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905년 출생]][[분류:1951년 사망]][[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나치당원]][[분류:슈츠슈타펠/인물]][[분류:전쟁범죄자/나치 독일]][[분류:교수형된 인물]] [include(틀:슈츠슈타펠/장성급 지휘관)] ||||<tablealign=right><tablebordercolor=#666> {{{#!wiki style="margin: -4px -9px" [[파일:에리히 나우만1.jpg|width=100%]]}}}|||| ||<#666> {{{#FFF 이름}}} ||<(>'''Erich Naumann'''[br] 에리히 나우만|| ||<#666> {{{#FFF 출생}}} ||<(>[[1905년]] [[4월 29일]], [[작센 제국]] 마이센 || ||<#666> {{{#FFF 사망}}} ||<(>[[1951년]] [[6월 7일]], [[독일]] 란츠베르크 형무소 || ||<#666> {{{#FFF 복무}}} ||<(>[[슈츠슈타펠]] (1935년 ~ 1945년) || ||<#666> {{{#FFF 최종계급}}} ||<(>[[무장친위대]] [[슈츠슈타펠]] 여단지도자 || [목차] [clearfix] == 초기 행적 == 에리히 나우만 (Erich Naumann) [[작센 왕국]] 마이센에서 태어난 에리히 나우만은 16세에 학업을 마친 후 상점에서 견습점원으로 일했다. [[1929년]]에 [[나치당]]에 입당한 그는 돌격대에도 가입했지만 긴 장검의 밤 사건 이후 친위대로 이적했다. [[1935년]]에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친위대 본부 대외첩보부 부장이던 하인츠 요스트 휘하에서 일한 나우만은 [[뉘른베르크]]의 보안경참 감독관을 지냈다. == [[제2차 세계 대전]] == [[1939년]]에 독일이 [[폴란드 침공|폴란드를 침공]]한 후 [[아인자츠그루펜]] VI의 사령관이 된 나우만은 [[독소전쟁]]이 발발한 후인 [[1941년]] [[11월]]에 [[아인자츠그루펜]] B 부대의 사령관이 되어 [[1943년]] [[2월]]까지 1년간 이 부대를 이끌었다. 그 사이 [[유대인]]을 비롯한 수많은 포로를 총살하였는데, 특히 스몰렌스크에서 17,000명을 처형한 책임자이기도 했다. [[1942년]] [[12월]]에 나우만은 [[베를린]]에 134,298명을 처형했다고 보고했었다. == 전후 재판과 처형 == [[파일:나우만 재판.jpg]] [[1943년]] [[9월]]부터 [[1944년]] [[7월]]까지 [[네덜란드]]의 보안경찰 및 친위대 사령관으로 일한 나우만은 [[베를린 공방전]] 때 시내에 있었지만 살아남아 전후 [[뉘른베르크 특수작전집단 재판]]에서 [[아인자츠그루펜]] 사령관으로 기소되었다. 나우만은 총살형 및 가스로 인한 처형도 했다고 인정했다. 사형판결을 받은 그는 [[1951년]] [[6월 7일]]에 다른 [[아인자츠그루펜]] 지휘관들과 함께 란츠베르크 형무소에서 [[교수형]]이 집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