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조선의 별궁과 궁가)] [목차] == 개요 == {{{+1 於義宮}}} [[조선]] 16대 [[임금]] [[인조]]가 즉위하기 전에 살던 [[잠저]][* [[공식]] [[후계자]]가 아닌 [[왕족]]이 [[왕]]이 되기 전 살았던 [[집]].]이며 [[효종(조선)|효종]]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어의궁은 다른 별궁들과 다르게 상어의궁과 하어의궁으로 나뉘었다. 여기서는 각각 [[정리]]해 살펴보도록 한다. == 상어의궁(上於義宮) == [[인조]]의 잠저이다. [[한성부]] 중부 경행방, 현재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낙원동]] 일대에 있었다. 《한경지략(漢京識略)》에 보면 '유지명잠룡지(有池名潛龍池)'라 하여 이 곳에 잠룡이라는 이름의 [[연못]]이 있었다 한다. [[인조]]는 [[정원군]]의 아들 능양군으로 태어나 쭉 아버지의 집 송현궁[* 훗날의 저경궁이다.]에서 살다가 훗날 [[인열왕후]]가 되는 한씨 부인과 [[결혼|혼인]] 직후 따로 나와 향교동에 정착했고 이 곳에서 [[소현세자]], [[효종(조선)|효종]], [[인평대군]]을 낳았다. [[인조반정]]으로 [[능양군]]이 인조로 즉위하면서, 능양군이 살던 집은 어의궁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조가 폐궁시켰고, 인조의 어휘 등을 봉안하는 정도의 역할만 했다. 1756년([[영조]] 32년) 영조가 이 곳 봉안각에 배례하고 [[현판]] '인묘고궁(仁廟古宮)'을 걸게 한 것이 그나마 마지막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상어의궁 관련 기록이다. 현재 [[건물]]들은 모두 사라졌으며 궁의 위치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 하어의궁(下於義宮) == ||<table width=450> [[파일:어의궁 터.png|width=100%]]|| || 하어의궁 터 안내판 || [[효종(조선)|효종]]의 잠저이다. 효종도 [[아버지]] [[인조]]와 마찬가지로 원래 [[왕]]이 될 [[왕자]]가 아니었고, 따라서 궁 밖에서 살아야 했다. [[봉림대군]] 시절 훗날 [[인선왕후]]가 되는 장씨 부인과 [[결혼|혼인]] 후 [[한성부]] 동부 숭교방, 지금의 [[종로구]] 효제동, 연지동 일대[* [[대학로(서울)|대학로]] 쪽이다.]에 자리잡고 살았다. 참고로 이 자리는 [[성종(조선)|성종]]의 계비 [[정현왕후]] 윤씨의 본궁으로 [[정현왕후]] 소생인 [[중종(조선)|중종]]의 잠저이기도 했다. ||<table width=450>[[파일:어의궁.jpg|width=100%]]|| || 《인평대군 방전도》에 나온 하어의궁의 모습. || [[소현세자]]의 사망 이후 봉림대군은 [[세자]]가 되었고 곧 [[효종(조선)|효종]]으로 즉위했다. 효종의 옛 사저는 어의궁으로 불렸고, 이 때부터 [[인조]]가 살았던 옛 어의궁은 상어의궁, [[봉림대군]]이 머물렀던 어의궁은 하어의궁이 되었다. 그리고 왕을 배출했다하여 '용흥궁(龍興宮)'[* [[철종(조선)|철종]]의 [[강화도]] 잠저와는 이름만 같다.]으로도 불렀다. [[숙종(조선)|숙종]]은 이 곳에 [[현판]] '용흥구궁(龍興舊宮)'을 남겼다. 이후 주로 [[왕실]]의 사적 재산을 조달 및 관리하고, [[왕]]과 [[왕세자]]가 [[결혼|가례]]를 올리는 [[궁|별궁]]으로 기능했다. (가례 자체는 [[인조]]와 [[장렬왕후]]의 친영[*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예식을 올리고 [[신부]]를 맞아오는 절차.]부터 시작해서, 이후 [[숙종(조선)|숙종]]과 [[인현왕후]], [[영조]]와 [[정순왕후 김씨(조선)|정순왕후]]도 이 곳에서 가례를 치뤘다.) 그러다 1907년([[융희]] 원년) 궁내부령으로 [[궁]]의 업무를 담당하던 도장을 폐지하고 모든 [[재산]]이 제실관리국으로 넘어가면서 어의궁도 황실 재산에서 국가 재산이 되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zb_10011027_003|#]] 이후 헐려 현재는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조양루(朝陽樓)로도 불렸는데 [[낙산]] 서쪽에 있어 아침볕을 잘 받아서 붙힌 별칭이다. [[효종(조선)|효종]]의 [[남동생|동생]] [[인평대군]]의 집과는 서로 마주보고 있었는데 인평대군 집은 반대로 저녁볕을 잘 받아서 석양루(夕陽樓)로 불렸다고. == 현존하는 문화재 == 현재는 한국은행의 후문 앞에 위치한 하마비가 유일하게 남아있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3가110번지] 1950년도까지는 어의궁 석어당(조양루)이 남아있었다고 하나 이후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분류:조선의 별궁과 궁가]][[분류:조선/건축]][[분류:궁전]][[분류:조선 시대의 없어진 건축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