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련문서: [[아나리온]], [[발라카르]], [[카스타미르(가운데땅 세계관)]], [[알다미르]], [[움바르]] [[파일:250px-Matěj_Čadil_-_Eldacar_of_Gondor.jpg]] Eldacar [목차] == 소개 == 곤도르의 제 21대 국왕인 엘다카르는 [[제3시대]] 1255년 로바니온에서 [[발라카르]]와 비두마비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릴 적 이름은 로바니온의 말로 '''비니샤라'''였다. 그는 나중에 [[퀘냐]]로 '''요정 투구'''라는 의미인 '''엘다카르'''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는 곤도르 건국 이후, 처음으로 국외에서 태어난 왕이었다.[* 제 1대 [[엘렌딜]]부터 제 3대 [[메넬딜]]까지의 왕들은 [[누메노르]]에서 태어났다.]뿐만 아니라 그는 순수한 [[두네다인]]이 아닌 혼혈이었고[* 누메노르인이 [[발라(가운데땅)|발라]]들에게서 받은 사기적인 능력을 생각하면 반대파들의 주장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반란 행위를 정당화 시키진 않는다.], 이것은 후술할 동족 분쟁의 원인이 되어 재위 기간 내내 그를 괴롭혔다.[* 따라서 아래 항목의 이름을 '재위 기간'이 아닌 '동족 분쟁'으로 기재한다.]엘다카르는 1432년 부터 1437년까지 재위하였고, 1447년 다시 왕위를 되찾아 1490년에 235세의 나이로 서거할 때까지 도합 48년간 재위하였다[* 망명 기간은 제외한다.]. == 동족 분쟁 == > '''곤도르의 첫 번째 시련''' === 1432년 === 부왕 발라카르가 서거하자 왕세자인 그가 즉위했지만 전국에서 반대파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특히 작은할아버지 칼리메흐타르의 손자인 6촌 동생 해군 사령관 [[카스타미르(가운데땅 세계관)]]이 이끄는 반란군의 세가 가장 강하였고, 나머지 반군도 그들에 합류하였다. 그러나 엘다카르를 꺾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이 드러났다. 그에게는 위대한 [[두네다인|누메노르인]]의 피 뿐만 아니라 두려움을 모르는 북부인의 기백도 있었던 것이다. 결국 반군이 반란 시작 후, 수도인 [[오스길리아스]]를 포위하는데는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반지의 제왕]]에는 이렇게 서술되어 있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많은 곤도르인들이 새 왕 엘다카르가 비록 정통성은 부족할 수 있어도 인간적인 면이나 지도자적 측면에서 뛰어났기 때문에 그를 지지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라 추측해 볼 수 있다.] === 1437년 === 반군은 수도 [[오스길리아스]]를 포위하였고, 치열한 전투 끝에 오스길리아스는 함락되었다[* 전투 도중 오스길리아스에 보관되어있던 [[팔란티르]]가 [[안두인 대하]]에 빠져 소실되었는데 이 돌은 [[미나스 티리스|미나스 아노르]]와 [[미나스 모르굴|미나스 이실]]의 팔란티르를 도청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곤도르 측에서는 이를 찾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끝내 찾지 못하였다.]. 엘다카르는 차남 [[알다미르]]와 함께 간신히 수도를 탈출하였지만 장남 오르넨딜은 반군에게 붙잡혀 처형당하고 말았다. 또한 카스타미르는 전쟁에 불가피하게 따르는 약탈과 학살을 필요 이상으로 자행하였고 이로 인해 [[이실리엔]]과 [[아노리엔]]지역의 백성들의 인심이 카스타미르에게서 떠났다. === 1438~1446 === 외가가 있는 로바니온으로 망명한 엘다카르는 북부인과 부근의 두네다인을 모아 반격을 준비하였다. 그동안 카스타미르는 수도를 자신의 본거지인 [[펠라르기르]]로 옮기려하여 수도권 주민들의 인심을 잃게 되었다. === 1447년 === 엘다카르가 군사를 이끌고 카스타미르를 응징하러 오니, 이실리엔과 아노리엔, [[칼레나르돈]]도 이에 호응하였다. 마침내 에루이 여울목에서 엘다카르와 카스타미르의 큰 전투가 벌어지니, 이를 '''에루이 여울목 전투(Battle of the Crossings of Erui)'''라 하였다. 결국 엘다카르가 카스타미르를 죽이고 승리, 왕권을 회복하였다. 카스타미르의 아들은 [[펠라르기르]]로 달아나고, 엘다카르는 펠라르기르를 포위하였으나..... === 1448년 === 엘다카르 측에는 제해권이 없었다. 카스타미르가 왕이 되기 전 직업이 해군 사령관이었고, 카스타미르가 죽었음에도 해군의 대부분은 그의 아들을 지지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반군은 바다를 통해 [[움바르]]로 달아나 그 곳에서 분조를 세우고 곤도르와 대립하게 되었다. == 동족 분쟁의 결과 == 동족분쟁의 결과 곤도르는 움바르를 다시 빼앗김으로써 남쪽영토를 많이 상실하고, 다시 해적과 하라드림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는 점뿐만 아니라, 과거 [[아르파라존]]이 [[사우론]]을 사로잡은 상징적인 지역을 잃었다는 점에서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비록 [[텔루메흐타르 움바르다킬]]이 되찾았지만 얼마 지나지않아 다시 잃어버린다.]. 비록 동족분쟁으로 곤도르의 인구는 많이 감소했지만, 엘다카르와 함께 온 북부인들이 이곳에 많이 머물면서 어느 정도 보충이 되었다. 북부인들이 곤도르의 주민으로 편입되면서 누메노르와 북부인의 피는 점점 섞이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하여 [[두네다인|누메노르인]]의 지혜와 수명이 북부인의 피에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누메노르인의 권능은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고, 이는 축복의 땅이었던 옛 [[누메노르]]를 잃은 누메노르인에게서 발라의 축복이 서서히 떠나갔기 때문이었다.[* 누메노르의 망명왕국인 [[아르노르]]와 [[곤도르]]의 왕들의 수명을 헤아려보면 대가 내려갈 수록 1~2년씩 미세하게 줄어드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넘사벽이었던 곤도르의 국력은 이 내전에서, 그리고 그 다음 역병에서 팍팍 깎여나가며 '반지의 제왕' 본편에서 묘사되는 다 망해가는 수준으로 열화된다. [[분류:레젠다리움/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