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명사)] ||성명||여진(呂震)|| ||자||극성(克聲)|| ||출생지||섬서(陜西) 임동(臨潼)|| ||출생-사망||1365년~1426년|| 명나라의 인물. [목차] == 아부로 승진가도를 달리다 == 1386년에 향거(鄕擧)[* 주(周) 나라에서 유래한 인재등용법으로, 지방에서 어질고 재능 있는 사람을 추천하면 조정에서 그 능력에 따라 벼슬을 시킴을 말함]로 국자감(國子監)[* 유학을 가르치던 국립대학]에 들어갔으며, 절계로 가 전지(田地)[* 논과 밭]를 조사하고 돌아와서 보고하자 산동안찰사시첨사, 북평안찰사첨사 등을 역임했다. 홍무제의 장남 황태자 의문태자(懿文太子)가 죽자 그의 16살된 아들이 뒤를 이어 황제에 즉위해 [[건문제]](建文帝)가 되었으며, 홍무제가 자신의 아들들을 각 지방의 왕으로 봉해서 영지를 줬다. 건문제는 황자들의 영지를 삭감해 세력을 약화시키려 하자 홍무제의 4남인 연왕(燕王) 주체가 이에 반발해 자신의 봉지였던 북경에서 반란을 일으켜 당시 수도였던 남경(난징)을 점령해 황제에 즉위하면서 [[영락제]](永樂帝)가 된다. 이 과정에서 여진은 건문제를 배반하고 영락제에게 협력하는 기회주의자의 모습을 보이며, 영락제 시절에 여러 번 승진해 예부상서(禮部尙書)[* 현재의 차관에 해당]가 되었다. 학술적인 소양도 없이 예관(禮官)[* 예의,교육등을 가르치던 관청]이 되어 일의 대체적인 요령을 잘 알지 못했고, 일은 잘못하는 주제에 아부만은 기막히게 잘했다. == 남다른 기억력에 대한 일화 == 무능한 인물이었지만 그래도 기억력 하나는 출중해 아부하는데 유용하게 썼다고 한다. 영락제의 아들인 [[홍희제]](洪熙帝) 때 그의 남다른 기억력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보통 조회 때 상소문을 올릴 경우 원본을 베끼고 주위 관원들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보고를 올린다. 그런데 여진은 아무리 많은 상소문이라도 주위의 도움없이 그냥 입으로만 모든 내용을 한자도 틀림없이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또 어느 날은 홍희제는 신하들이 사냥을 나갔다가 한 비석을 발견하고 그것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1년 후에 그 비석이 생각난 인종은 비석을 가져오게 명했다. 그런데 여진이 수고스럽게 사람을 보낼 필요 없고 자신이 전부 써보겠다면서 종이와 붓을 가져오게 해 1년 전에 보았던 내용을 써냈으며, 과연 저 내용이 맞는지 궁금했던 홍희제는 몰래 사람을 보내 비석과 여진이 쓴 글을 비교해 봤는데 한자의 오류도 없이 정확했다고 한다. == 평가 == 이상의 기록을 살펴볼 때 무능력하지만, 윗사람에게 아첨하는 재주만큼은 발군이었던 걸로 보이며, 그 기막힌 처세술로 1대 황제 [[홍무제]]부터 4대 황제까지, 2대 황제 때 주인이 바뀌었음에도 바로 바뀐 주인에게 붙은 후 조정의 요직을 맡으며 잘 먹고 잘 살다간 인물. == 미디어믹스 ==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 등장한다. 배우는 심우창. [[분류:명나라의 인물]][[분류:1365년 출생]][[분류:1426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