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북한 프로젝트]] [include(틀:황해남도의 시군)] ||||<bgcolor=#000000><:>{{{#white {{{+3 연안군 }}}}}}|| ||<-3><:> [include(틀:지도, 장소=황해남도 연안군)] || [[분류:황해남도]] 延安郡 / Yŏnan County [목차] == 개요 == [[황해남도]]의 연백평야 서쪽에 있는 군. 동쪽으로는 [[배천군]], 서쪽으로는 [[청단군]], 북쪽으로는 [[평산군]]과 접해있으며 남쪽으로는 [[황해]]와 접해있다. == 역사 == [[삼국시대]] [[고구려]]가 차지한 후 동삼홀군(冬彡忽郡)을 설치했다. [[신라]]가 차지한 뒤 신라 [[경덕왕]]이 해고군(海皐郡)으로 고쳤다. 고려시대에는 염주(鹽州)였다. [[조선]]시대 때 연안도호부였고 1895년에 연안군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가 되면서 1914년에 배천군과 합쳐졌으며, 두 군의 앞글자를 따서 [[연백군]]이 되었다. [[8.15 광복]] 후 [[38선]]이 그어지면서 남북으로 분단되었고, 군 대부분의 지역이 [[경기도]] 연백군에 속해 남한지역이었다. 그러나 [[6.25 전쟁]] 이후 전지역이 북한으로 넘어가면서 1952년에 연안군과 배천군으로 분할되었다. 휴전선이 그어진 후 이 지역은 주민들의 출신성분이 복잡하다고 판단하여 신해방지구(특별감시대상지역)으로 지정하였고, 주민들에 대한 통제감시를 강화했다. 임진왜란 이전 연안부사로 있었던 [[신각]][* 임진왜란에서 육지에서의 첫 승리인 [[양주시|양주]] [[해유령 전투]]의 주역.]이 '왜적이 쳐들어올 것이니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조헌]]의 권고를 받아들여 이곳의 성곽과 방어시설을 보수하였고, 이후 [[이정암]]이 이를 이용하여 의병들을 이끌고 [[구로다 나가마사]] 휘하 5,000여 명의 왜군의 침략으로부터 [[연안 전투|연안성을 사수하고 승리로 이끌었으며]], 그 결과 황해도를 지켜낼 수 있었다. == 지리 == 군의 상당수 지역이 연백평야에 해당한다. == 교통 == 도로는 해주 배천간 2급도로(대한민국 기준으로는 [[50번 국도]])가 동서로 지나간다. 철도는 [[토해선]]이 지나갔으나 북한에 의해 [[배천선]]으로 바뀌었다. [[연안역]]이 있다. == 대한민국과 연안군 == [[8.15 광복]] 이후 [[6.25 전쟁]] 전까지 [[38선]] 이남의 연안군 지역은 [[대한민국]]의 실효영토였으며 [[경기도]] 연백군[* 1952년 이전까지 북한에서는 남연백군이라고 불렀다. 38선 책정 후 북한은 38선 이북의 연백군과 평산군 일부를 합쳐 연백군을 따로 설정했기 때문이다.]에 속해 있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도]]와 거리상 매우 가깝다. 그래서 연백 출신 실향민들이 많이 정착하기도 했다. 통일 후에는 교동도와 다리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국토개발계획에 의하면 [[서해안고속도로]]가 교동도를 지나 연안군으로 연장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