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김홍집 내각)] [include(틀:역대 대한제국 중추원 의장)] [include(틀:역대 대한제국 탁지부대신)] ||||<tablealign=center>[[파일:external/ph.kyeonggi.com/865747_800804_99.jpg]]|| ||||<tablealign=center> [[파일:external/monthly.chosun.com/1608_510.jpg]] || ||<:> '''이름''' ||<(><colbgcolor=white,#2d2f34>'''어윤중(魚允中)''' || ||<:> '''본관''' ||<(>[[어씨|함종 어씨]][* 28세손 允(윤) 항렬. 생몰년대에 비해 항렬이 아주 빠르다. 생년이 100년 가까이 차이 나는 [[어윤대]], [[어윤태]]와 같은 항렬이다.] || ||<:> '''출생''' ||<(>[[1848년]] [[조선]] [[충청도]] [[보은군|보은현]] 삼승면 봉비리[* 현 [[충청북도]] [[보은군]] 장안면 봉비리, [[어(성씨)|함종 어씨]] 집성촌이다.] || ||<:> '''사망''' ||<(>[[1896년]] [[조선]] [[경기도]] [[용인시|용인]] || ||<:> '''호''' ||<(>일재(一齋) || ||<:> '''자''' ||<(>성집(聖執) || ||<:> '''시호''' ||<(>충숙(忠肅) || ||<:> '''가족관계''' ||<(>증조부 어재상 [br] 조부 어명능 [br] 친부 어약우 친모 이씨 부인 || [목차] == 개요 == 개화기 [[조선]]의 [[정치가]]이자 온건 [[개화파]]. 저서로는 [[종정연표]] 등이 있다. == 생애 == 1848년 충청도 보은현 삼승면 봉비리(현 [[충청북도]] [[보은군]] 장안면 봉비리)[* [[어(성씨)|함종 어씨]] 집성촌이다.][[http://m.usjournal.kr/news/newsview.php?ncode=179514191552628|#]]에서 아버지 어약우(魚若愚)와 어머니 [[여주 이씨]] 이용규(李容逵)의 딸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9세되던 해에 어머니를 여의고 이어 16세에 아버지를 여의는 등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약우는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고 [[별세]]했으나 사후 1883년 9월 어윤중의 공로로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추증]]되었다.[[http://db.itkc.or.kr/inLink?DCI=ITKC_ST_Z0_A20_09A_19A_00290_2004_102_XML|#]] 20세되던 1868년 지방 [[유생]] 50명을 뽑아 전시를 볼 자격을 주는 칠석제(七夕製)에서 장원급제하였으며 1869년 정시 문과에 병과[* 무과가 아니므로 아니라 3등급.] 17위로 급제한다.[[http://people.aks.ac.kr/front/dirSer/exm/exmView.aks?exmId=EXM_MN_6JOc_1869_013612|#]] 정7품 [[승정원]] 주서(서기)에서 시작하여 8년만에 정3품 전라우도(全羅右道) [[암행어사]]까지 올라간 후 9개월간 [[전라도]]의 [[탐관오리]]를 부지런히 징벌하고 돌아와서 매우 파격적인 [[개혁]]안을 내놓는다.[* 당시의 문제를 매우 정확히 체계적으로 짚고 있다.] 개혁의 중심 내용은 [[세금]] 개혁이었는데 후에 본인이 직접 해버린다. [[고종(대한제국)|고종]]은 이 내용을 심도깊게 보았고 어윤중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는 했지만 당연하게도 채택은 안 했다. 이후 1881년 [[일본]] '조사 시찰단'의 일원으로 간다. 담당 파트는 일본 대장성[* 현재의 [[재무]]성. 위에서 말한 어윤중의 개혁은 이미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수행원으로 함께한 [[유길준]]과 찍은 [[사진]]이 남아있다[* [[EBS]] 다큐프라임 '[[한국인]]과 [[영어]]'편 참고.]. 그 후 일본에서 [[청나라]]로 가서 미리 [[영선사]]로 가있던 [[김윤식(조선)|김윤식]]을 만나고 [[중국]]의 정책을 견문한 후 [[이홍장]]과 회담을 하고 왔다. 이후 [[조미수호통상조약]], 조독수호통상조약 등에 합의하였고 급기야는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까지 조인을 하였다. 이때 이홍장이 '증서 다 만들어놨으니까 도장만 찍어'에 화가 나서 청나라에 냉담한 시선을 가지게 된다. 회담 내내 청나라는 종주국과 [[속국]]이라는 관계를 들어 각종 무리한 요구를 하였다. 어윤중은 그나마 끈질기게 요구하여 청나라 상인들이 상품을 쌓아놓고 장사를 하는 곳을 [[양화진]]으로 제한하는 등의 어느 정도 방어에 성공했다. 물론 그렇게 해서 완성된 장정도 썩 공평하지는 않았지만 1882년 [[임오군란]]이 발발했다는 것을 알고 김윤식과 함께 청나라군의 [[파병]]을 요청한 것도 이 시기에 있었던 일이다. 그 후 서북 경략사로 임명되어 [[경제]] 담당답게 북방 [[무역]]의 중요성을 알고 조선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의주시|중강]] 무역 장정, [[회령시|회령]] 통상 장정을 협정했다. 이때 어윤중의 활동 중 중요한 것은 지역 [[국경]] 지대를 조사한 것인데 국경을 보다 확고히 하였다. 이 공로로 종2품 병조참판([[국방부]] 차관)과 호조참판([[기획재정부]] 차관)을 역임하게 된다. 1883년 대담한 개혁안을 제출하였으나 무시당했다. [[갑신정변]]에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온건 개화파였던 탓에 [[명성황후]] 아래서 중용되지는 못하고 있었다. 1893년 보은[* 어윤중의 [[고향]]이다.]에서 [[농민]] 집회([[동학농민운동]]의 서막이기도 했다)가 열리자 '순무사'로 파견되었다. 당시 어윤중이 집회에 참가한 군중들의 성격을 기술해놓은 것을 보면 당시 조선 농민들의 모든 모습이 그 안에 담겨있다. 하여간에 그렇게 군중들을 달래서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어윤중은 당시 [[대신]]들 중 이례적으로 [[동학]]도들을 '민당(民黨 : [[백성]] 모임)'으로 지칭해서[* 모든 대신들은 동학도들을 비도(匪徒 : [[도적]]떼)라고 탄압했다.] 많은 대신들의 빈축을 샀다. 1894년 [[김홍집]] [[내각]]이 수립되자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탁지부 대신(기획재정부 장관)이 되어서 자신이 그렇게 건의하던 [[조세]] 개혁안을 자신의 손으로 행한다. 당시에 얼마나 어윤중이 긴축 [[정책]]을 강행하고 조세 개혁을 갈아엎어버렸냐면 당시 사람들이 어윤중을 '전(田)조림'이라고 불렀다. 성인 魚의 중간인 田를 따서 만든건데 이런 [[별명]]이 붙어있는걸 보면 얼마나 어윤중이 조세를 짜게 매겼는지 알 수 있다. 당시 잡세, 무토 궁방세를 혁파하고 엄격한 조세 법정주의에 의거한 수금은 많은 [[민중]]들이 어윤중에게 [[호감]]을 가지게 만들었다. [[춘생문 사건]]이 터졌을 때 군사를 이끌고 고종을 [[탈출]]시키려던 [[친위대]]장들과 주모자들을 [[체포]]한 것이 다름아닌 어윤중이었다. 1896년 [[아관파천]] 사건이 터지고 김홍집, [[정병하]] 등이 [[광화문]] 네거리에서 성난 군중에게 [[구타]] 후 몸이 찢겨나가는 와중에 어윤중은 [[망명]]을 하지 않고 고향인 보은으로 피신한다.[* 어윤중은 민중들이 자신을 지지하고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안했는지 여자용 [[가마]]를 타서 사람들의 시선을 따돌렸다.] 그 와중에 [[용인시|용인]]에서 과거 산송(묘지) 문제로 원한을 품던 향반 무리가 머슴을 동원하여 결국 49세의 나이에 [[살해]]당하고 만다. 아이러니하게도 피살당했던 장소가 어비울(魚肥里)이었다.[* 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어비리.] 이름이 '물고기가 살이 찌는 동네' 또는 '물고기가 슬피 운다'라고 [[해석]]된다. 어윤중의 성은 魚로 [[우연]]이라기에는 기막힌 우연.[* [[맹꽁이 서당]]에서는 어윤중이 어비울이라는 이름을 듣고 불안해서 떠나는 중 의심을 한 마을 사람들이 때려죽인 것으로 표현되었다.] == 이야깃거리 == [[성격]]은 2번째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엄청난 법칙주의자인 데다 본성이 강직하고 담대하여서 조금이라도 [[법률]]에 어긋나면 고종이고 명성황후고 NO라고 말했던 양반이다. 심지어는 일본이 제안한 300만원의 차관을 "[[은]]이 아니면 안 받는다."라고 말해버렸던 인물. 의외로 개화기 시절에 [[동분서주]]하며 활약했던 인물로 결국에는 자신의 [[소원]]이었던 조세 개혁도 [[재무부]]의 으뜸이 되어 성취하는 사람이었다. 교육자 겸 계몽 운동가 혹은 [[친일파]]로 평가가 엇갈리는 [[윤치호]]가 어윤중의 [[제자]]였다. [[본명]]이 '어남선'인 배우 [[류수영]]이 [[항렬]] 상으로 어윤중의 조카뻘이 된다. == 대중매체 == [[KBS]] 대하드라마 [[명성황후(드라마)|명성황후]]에서는 [[태조 왕건]]의 [[신숭겸]],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의 [[김재규]] 등으로 유명한 배우 [[김형일(배우)|김형일]]이 연기하였다. == 같이 보기 == [include(틀:아관파천)] [[분류:조선/인물]][[분류:온건개화파]][[분류:조선의 반란자]][[분류:보은군 출신 인물]][[분류:함종 어씨]][[분류:1848년 출생]][[분류:1896년 사망]][[분류:살해된 인물]][[분류:복권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