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마이어(Egon Mayer : 1917년 8월 19일~1944년 3월 2일)''' [[분류:1917년 출생]][[분류:1944년 사망]] [목차] == 약력 ==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공군]] 소속으로 353회 출격하며 적기 102대를 격추시킨 [[에이스(전투조종사)|에이스]] 파일럿. 에곤 마이어의 격추수는 100대 수준이지만 그 모두를 강력한 [[전투기]]와 잘 훈련된 [[파일럿]]들을 상대하는 [[서부전선]]에서 거두었기 때문에 그의 전과는 [[동부전선]]으로 따지면 200기 이상에 해당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그의 전공에는 4발 [[폭격기]] 26대와 [[스핏파이어]] 51대, [[P-47]] 썬더볼트 같은 고성능 전투기도 12대나 포함되어 있다. 에곤 마이어가 더욱 주목할만한 이유는 순전히 서유럽의 서부전선에서만 100대 이상을 떨군 첫 에이스이기 때문이다. == 전반기 == [[독일 제국]] 시대가 곧 막을 내리는 [[1917년]]에 남부 독일의 아름다운 보덴 호수를 끼고 있는 관광지 콘스탄츠(Konstanz)에서 목장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마이어가 소년이 되자 또래의 아이들처럼 비행을 동경하게 되었고, 이에 차편으로도 족히 3시간은 달려야 도착하는 벨렌베르크(Bellenberg)에 있는 활공 클럽을 다니면서 [[글라이더]] 조종 교육을 받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가 잠깐의 활공을 즐기기 위해 비행장까지 가는 길은 오늘날은 호수를 가로지르는 [[카페리]]가 운항되고 있어 2시간 반이면 도착할 수 있지만 당시는 그렇지 못했다. == 전투기 조종사로 == [[김나지움]]을 마치고 졸업증서를 딴 에곤 마이어는 [[1937년]] 11월 1일에 글라이더 조종 경력을 밑천 삼아 전투기 조종사가 되려고 [[공군]]에 자원 입대했다. [[베를린]] 인근의 가토우(Gatow)에 있는 제2전투비행학교(Luftkriegsschule 2)에서 전투기 조종 훈련을 마친 에곤 마이어는 [[1939년]] 8월 1일자로 [[소위]] 계급장을 달게 되었다. 그가 임관을 한 후 딱 한달 후인 9월 1일에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해 거대한 전쟁에 불을 당겼다. == 프랑스 침공과 해협 전투 == [[JG 2|제2전투항공단 리히트호펜(JG 2)]]에 배치된 그는 [[프랑스]] 침공전에 참전해 [[M.S.406|MS.406]] 전투기를 첫 제물로 삼으면서 차근차근 격추수를 올려나갔다. 에곤 마이어 소위가 [[멘토]]로 삼은 전투기 파일럿은 자신이 엄호를 맡고 있던 당대 최고의 에이스인 [[헬무트 뷔크]] 소령이었다. 마이어는 뷔크를 따라다니며 그의 정확한 사격술과 용맹무쌍한 감투정신을 배우게 되는데, 이것은 훗날 그가 중폭격기 킬러로 명성을 떨치는 중요한 디딤돌이 되었다. 해협 전투 기간 중에 에곤 마이어는 [[스핏파이어]] 3기를 잡아먹는 댓가로 자신도 피격되었으나 프랑스 해안의 모래사장에 불시착해 간신히 돌아올 수 있었다. [[1940년]]이 저물 때까지 그는 공격 기회를 거의 얻기 힘든 윙맨이었음에도 4기 격추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가 우상처럼 여기던 헬무크 뷔크는 마이어가 부재 중인 출격에서 스핏파이어를 모는 [[RAF]]의 더블 에이스 [[https://blog.naver.com/naljava69/220132685946|존 던다스]]에게 격추되어 전사해버렸다. [[히틀러]]가 [[바다사자 작전]]을 무기한 연기하고 부대에 여유가 생기자 에곤 마이어는 베르노이헨(Werneuchen)의 비행학교에서 실전을 겪은 선배 파일럿으로 후배들에게 강의를 하기도 했다. == 비행단장이 되다 == [[1941년]] 6월 10일, 에곤 마이어 중위는 [[JG 2]] 제7비행중대장으로 임명되었다. 2개월 뒤 21번째 적기를 격추한 그가 8월 1일에 [[에리히 라이에]](Erich Leie : 1916~1945 / 76대 격추)와 루돌프 프란츠(Rudolf Pflanz : 1914~1942 / 52대 격추)와 함께 셋이서 [[철십자 훈장|기사철십자장]]을 받는 광경은 보도반에 의해 촬영되어 독일 주간뉴스(Die Deutsche Wochenschau)를 통해 [[제3제국]] 방방곡곡에 상영되었다. 이후 적기 16기를 더 격추시키고 [[1942년]] 7월에 [[독일 십자훈장|독일 황금십자장]]을 수여받았다. 그의 생일이었던 8월 19일에는 스핏파이어 2대를 한꺼번에 격추시켰는데, 이것으로 50대째 격추를 달성했다. 같은 해 11월에 [[대위]]로 진급한 마이어는 JG 2 제3비행단장 보직이 주어져 1개 그루페를 이끌게 된다. 특히나 중폭격기 격추의 달인으로 평가받던 그는 사방팔방에 고슴도치처럼 기관총으로 무장되어 사각이 없는 [[B-17]]의 철벽같은 방어화망을 뚫고 요격하기 위한 방법으로 초중기형의 B-17이 정면 방어가 허술한 점에 착안해 마치 중세 기사들의 [[주스트|마상 창시합]]을 연상시키는 헤드 온 공격(Head On Attack)을 고안해 베테랑 파일럿들에게 전파시킨 장본인이기도 했고, 이를 증명하듯 43년 9월 6일의 요격에서는 19분 동안 3대의 B-17을 불덩어리로 만들어버리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 전사와 훈장 추서 == 그로부터 얼마 후에 항공단 사령관인발터 외자우가 전사하자 7월 1일부로 JG 2의 사령관이 되었다. 1943년 12월 31일에는 90번째 적기를 격추했고 [[1944년]] 2월 5일에는 서부전선 최초의 100대 엑스페아텐 에이스가 되었다. 에곤 마이어는 1944년 3월 2일에 미 [[육군항공대]]의 [[폭격기]] 편대를 공격하다가 자신보다 1500m 위에 있던 [[P-47]] 썬더볼트 호위기들에 피격되어 추락했는데, 탈출하지 못하고 그대로 전사했다. 이 전쟁 영웅에게는 사망 당일 [[철십자 훈장|곡엽검 기사철십자장]]이 주어질 예정이었으나 사후 추서되었다. 숱한 생사의 길을 헤치고 살아남았던 에곤 마이어를 격추시킨 조종사는 제358전투비행대의 지휘관이었던 월터 그레셤(Walter Vernon Gresham jr : 1921~2014 / 13대 격추)이었고, 놀랍게도 이것은 그의 첫 격추였다. 항상 목에 긴 흰색 머플러을 두르고 다녀 영-미군 파일럿들에게 '''흰 머플러의 파일럿'''이라 불릴 정도로 서부전선에서 위명을 떨친 마이어는 353회의 전투 출격을 통해 대 프랑스전에서 첫 격추를 달성한 이래 102기의 적기를 떨구었으며, 그중 4발 중폭격기는 25기에 달해 같은 부대 출신의 수퍼 에이스 [[요제프 부름헬러]](Josef Wurmheller : 102기 중 18기의 중폭), [[JG 53]]의 헤르베르트 롤바게와 함께 대표적인 4발 중폭격기 킬러였다. [include(틀:2차 세계대전/전투기 에이스 87~113위)] [[분류:에이스 파일럿]][[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