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중국의 역사/260BC)] ||<tablebordercolor=#000000><rowbgcolor=#ffffff><tablealign=center><tablewidth=100%><:> {{{#!folding 춘추전국시대 왕조 [include(틀:춘추시대 왕조)] [include(틀:전국시대 왕조)] }}}|| ||||||<tablebordercolor=#6a5acd><tablealign=right><tablewidth=400><bgcolor=#6a5acd> {{{#fff {{{+1 '''연''' [br] '''燕'''}}}}}}[* Baxter-Sagart의 재구에 의하면 [[상고음]]은 /*ʔˁen-s/. 燕는 현대의 한자이며 진나라 시대의 [[전서]] 소전체 표기는 이렇다.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b/b8/Shuowen_Seal_Radical_426.svg|참조]]]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중국전국시대.png|width=100%]]}}}|| ||||||<bgcolor=#6a5acd> {{{#fff 서기전 11세기 ~ 서기전 222년}}} || ||<bgcolor=#6a5acd> {{{#fff 별칭}}} ||||<(> 언(匽) || ||<bgcolor=#6a5acd> {{{#fff 위치}}} ||||<(> [[허베이]], [[랴오닝]] || ||<bgcolor=#6a5acd> {{{#fff 수도}}} ||||<(> [[베이징|계]](薊) || ||<bgcolor=#6a5acd> {{{#fff 국성}}} ||||<(> [[희(성씨)|희]](姬) || ||<bgcolor=#6a5acd> {{{#fff 국가원수}}} ||||<(> [[후작]], [[백작]] → [[왕]][* 서기전 323년부터.] || ||<bgcolor=#6a5acd> {{{#fff 주요 군주}}} ||||<(> [[연역왕|역왕 희퇴]][br][[소양왕(연)|소양왕 희직]] || ||<bgcolor=#6a5acd> {{{#fff 언어}}} ||||<(> [[상고한어|상고 중국어]] || ||<bgcolor=#6a5acd> {{{#fff 문자}}} ||||<(> [[전서]] (대전체) || ||<bgcolor=#6a5acd> {{{#fff 종교}}} ||||<(> [[중국 신화|중국 토속 종교]][* 단, 춘추전국시대 사람들은 세속적인 편이었다.] || ||<bgcolor=#6a5acd> {{{#fff 종족}}} ||||<(> 화하족 || ||<bgcolor=#6a5acd> {{{#fff 통화}}} ||||<(> [[명도전]] || ||<bgcolor=#6a5acd> {{{#fff 성립 전}}} ||||<(> [[주나라]] || ||<bgcolor=#6a5acd> {{{#fff 멸망 후}}} ||||<(> [[진(통일왕조)|진나라]] || ||<bgcolor=#6a5acd> {{{#fff 현재 국가}}} ||||<(> [[중국]] || [목차] [clearfix] == 개요 == [[춘추전국시대]]의 국가 중 하나. 시조는 [[주문왕]]의 아들이자 [[무왕(주)]]의 아우 [[소공석|소공 석]](召公 奭)으로 무왕을 도와 [[은나라|은]]을 멸망시키고 주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워 오늘날의 [[베이징]]과 [[허베이성]], [[랴오닝성]] 일대를 분봉받은 것이 연나라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언(匽)으로 불렸고, 연(燕)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진한시대 이후라고 한다. 황하 근처의 허난성 신향시 연진현(延津縣) 북동쪽이 세력의 출발 기반이었다. [[수도(행정구역)|수도]]는 현재의 [[북경]] 인근인 계(薊)였으며 분봉 당시의 작위는 [[후작]]이었다.[* 그런데 잠시 중간에 [[백작]]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그러나 소공 석 본인은 주공 단처럼 주나라 원로 관직이었던 소공이라 수도 호경(현재 [[시안(도시)|장안]])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멀리 있던 연나라를 직접 통치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장자 극(克)을 계(지금의 북경 지역보다 서남쪽에 있던 방산 구.)에 보내 다스리게 했다고 전한다. 영토는 동쪽으로 [[고조선|조선]], 서로는 [[조(전국시대)|조나라]], 남으로는 [[제(춘추전국시대)|제나라]]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연나라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얻은 영토라 한족들이 많이 이주했다. 그래서 그런지 고조선 관련 유물[* 나중에 고조선을 형성하는 사람들의 문화적 유물들이 나온다. ]들도 많이 출토된다. == 역사 == === [[춘추시대]] === [[주나라#s-2.1|서주]] 시대에나 [[춘추시대]]에는 별 두각을 드러내진 않았다. 다른 나라처럼 뚜렷하게 침략받은 흔적이 [[연장공|장공]](壯公) 때 말고는 거의 없고,[* 연나라 장공 때 북쪽의 융적이 쳐들어와서 크게 박살나서 나라가 망할 뻔했다. 다행히 그 때 [[춘추오패|춘추 시대의 첫 번째 패자]]인 [[제환공]]의 도움으로 융적을 몰아내고 나라를 되찾았다. 인접한 데다 제나라가 워낙에 강성하다 보니 연나라는 좋은 쪽으로건 나쁜 쪽으로건 종종 제나라의 간섭을 받곤 했다.] 정변도 거의 없었다. 《[[사기(역사책)|사기]]》, 《[[춘추]]》, 《[[전국책]]》에 공히 딱 한 번 임금이 쫓겨나서 제나라로 망명한 일이 기록된 것 말고는 없을 정도. 일설에는 오랑캐([[동이]], 대개 [[동호]]로 추측)가 있는 지역[* 초기에는 연나라의 계 근처를 제외하면 하북성 전역이 이민족 세상이었고 바로 근처에 고죽국, 산융, 중산국 같은 이민족 국가나 집단도 많았다. ]과 가까워 잦은 침략으로 기록이 불에 탔거나 길이 막혀 중원으로 전해지지 못했다고도 한다. 혹은 진 시황에 의해서 육국(六國)의 역사서를 불에 태워 남겨지지 않았다고 한다. 연나라 역사는 역사서에 한두 줄 기록만 남았거나 아예 이름만 남은 [[듣보잡]] 소국도 아니고, [[전국칠웅]]의 반열에 든 강대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연나라 초기를 다룬 기록이 지극히 무미건조하다. 소공 때부터 연왕 쾌(噲)[* 왕이었으나 시호를 받지 못했다.] 때까지의 기록은 군주가 즉위하고 사망한 기록 외에는 남아 있는 게 별로 없을 정도다. 《사기》 <연소공세가>에는 소공 석이 분봉한 후에는 소공 석의 9대 손인 [[연혜후|혜후]](惠侯)의 기록으로 바로 넘어와 아예 중간에 실전된 군주들이 있을 정도다. 그나마 《연국사고》, 《[[죽서기년]]》, 발견된 금문 등을 통해 실전된 군주들의 이름 정도는 알 수 있게 되었다. 장공 때에는 나라의 영토를 크게 넓혔고 [[공작(작위)|공작]]을 칭할 정도로 강성해졌다. === [[전국시대]] === 그 후에도 별 일 없이 지내다가 [[전국시대]] 중반 [[연후문공|연 문후]]가 여기저기서 박대당하던 유명한 변설가 [[소진(전국시대)|소진]](蘇秦)을 등용해 재상에 앉혔다. 소진은 연나라 재상 신분으로 진나라를 제외한 다른 6국을 돌며 진나라에 대항한 동맹을 설파했고, 이를 합종책(合縱策)이라 부른다.[* 말하자면 연나라는 소진의 제2의 고향인셈. 소진의 마지막 활약(?)도 연나라를 위해 제나라에 벼슬을 하며 제나라의 국부를 탕진시키는것이었다.~~[[도림]] 대사~~] 이후 [[연역왕|역왕]](易王)대 다른나라와 같이 왕을 칭했다. 하지만 그의 아들 연왕 쾌 때에는 대혼란이 일어나 나라가 망할 뻔했다. 연왕 쾌가 신하인 [[자지(전국시대)|자지]](子之)에게 선양하면서 시작되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자지의 패거리였던 대부 [[녹모수]](鹿毛壽)가 늙은 연왕 쾌에게 신하에게 선양하는 것은 아름다운 덕을 보이는 것이라면서 자신에게 선양한다고 하면 자신은 사양하여 받지 않을 테니 두 명 모두 아름다운 이름을 후세에 길이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를 그럴 듯하게 여긴 연왕 쾌가 자지에게 선양하자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그대로 나라를 냉큼 먹어치웠다는 것이다]]. 어쨌든 선양이 이루어진 후에 태자 평(平)과 장군 시피(市被)가 반란을 일으켜서 몇 달간 싸우며 나라가 막장으로 흘러갔고 결국 시피는 패하고 죽었다. 이 와중에 강대국인 [[제(춘추전국시대)|제나라]](濟) [[제민왕|민왕]](閔王)의 군대가 쳐들어오면서 자지는 살해당했고 연왕 쾌는 [[자살]]했으며 연나라는 제나라의 [[속국]]이 되었다. 그러나 결국 [[한(전국시대)|한나라]](韓)로 도망가 있던 공자 직(職)[* 태자 평의 이복 동생으로 연왕 쾌의 [[서자]]이다. 《사기》 <연소공세가>에는 태자 평으로 나오는데 《사기》 <조세가>에 '공자 직이 연왕이 되었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죽서기년》에 '자지가 공자 평을 죽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결정적으로 옛 연나라 유물에 연왕의 이름을 직으로 새겨놓은 유물이 발굴되었다.]이 왕위에 오르면서 상황이 수습되었는데, 이 사람이 바로 연나라의 [[명군]] 소양왕(昭襄王)이다. 연나라는 소양왕 때에 단숨에 전성기로 뛰어오르게 되었는데 소양왕은 국가를 부강하게 해줄 인재를 찾기 위해 대부 [[곽외]](郭隗)에게 방법을 물었다. >곽외: "옛날에 어떤 왕이 천리마가 갖고 싶어서 신하에게 천금을 주며 천리마를 구해오라 하였습니다. 허나 그 신하는 뜬금없이 죽은 천리마의 뼈를 천금을 주고 사왔고, 화가 난 왕이 이유를 묻자 그 신하가 '천리마 뼈도 천금을 주고 살 정도면 진짜 천리마를 크게 쳐줄 것이라는 소문이 돌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신하의 말대로 1년도 되지 않아 진짜 천리마가 세 마리나 들어왔다 합니다." >소양왕: "갑자기 천리마는 왜 이야기 하는 것이오?" >곽외: "마찬가지로 별볼일 없는 인물을 후하게 대한다면 천리마 같은 인재가 모여들 거 아니겠습니까?" >소양왕: (아직도 감을 못 잡고) "그럼 그 말뼈다귀 같은 인간은 어디 있는 것이오?" >곽외: "[[어필|바로 신이옵니다]]." 소양왕이 곽외를 중용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자신의 재능을 뽐내고 싶었던 인재들이 연으로 마구마구 몰려들었고,[* 여기서 유래된 [[사자성어]]가 매사마골, 선시어외.] 특히 [[악의(전국시대)|악의]](樂毅)를 기용해 제나라를 성 두 개[* 남아 있는 성이 즉묵과 거 땅밖에 없었다. 즉묵성은 나중에 제나라의 전단이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 곳이고, 거성은 제민왕이 피난 중이던 곳이다.]를 남겨 놓고 모두 함락시켜 사실상 5년여 동안 제나라를 멸망시켰다. 그러나 소왕의 어리석은 아들 혜왕이 제나라 전단의 계책에 걸려 눈 앞에서 멸망시킬 기회를 놓쳤다. [[진개]](秦開)[* [[형가]]와 진시황을 암살하려던 진무양(秦舞陽)은 그의 손자다.]에게 명하여 [[고조선]]을 침범해 이천여 리의 영토를 획득했으며 동호 또한 굴복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소양왕의 아들인 [[연혜왕|혜왕]](惠王)이 제나라 [[전단(전국시대)|전단]]의 이간계로 악의를 내침으로 인해 국력이 점점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이때 성안군(成安君) 공손조(公孫操)가 [[쿠데타]]를 일으켜 혜왕을 살해했고, 연나라 왕족인 [[연무성왕|무성왕]](武成王)을 옹립하였다. 그 외에도 혜왕은 괜히 옆나라 [[조(전국시대)|조나라]](趙)와 티격태격하면서 국력을 많이 소모했다. 사소한 오해로 인해 벌어진 싸움에서 60만 대군을 소모해버렸고 수년 후 그 원수를 갚겠다고 극신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복수전을 펼쳤지만 [[방난]]에게 전멸당했다. 이게 전성기의 조나라라면 모를까 [[장평대전]]으로 40만의 장정을 잃고 골골거리던 시절의 조나라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후 군사적 방위력이 전무해지다시피 한 [[전국시대]] 말기에는 [[연왕 희]](喜)의 태자 단(丹)이 [[진시황]]을 암살하기 위해 [[형가]](荊軻)를 보냈지만 결국 암살에 실패했고, 진나라에 태자 단의 머리를 보내줬지만 진나라의 침략으로 서기전 222년에 연왕 희를 마지막으로 나라의 문을 닫게 된다. === [[초한쟁패기]] === 진말 초한쟁패기에서 [[진승·오광의 난]] 때 [[진승]]의 부하 무신(武信)의 부하인 [[한광]]이 자립하여 연왕이 되어 희씨들에 갈음하여 연나라를 재건하였으나 [[항우의 18제후왕 분봉]]에서 [[장도]]에게 밀려나고, 이후 장도는 한태조 [[고제(전한)|유방]]의 제후국이 되었으나 반역을 일으켜 제거당했으며 유방의 친구빨로 [[노관]]이 임명되었다가 역시나 노관이 모반하여 흉노로 달아난다.. 이후 연이라는 이름은 북경 일대 하북성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는데 [[삼국지]]의 [[장비]]가 자신을 연인(燕人) 이라고 하는 것도 장비의 출신 지역이 연나라 땅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북경에 [[연경]](燕京)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청나라 황제에게 보내는 사절단을 연행사(燕行使)라고 불렀는데, [[연경]]으로 가는 사신이라는 뜻이다. 명나라 때는 천자를 뵈러 간다고 조천사(朝天使)라고 불렀는데, 오랑캐 취급하던 만주족인 청나라 황제를 천자로 인정하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고, 그렇다고 생까고 살자니 청나라가 무서워서 이름이라도 깎아내려 부른 것이다.] == 조선과의 관계 == [[춘추전국시대]] 때 연은 [[고조선|발조선]]과 국경을 마주하며 충돌했다. 기원전 323년 천자국인 주나라가 약해지자 연의 37대 국군인 [[연역왕|희퇴]]가 스스로 왕(王)을 칭하고 국경 근처의 고조선을 치려 하였고, 이 시기 고조선을 다스리던 [[조선후(전국시대 시기)|조선후]] 역시 비슷한 시기 왕을 칭하였다. 당시 조선후도 연나라를 치려 하였으나 신하 [[대부례]]가 간언하여 양 측은 군대를 물리고 화해를 하였다. 이후 서기전 4세기~3세기 초 연 장수 [[진개]]가 이천 리 정도의 영토를 조선으로부터 빼앗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 때 고조선 중심지가 [[랴오닝]] 일대에서 [[청천강]] - [[대동강]]으로 이동했다는 주장이 있다. [[연왕 희]]가 요동을 넘어 [[압록강]]까지 도주하려다 실패하고 [[이신(전국시대)|이신]]에게 붙잡혔다는 기록이 있다. 후기 조선 수도가 [[평양]]이었기 때문에 연이 멸망하자 조선으로 도망치려던 게 아니냐는 추측이 있다. 이외에도 한고조 유방의 부하 ~~불알친구~~[[노관]]이 북쪽으로 달아날 때 연나라 유민 출신인 [[위만]]이 조선으로 망명해 준왕을 몰아내고 왕이 되는 일도 있었다. 연은 나라가 멸망하면서 많은 연나라 피난민들이 고조선으로 이주했고, 이후 [[초한쟁패]] 시절을 거치면서 더더욱 많은 연나라 인구가 조선에 유입되었다. == 연(희연)의 역대 군주 == [include(틀:역대 연(춘추전국시대) 군주)] * 초.[[소공석|강공]](康公) 석(奭) - 서기전 1046년 ~ 서기전 996년 * 1.[[연후극|극]](克) - 소 강공의 [[장남]]. 극, 지, 무, 헌, 화, 성 여섯 군주는 사기 연소공세가에는 기록이 안 되어 있는 군주로 팽화(彭華)의 연국사고(燕國史稿)와 금문에만 나오며 시호는 전해지지 않는다. * 2.[[연후지|지]](旨) - 소 강공의 [[삼남]]. * 3.[[연후무|무]](舞) - 지의 아들. * 4.[[연후헌|헌]](憲) - 무의 아들. * 5.[[연후화|화]](和) - 헌의 아들. * 6.(군주 불명) * 7.[[연백성|성]](聖) - 헌의 손자로 추정. * 8.(군주 불명) * 9.[[연혜후|혜후]](惠侯) - 서기전 864년 ~ 서기전 827년. 강공의 9세손. 성의 손자로 추정. * 10.[[연희후|희후]](僖侯) 장(莊) - 서기전 826년 ~ 서기전 791년. 혜후의 아들. * 11.[[연경후|경후]](頃侯) - 서기전 790년 ~ 서기전 767년. 이후의 아들. * 12.[[연애후|애후]](哀侯) - 서기전 766년 ~ 서기전 765년. 경후의 아들. * 13.[[연정후|정후]](鄭侯) 정(鄭) - 서기전 764년 ~ 서기전 729년. 애후의 아들. * 14.[[연목후|목후]](穆侯) - 서기전 728년 ~ 서기전 711년. 정후의 아들. * 15.[[연선후|선후]](宣侯) - 서기전 710년 ~ 서기전 698년. 목후의 아들. * 16.[[연환후|환후]](桓侯) - 서기전 697년 ~ 서기전 691년. 선후의 아들. * 17.[[연장공|장공]](莊公) - 서기전 690년 ~ 서기전 658년. 환후의 아들. * 18.[[연양공|양공]](襄公) - 서기전 657년 ~ 서기전 616년. 장공의 아들. * 19.[[연환공|환공]](桓公) - 서기전 617년 ~ 서기전 602년. 양공의 아들. * 20.[[연선공|선공]](宣公) - 서기전 601년 ~ 서기전 587년. 환공의 아들. * 21.[[연소공|소공]](昭公) - 서기전 586년 ~ 서기전 574년. 선공의 아들. * 22.[[연무공|무공]](武公) - 서기전 573년 ~ 서기전 555년. 소공의 동생. * 23.[[연문공|문공]](文公) - 서기전 554년 ~ 서기전 549년. 무공의 아들. * 24.[[연의공|의공]](懿公) - 서기전 548년 ~ 서기전 545년. 문공의 동생. * 25.[[연혜공|혜공]](惠公)/간공(簡公) 관(款) - 서기전 544년 ~ 서기전 536년. 의공의 아들. * 26.[[연도공|도공]](悼公) - 서기전 535년 ~ 서기전 529년. 혜공의 동생. * 27.[[연공공|공공]](共公) - 서기전 528년 ~ 서기전 524년. 도공의 아들. * 28.[[연평공|평공]](平公) - 서기전 523년 ~ 서기전 505년. 공공의 동생. * 29.[[연간공|간공]](簡公) - 서기전 504년 ~ 서기전 493년. 공공의 아들. * 30.[[연헌공|헌공]](獻公) - 서기전 492년 ~ 서기전 465년. 평공의 아들. * 31.[[연효공|효공]](孝公) 환(桓)[* [[한서]]에 기록된 이름.] - 서기전 464년 ~ 서기전 455년. 평공의 아들. * 32.[[연성공|성공]](成公) 재(載)[* 죽서기년에 기록된 이름.] - 서기전 454년 ~ 서기전 439년. 효공의 아들. * 33.[[연민공|민공]](閔公/湣公) - 서기전 438년 ~ 서기전 415년. 성공의 아들. * 34.[[연후간공|간공]](簡公)/희공(僖公) 재(載) 혹은 관(款)- 서기전 414년 ~ 서기전 373년. 민공의 아들. * 35.[[연후환공|환공]](桓公) - 서기전 372년 ~ 서기전 362년. 후간공의 아들. * 36.[[연후문공|문공]](文公) - 서기전 361년 ~ 서기전 333년. 후환공의 아들. * 37.[[연역왕|역왕]](易王) 퇴(脮) - 서기전 332년 ~ 서기전 321년. 후문공의 아들. 서기전 323년 칭왕. * 38.[[연왕 쾌|쾌]](噲) - 서기전 320년 ~ 서기전 318년. 역왕의 아들로 자지에게 선양함. * 39.[[자지(전국시대)|자지(子之)]] - 서기전 317년 ~ 서기전 314년. 연왕 쾌의 신하. * 40.[[연소왕|소왕(昭王)/소양왕(昭襄王) 직(職)]] - 서기전 313년 ~ 서기전 279년. 연왕 쾌의 아들.[* 이복형으로는 자지에게 피살당한 태자 평이 있었다.] * 41.[[연혜왕|혜왕]](惠王) 융인(戎人)[* 연나라 유물에 명문(銘文)에는 융인(戎人)으로 기록.] - 서기전 278년 ~ 서기전 271년. 소왕의 아들. 자연사 또는 성안군(成安君) 공손조(公孫操)에게 시해당함.[* 사기 연소공세가에서는 혜왕이 죽었다라고 자연사한 걸로 나오지만 조세가(趙世家)에서는 연나라 재상 성안군 공손조(방계 왕족으로 추정)가 그들의 왕을 시해했다고 나온다. 조세가가 맞다면 시기상 그 때 시해당한 왕이 혜왕인데 이들이 왜 혜왕을 죽였는지는 알 수 없다.] * 42.[[연무성왕|무성왕]](武成王) - 서기전 270년 ~ 서기전 258년. 사기에서는 혜왕과의 관계가 불분명한 군주지만[* 사기에서는 아예 혜왕과 무성왕의 관계가 전혀 언급되지 않고 혜왕이 사망하자 무성왕이 뒤를 이었다고만 나온다.] 혜왕의 아들[* [[동진]](東晉) 역사학가 [[서광]](徐廣)의 설이다.]로 추정. * 43.[[연효왕|효왕]](孝王) - 서기전 257년 ~ 서기전 255년. 무성왕의 아들. * 44.[[연왕 희|희]](喜) - 서기전 254년 ~ 서기전 222년. 효왕의 아들. 태자 단(丹)의 아버지. [[진(통일왕조)|진나라]](秦)에 의해 멸국됨. == 초한쟁패기의 연의 역대 군주 == * [[한광]](韓廣) - 서기전 209년 ~ 서기전 206년. * [[장도]](臧荼) - 서기전 206년 ~ 사기전 202년. * [[노관]](盧綰) - 서기전 202년 ~ 서기전 195년.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연나라, version=60)] [[분류:춘추전국시대/국가]] [[분류:후국]] [[분류:왕국]] [[분류:기원전 3세기 멸망]] [[분류:기원전 2세기 멸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