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한민국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3><tablebordercolor=#F39100><table align=right><bgcolor=#F39100><:> '''[[유네스코|{{{#FFFFFF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FFFFFF 세계기록유산}}}]]''' || ||<-3><bgcolor=#FFFFFF><:> [[파일:attachment/unesco-memoryoftheworld.gif]] || ||<|3><:> 이름 || 한국어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 || || 영어 || [* Royal Seal and Investiture Book Collection of the Joseon Dynasty] || || 프랑스어 || [* Collection de sceaux royaux et livres d'investiture de la dynastie Joseon] || ||<:>국가·위치 ||<-2>[[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등 || ||<:>소장·관리 ||<-2>[[국립고궁박물관]] 등 || ||<:>등재유형 ||<-2>기록유산 || ||<:>등재연도 ||<-2>[[2017년]] || ||<:>제작시기 ||<-2>1392~1910년 || [목차] == 개요 == '''御寶''' 어보(御寶)는 대보(大寶)라고도 하는데 군주 일가의 의례용 도장으로 사용하진 않았고 단지 근처에 가지고만 있었다. 즉 권위를 상징하는 의례용 [[도장(도구)|도장]]이다. [[옥새]]와 외형은 같지만, [[국새]]가 실제 군주의 결재용으로 사용된 반면 어보는 실제로는 사용하지 않았다. 어보에는 보통 존호나 [[시호]]를 새겼고, 후대 왕들이 존호와 시호 바꾸거나 더할 때마다 어보를 새로 제작하였다. 왕실이 사용하는 물건이기에 금이나 은으로 만들었는데 금으로 만들었으면 금보(金寶)라고 한다. 원 조선시대엔 [[종묘]]의 위패 곁에 모셔 보관했지만, 현 한국은 어보 대부분을 [[경복궁]]에 있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 관리한다. 가례나 길례 등 중요한 궁중 의식에서 사용되는 도장인 만큼 보관하는 방법이 정말 복잡하다. 어보 세트는 내함(보통), 외함(보록), 이것들을 싸는 보자기와 그걸 묶는 끈으로 구성되어 6개 이상이 한 세트를 이룬다. == 한국사 == === 고려 === 고려사 여복지에 따르면 고려는 타국이 보내준 국인 외에도 '서조보(書詔寶)'라는 어보가 따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조보는 조령(詔)[* 천자의 명령은 조(詔), 칙(勅), 선(宣)이라고 한다.]을 내릴 때(書) 쓰는 보(寶)로 보인다. 12세기 초 고려 [[예종(고려)|예종]]은 어머니 [[명의태후]]를 태후로 올릴 때 금보(金寶)를 바쳤다. [[공민왕]]은 어머니 [[명덕태후]]에게 금보(金寶)를 올렸다. [[조선왕조실록]]엔 감록국사 [[이성계]]가 [[수창궁]]에서 즉위할 때 신하들이 국보(國寶)를 바쳤다고 한다. === 조선 ~ 대한제국 === ||[[파일:external/www.namdonews.com/05g86168.jpg]]|| 조선 왕조는 일본과의 외교 실무에는 위정이덕(爲政以德)을 사용했고, 어명 반포나 왕세자 책봉 등 실무에는 유서지보(諭書之寶)ㆍ국왕행보(國王行寶), 그리고 준명지보 등 어보를 썼다. 국왕ㆍ왕후ㆍ대비 등에게 존호를 올리면 그 존호를 새긴 어보도 다수 제작했는데,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파일:external/image.newsis.com/NISI20130527_0008234937_web.jpg]]|| ||<:>[[문정왕후]]의 어보. [[6.25 전쟁]] 중 [[미군]]이 훔쳐갔다가 2017년 7월 한미 공조수사로 반환받았다.|| [[조선]]왕조의 어보들은 광복 이후에도 전해졌지만 [[6.25 전쟁]] 당시 미군이 가져가 행방이 묘연하고, 고종 황제가 사용했던 일부 어보만이 남았다. 미군이 훔쳐간 어보 중 37과가 사라졌다. 고종 13년(1876) 11월 4일에 [[경복궁 교태전|교태전]]에 화재가 일어나 보인(寶印)들을 분실한 사건이 발생하여 새로이 만들게 했는데, 이때 제작과정을 설명한 '보인소의궤(寶印所儀軌)'라는 책을 남겼다. 당시 제작한 보인은 총 11과로 목록은 다음과 같다. * 대보(大寶) * 시명지보(施命之寶) * 유서지보(諭書之寶) * 세자궁옥인(世子宮玉印) * 조선왕보(朝鮮王寶) * 대조선국주상지보(大朝鮮國主上之寶) * 소신지보(昭信之寶) * 이덕보(以德寶)[* 위정이덕(爲政以德)] * 과거지보(科擧之寶) * 선사지기(宣賜之記) * 무위소(武衛所) 위에도 나오지만 고종이 대조선국 대군주(大朝鮮國 大君主)를 칭할 때 청이 준 국인과 제후국 형식 어보를 버리고 '대조선국주상지보(大朝鮮國主上之寶)', '대조선대군주지보(大朝鮮大君主之寶)', '대조선국보(大朝鮮國寶)’ 등을 새로 제작했다. 대한제국 황제(大韓帝國 皇帝)를 칭할 때는 '황제지보(皇帝之寶)'가 제작되었다. 또한 천자국 제도에 맞는 어보가 새로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태자 [[이척]]에게 주어진 '황태자보(皇太子寶)', 금보다. === 대한민국 === [[조선왕조실록|실록]]에 기록된 어보의 과수는 총 368[[과]](顆[* 도장을 세는 단위로, 둥글고 작을 물건을 셀 때 쓰인다. [[사리(불교)|사리]]를 셀 때 또한 이 단위를 쓴다.])이지만, 현재 국내에 남아있는 어보는 총 332과이다. 나머지 36과는 소재불명. 국내에 있는 어보 중 몇 과는 파란만장한 [[한국]] [[근현대사]]를 함께하며 해외로 반출되기도, 반환되기도 하였다.[* 해외로 반출되었다가 반환된 어보로는 [[고종(대한제국)|고종]]의 '수강태황제보', [[현종(조선)|현종]]의 '왕세자직인', [[의경세자|덕종]]의 '온문의경왕지보'등이 있다.] 남아있는 어보 332과 중에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중인 어보는 323과이고, 나머지는 [[국립중앙박물관]](5과), 국립[[춘천시|춘천]]박물관(2과), [[고려대학교]] 박물관(2과)에 있다. [[http://naver.me/G5ClfLcQ|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해 막바지에 이르렀으나 [[http://m.news.naver.com/likeRankingRead.nhn?oid=079&aid=0003001503&sid1=001|덕종어보]]와 예종어보가 [[이완용]]의 아들 이항구[* 1881~1945. 이 자는 덕종어보와 예종어보가 분실되기 2개월 전인 2월 11일 일본의 기원절을 맞아 일본으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는데, 어보가 도난당한 4월 11일 당일에는 날이 저물도록 이왕직 차관 시노다 지사쿠(條田治策 · 1872~1946)와 [[골프]]를 즐긴 사실이 알려져 언론의 집중포화를 당했다. 웃긴 건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를 지적하자 "'''종묘의 어보는 당장 쓰는 것도 아니고 승하하신 뒤에 만들어놓은, 돈으로 쳐도 몇 푼 안되는 것인데 그만한 것을 잃었다고 좋아하는 꼴푸(골프) 놀이를 못한단 말이요? 아니 그럼 집에서 술을 먹거나 기집(계집)을 데리고 노는 것도 못하겠구려!'''”라는 헛소리를 지껄였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4041500209202003&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4-04-15&officeId=00020&pageNo=2&printNo=1326&publishType=00020|(동아일보 1924년 4월 15일자 2면 - 李恒九氏(이항구씨)의暴言(폭언) 이무슨무엄한말이냐)]] [[부전자전|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인간. ]가 분실 뒤 재제작한 모조로 밝혀져 원점 재검토와 전수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는 잘못된 정보로 1920년대 어보가 도난 당하자 이왕직에서 조선미술품제작소에 명하여 새로 재제작하고 위안제를 지낸 뒤에 종묘에 안치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일제 때에 만든 어보를 세계유산으로 신청하겠다는 문화재청"이라고 기사를 실어서 비난했지만[[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18/2017081803197.html|#]] [[한겨레]]는 "덕종어보는 짝퉁이 아닌 비운의 왕실유산"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의 발언을 빌어 "덕종 어보는 종묘 어보의 수난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 도난당했고, 해방 뒤 전쟁으로 문화재관리가 안 될 때 재제작품마저도 유출된 것이니 찾은 건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다"고 반박하였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808430.html#csidxca3b70d2a29f148ae1d84cf53f806c3|#]] 2017년 10월 31일,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 관련 항목 == * [[보소당인존]] * [[한국사 관련 정보]] * [[도장(도구)|도장]] * [[옥새]] * [[국새]] [include(틀:표절, version=56, source=위키백과)] [[분류:왕의 물건]][[분류:대한민국의 세계기록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