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종교 신자]][[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1897년 출생]][[분류:1974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분류: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 ||||<table align=right><bgcolor=white><:>[[파일:엄주동.jpg|width=300px]] || || 성명 ||엄주동(嚴柱東) || || 생몰 ||[[1897년]] [[5월 23일]] ~ [[1974년]] [[2월 15일]] || || [[출생지]] ||[[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 장기면 임중리 || || 사망지 ||[[서울특별시]] || ||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엄주동은 1897년 5월 23일 경상북도 영일군 장기면 임중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2년 [[대종교]]에 입교했고 경성고보 교원양성소 재학시 국권회복을 위한 비밀결사를 조직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1915년 3월 서울에서 이우용(李雨用)·최규익(崔奎翼) 등과 함께 일본인들에게 피탈당하고 있는 각종 산업을 한국인 자신이 부흥시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조선산직장려계(朝鮮産織奬勵契)를 조직하고 이진석(李鎭石) 등과 함께 서기로서 활동하였다. 1916년 [[나철]]이 순국한 후에는 만주로 망명해 [[서일]] 휘하에서 연락책으로 활동했고, 1920년 [[청산리 전투]] 때 참여했다고 한다. 1921년 8월에는 상하이로 가서 [[신규식]] 휘하에서 활동하다가 신규식이 사망한 후 다시 만주로 돌아왔고, 1922년에는 간도 용정에서 군자금 조달을 위한 미곡상을 경영했다. 1927년 경성고등보통학교 교원양성소에서 민족회흥(民族回興)의 일환으로 조직한 조선산직장려계(朝鮮産織奬勵契)의 서기를 지냈다. 이후 국내로 귀국해 서울에서 [[서상일]] 등과 함께 군자금을 조달했다고 하며, 1974년 2월 15일 서울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엄주동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6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