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연(춘추전국시대) 군주)] ||||||<table align=right><bgcolor=#6A5ACD> '''{{{#ece5b6 연나라 38대 국군[br] 제 2대 왕 {{{+1 연왕 쾌}}} 燕王 噲}}}''' |||||||||| ||||<bgcolor=#6A5ACD> '''[[성씨|{{{#ece5b6 성}}}]]''' |||| [[희]](姬) || ||||<bgcolor=#6A5ACD> '''[[휘|{{{#ece5b6 휘}}}]]''' |||| 쾌(噲) || ||||<bgcolor=#6A5ACD> '''{{{#ece5b6 아버지}}}''' |||| [[연역왕]](燕易王) || ||<bgcolor=#6A5ACD> '''{{{#ece5b6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314년 || ||<bgcolor=#6A5ACD> '''{{{#ece5b6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320년 ~ 기원전 318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중국 [[전국시대(중국)|전국시대]] [[연(춘추전국시대)|연(燕)나라]]의 제38대 [[군주]]. [[연역왕]]의 아들. [[소양왕(연)|연소왕]](燕昭王)의 아버지. 그는 상국 [[자지(전국시대)|자지]](子之)에게 선양하고 은둔해있다가 자지와 태자 희평이 서로 싸워 내분을 일으키고, 이 때 이를 지켜보던 [[제선왕]](齊宣王)[* [[죽서기년]]에 나오는 기록. [[사마천]](司馬遷)의 [[사기(역사책)|사기(史記)]]에서는 [[제민왕]](齊湣王) 때의 일로 나온다.]은 제나라 군대를 보내 연나라 수도인 계를 함락시켰다. 이런 혼란 중에 연왕 쾌는 자살하였다. == 생애 == 연왕 쾌 3년(기원전 318년), 연왕 쾌는 [[초(춘추전국시대)|초(楚)나라]], [[한(전국시대)|한(韓)나라]], [[위(전국시대)|위(魏)나라]], [[조(전국시대)|조(趙)나라]]와 연합해 [[진(통일왕조)|진(秦)나라]]를 쳐서 승리했다. 같은 해 연왕 쾌는 [[요(삼황오제)|요 임금]]과 [[순(삼황오제)|순 임금]]이 선양한 일을 사모하여, 그를 따른 다는 이유로 녹모수의 말에 따라 상국 [[자지(전국시대)|자지]](子之)에게 선양해 자지가 연왕이 되고 연왕 쾌는 신하가 되었다. 당연히 연왕 쾌가 죽은 뒤 그 뒤를 이어야 했던 태자 희평(姬平)이 반발해 연왕이 된 자지와 싸우니 나라는 혼란에 빠졌다. 이 틈을 타 제 선왕이 연나라를 쳤다.[* [[맹자]](孟子)가 도탄에 빠진 연나라 백성을 구하기 위해 출전하라고 했다는 말이 있는데, 제 선왕이 연나라를 약탈하여 맹자가 실망하고 떠났다고 한다.] 이 혼란 중에 연왕 쾌는 자살하였고, 연왕 자지는 거열형에 처해졌고 젓갈로 담겼다. 그리고 연왕 쾌의 태자인 희평 또한 죽었다.[* 일설에는 희평이 연왕 자지와 싸우다가 죽었다고도 한다.] 이때 한나라에 살던 서자 희직(姬職)이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연 소왕(燕昭王)이다.[* 사기와 [[열국지]]에서는 희평이 연소왕이 되었다고 나온다. 자세한 사항은 [[연소왕]] 문서 참조.] [각주] [[분류:연나라의 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