로 콤비를 이뤄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각주] [[분류:생년 미상]][[분류:몰년 미상]][[분류:신라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