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일본의 야구 선수]][[분류:일본의 남성 방송인/ㅇ]][[분류:일본 남배우/ㅇ]][[분류:일본 남가수/ㅇ]][[분류:일본의 정치인]][[분류:스포츠평화당 국회의원]][[분류:프롬 파이브 국회의원]][[분류:민주당(일본) 국회의원]][[분류:1947년 출생]][[분류:고치현 출신 인물]][[분류:호세이대학 출신]][[분류:운동선수 출신 정치인]][[분류:연예인 출신 정치인]][[분류:배우 출신 정치인]][[분류:음악가 출신 정치인]] * [[야구 관련 인물(NPB)]] [[파일:external/image.news.livedoor.com/cbecb_759_7ffa43f5_6831636f.jpg]] ||<:> '''이름''' || 에모토 타케노리(江本孟紀) || ||<:> '''생년월일''' ||<:> [[1947년]] [[7월 22일]] || ||<:> '''출신지''' ||<:> [[일본]] [[고치현]] || ||<:> '''학력''' ||<:> 고치 상업 고등학교 - [[호세이대학]] || ||<:> '''포지션''' ||<:> [[투수]] || ||<:> '''투타''' ||<:> 우투우타 || ||<:> '''프로입단''' ||<:> 1970년 드래프트 번외 || ||<:> '''소속팀''' ||<:> [[토에이 플라이어즈]] (1971) [br] [[난카이 호크스]] (1972~1975) [br] [[한신 타이거스]] (1976~1981) || [목차] == 인물 개요 == 前 [[일본프로야구]] 선수, 해설가, [[정치가]]. 아버지가 [[경찰]]이어서 전근이 잦았던 탓에 그만큼 전학도 많았지만, 어릴 적부터 [[나가시마 시게오]]를 동경하여 전학을 계속 다니면서도 야구를 계속 하였다. 고치 상업고교 시절인 1964년 학교 야구부가 춘계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고시엔]] 진출이 결정되었는데, 동료 부원이 불상사를 일으켜 고시엔 출장자격은 물론 그 다음 해 예선 진출 자격이 정지되는 바람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적도 있다. == 현역 시절 == 고교 졸업 후 [[니시테츠 라이온즈]]의 4위 지명을 받았으나 거부하고 [[호세이대학]]에 진학하였지만, 당시 대학 야구부 감독이었던 마츠나가 레이이치의 방침에 반발하여 거의 벤치에만 머물러 있는 신세였고, 후에는 거의 탈퇴나 마찬가지인 신세가 되었다. 그 후 [[사회인야구]]팀은 쿠마가이구미[* 1948년부터 1993년까지 존재했던 일본 사회인야구팀으로 도시대항야구대회 우승을 수 차례 차지한 팀이다. 프로야구선수도 여러명을 배출하였다.]에서 활동했다. 1970년 드래프트 번외로 [[도에이 플라이어즈]]에 입단, 첫 해 주로 [[중간계투]] 요원으로 26경기에 출장했지만 0승 4패의 부진한 성적에 머물렀다. 입단 당시 [[오스기 카츠오]], [[백인천]]에게 배팅볼을 던져줄 때 스트라이크가 들어가지 않아 도바시 마사유키 코치를 포함 "바보 자식!바보냐!" "이 친구가 전문투수?"등 맹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스트라이크를 못 던지면 그만해야 겠다는 각오로 [[장훈(야구선수)|장훈]]에게 던질 때도 역시나 스트라이크가 들어가지 않았지만 장훈은 빗나가는 공에도 타격을 하고 에모토가 던지는 공을 한 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으며 치면서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에모토는 회상하기를 "그때 장훈 선배님과의 배팅연습 덕분에 신인임에도 프로야구 1군 엔트리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확실히 큰 은인 중의 한 분입니다"라고 고마움을 표하고 있다. 그 해 시즌 오프 때 트레이드로 [[난카이 호크스]]에 이적했는데, 이것은 에모토의 재능을 알아본 당시 난카이의 [[감독 겸 선수]]이던 [[노무라 카츠야]]의 계획에 의한 트레이드 였고, 결과적으로 노무라는 탁월한 선택을 한 셈이 되었다. 난카이 입단 첫 날 야구장에 외제차 링컨을 타고 내리면서 노무라는 "너희들 나처럼 좋은 차 타고 싶으면 제대로 열심히 연습해"라고 말했다고 한다. 에모토는 도에이의 팀 분위기가 무서웠으며 이에 반해 난카이에는 동급생인 [[카도타 히로미츠]] 등이 있어서 위화감이 없었다고 말한다. [[파일:external/www.sanspo.com/npb16020511000001-p2.jpg]] 난카이 시절. 에모토는 난카이 이적후 확 각성. 이적 이후 [[선발투수|선발]]로 주로 뛰며 이적 첫해인 1972년 16승을 거두었고 이듬해인 1973년에도 12승을 기록해 팀의 전기리그 우승에 공헌, 그 후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구원투수로 상대팀 [[한큐 브레이브스]]의 최후의 타자였던 [[타카이 야스히로]][* 대타 홈런 세계 기록(27개) 보유자.]를 삼진으로 격퇴. 팀의 우승을 결정지으며 난카이의 퍼시픽리그 우승에 공헌하는 맹활약을 펼쳤고 그 이후로도 매년 두자릿수 승수를 거두며 주축 투수로 [[나름]] 활약을 보였다. 1975년 시즌 종료 후 에모토는 [[에나츠 유타카]]의 트레이드 상대로 [[한신 타이거스]]에 이적하게 되었는데, 에나츠가 "왜 내가 에모토 따위 녀석이랑 트레이드 되어야 하는건가?" 라고 불평한 것을 들은 에모토가 발끈하여 "너 지금 말 다했냐?" 라고 맞대응하며 한바탕 설전을 벌였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오히려 에모토와 에나츠는 서로 오해를 풀고 사과한 후 둘도 없는 막역지우로 발전했다.[* 1993년 에나츠가 각성제 소지 혐의로 체포당하자 [[국회의원]] 신분이던 에모토가 직접 법정에 출두하여 증인으로 나서기도 했고, 법정구속 당하여 교도소에 수감된 에나츠에 구명 운동에 누구보다도 열을 올리며 결국 에나츠가 가석방 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싸우고 나서 정든 케이스~~ [[파일:external/www.zakzak.co.jp/bbl1108150934001-p2.jpg]] 한신 시절. ~~30년간 코시엔을 지켜온 노장투수 에모토 타케노리(49)~~ 어찌됐든 한신의 일원이 된 에모토는 1979년 까지 매년 10승 이상을 찍었지만 이후 기량이 쇠퇴하며 에모토의 입지는 점접 좁아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81년 8월 26일, [[야쿠르트 스왈로즈]]와의 경기에 등판했다가 된통 털리고 내려온 에모토는 덕아웃에서 라커룸으로 가는 복도에서 혼잣말로 '''"벤치가 [[바보|밥통]]들이라 야구 못해먹겠네"''' 라면서 당시 한신 감독인 [[나카니시 후토시]]를 씹었는데 이게 하필 근처에 있던 '''눈치없는''' 기자들 귀에 들어가며 크게 기사화 돼버렸고, 논란의 중심에 선 에모토는 본의가 아니라고 강하게 해명했지만 주변의 비난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그 해 시즌 종료후 유니폼을 벗고 말았다. 에모토의 프로 11시즌 통산 성적은 '''395경기 등판, 113승 126패 19세이브, 평균자책 3.52.''' 또 통산 24[[보크(야구)|보크]]는 NPB 통산 1위, 1973년의 한 시즌 10보크는 퍼시픽리그 단일시즌 기록이다(...) ~~그러고 보니 에모토를 발굴한 [[노무라 카츠야]]도 [[병살타]] 통산 1위~~ == 현역 은퇴 이후 == 은퇴 후 에모토는 [[후지 테레비]], [[니혼 TV]] 야구 해설가로 활동했는데, 1982년 쓴 '''"프로야구를 10배 재미있게 보는 법"'''이 [* 이 책은 정식출간인지 해적판으로 출간된거지는 알 수는 없으나 출간된지 얼마 안되어 국내에서도 번역되어 시중에 팔린 출판물이다.] 무려 200만부나 팔리고 2차례나 영화화되며 크나큰 인기를 누리며 베스트셀러 작가에 등극했고, 해설가 활동 외에도 탤런트, [[가수]]로도 명성을 날리며 오히려 현역 시절보다 높은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파일:external/userdisk.webry.biglobe.ne.jp/127174210458916332084.jpg|width=400]] '''프로야구를 10배 재미있게 보는 법'''의 영화판 1탄 포스터. 가운데의 공 던지는 노란 바지의 정장 신사가 [[에모토 타케노리]]의 캐릭터다. [[파일:에모토_타케노리_음반.jpg]] 가수 에모토의 음반 표지. 이 인기를 바탕으로 에모토는 1992년 총선거에 스포츠 평화당[* [[안토니오 이노키]]가 이끌던 정당. 2007년 해체.] 비례대표로 출마하여 참의원에 당선, 정치계로 진출하였고 이후 당적을 [[신진당]], [[프롬 파이브]], 민정당, [[민주당(일본 1998년)|민주당]]으로 옮겨 2선 의원으로 2004년까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였다. 2004년 1월 민주당을 탈당하여 [[오사카]]부 지사 선거에 출마했으나 현직 부지사이던 오타 후사에 에게 [[떡실신]] 당하며 완패, 그 길로 에모토는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하지만 현재도 대학 동창 [[히라노 사다오]], [[오자와 이치로]]와 교류하고 있다. 현재 에모토는 사업가로 일하고 있으며, 한편으로 [[태국]] 국가대표 야구팀의 총감독을 맡은 바 있다. == 소속 정당 ==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808080><tablebgcolor=#fff,#191919><rowbgcolor=#808080> '''{{{#fff 소속}}}''' || '''{{{#fff 기간}}}''' || '''{{{#fff 비고}}}''' || || [include(틀:스포츠평화당)] || 1992 - 1995 || 정계 입문 || || [include(틀:무소속)] || 1995 || 탈당 || || 자유연합 || 1995 - 1997 || 입당 || || 자유의 모임 || 1997 || 당명 변경 || || [include(틀:프롬 파이브)] || 1997 - 1998 || 당명 변경 || || [include(틀:민정당(일본))] || 1998 || 합당 || || [include(틀:민주당(일본))] || 1998 - 2004 || 합당 || || [include(틀:무소속)] || 2004 - 2005 || 부지사 선거 출마로 탈당 || || [include(틀:국민신당(일본))] || 2005 - 2013 || 창당 || || [include(틀:무소속)] || 2013 - || 정당 해산 ||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