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동음이의어/ㅇ]][[분류:이름이 같은 지역/대한민국]] [목차] == 餘數 == 남은 수. == 餘水 == 남은 물. [[댐]]에서 물이 넘치려 할 때 이를 빼내는 관을 여수로라고 한다. == 旅帥 == [[조선]]시대 군대조직인 여(旅)의 지휘관이다. 조선 전기 군사편성의 원칙은 [[세조(조선)|세조]] 때 편찬된 오위진법(五衛陣法)에 바탕을 둔 것이다. 즉, 이는 졸(卒)―오(伍)―대(隊)―여(旅)의 하위조직 위에 통(統)―부(部)―위(衛)의 상위조직을 구성하여 5위를 이루도록 한 것이다. 가장 말단의 단위조직인 오는 5명의 졸병(卒兵)으로 이루어지고, 다시 1대는 5오로, 5대가 모여 1여를 이루었다. 따라서, 1여는 125명의 졸병으로 구성되었다. 이 125명의 지휘관이 여수다. 종8품이었으며, 주로 정병([[기병]], [[보병]])에서 승진했다. == 女宿 == 제사를 주관하는 [[별자리]]. == 呂嬃 == [[초한전쟁]] 시기 [[여태후]]의 여동생이자 [[번쾌]]의 아내. 전한 제2대 황제 혜제의 이모이다. 20대 내지 30대쯤 되었을 때도 여후가 '어린아이'라고 평할 만큼 어리광이 심한 성격이었던 듯 하며, 친가족을 끔찍하게 아꼈던 여후의 성격 덕에 유방이 죽은 후로 꽤나 천방지축처럼 살았다. 여수는 남편 번쾌와 금슬이 매우 좋았는데, 진평이 어쩌다보니 번쾌를 잡아 가두었던 일로 원한을 가져서[* 실제로는 진평은 본래 그 자리에서 죽었을 번쾌의 목숨을 구해준 것이었다.] 여후에게 달라붙어서 끈질기게 진평을 모함했다. 이때문에 진평은 심신으로 매우 고생을 했고, 한참 후에야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무려 [[조참]]이 죽은 6년 후가 되어서야'''. 이 와중에도 여후는 여수를 엄히 꾸짖기보단 웃으면서 '어린애 장난'으로 넘겼는데, 가족이 엮이면 영 원칙이 없던 그녀의 성격을 보여주는 듯하다. ~~왠지 [[항우|누가]] 생각나는 것 같기도~~ 한편 이런 성격과는 달리 상황을 읽는 눈은 또 가족 중에서는 총명했던지 [[진평]]과 [[주발]]이 여록의 친구인 [[역기]]를 조종해서 그를 낚아 군권을 빼앗으려고 할때 여수가 나서서 '''"너 때문에 우리들이 다 죽게 생겼구나! 우리가 군사를 잃으면 어디에 발을 붙인단 말이냐!'''"고 꾸짖어서 하마터면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 뻔 했다. 결국 여씨 일족은 남김없이 참수되었는데 여수는 유독 구타당해서 죽었다고 언급된다. 진평이 개인적으로 화풀이를 한 듯.--그야 진평 입장에서는 여수가 은혜를 복수로, 엄청 오래 갈궜으니..-- == 麗水 == * [[대한민국/지명]] 대한민국의 지명 외에도 [[중국]] [[저장성]]의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도시이며 한국의 지명인 여수와 같은 한자를 쓴다. 다만 중국에서 쓰는 여수는 [[간체자]]인 丽水(Lìshuǐ 리수이)로 표기하기 때문에 한국 여수를 중국 [[간체자]]로 바꾸거나 중국 리수이를 한국 [[정체자]]로 바꾸지 않으면 같은 한자인지 모른다. 이름이 같아서인지 여수 엑스포가 중국에서 열렸던 것으로 생각한 중국인들도 많았다고 한다. 여담으로 중국 도시중 잘 알려진 도시 [[청도]]와 [[칭다오]]의 [[몬더그린]]과는달리 [[한자]] [[병음]] [[성조(언어)|성조]] 모두 같음에도 불구하고 둘의 연관성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아무런 관계가 없어보이는 성남시 여수동마저 지명의 모태([[천자문]]의 "금생'''여수''' 옥출곤강")는 같다고 한다. === [[전라남도]] [[여수시]] === 사람 인 모양으로 생겼다. 인구는 약 30만명이다. 전라남도 [[순천시]] 남쪽에 위치한 반도도시.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여수동 === [[법정동]]이며, [[행정동]]상으로는 도촌동에 속한다. 성남시청이 있다. == 呂水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군/행정#s-4|계곡면]] 여수리 == [[여우]]의 방언 == 여우를 뜻하는 중세 국어 '''여ㅿㆍ'''에서 나온 방언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