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제6대 국회의원]][[분류:제7대 국회의원]][[분류:민정당 국회의원]][[분류:민중당(1965년) 국회의원]][[분류:신민당(1967년) 국회의원]][[분류:화순군 출신 인물]][[분류:1922년 출생]][[분류:2001년 사망]][[분류:제주 양씨]] [[파일:external/tv.pstatic.net/yonhapnews_33897813.jpg|width=150]] 梁會璲 1922년 3월 07일 ~ 2001년 8월 19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본관은 [[양(성씨)|제주]](濟州)[* 학포공파 25세손 회(會) 항렬][[http://blog.daum.net/hanyangcho/15716867|#]] 1922년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석정리[[https://shindonga.donga.com/Library/3/01/13/101834/4|#]]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학부/사회과학대학/정치외교학부|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한국민사처(KCAC) 경제관으로 근무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1955년)|민주당]] 후보로 전라남도 화순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구흥남]]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민주당에서 구파에 속하였으며 1960년 12월 구파 소속 정치인들과 민주당을 탈당하여 [[신민당(1960년)|신민당]] 창당에 참여하여 중앙감사위원을 지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정당]] 후보로 전라남도 화순군-[[곡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민정당에서 중앙당 총무부 [[차장]], 대변인 등을 역임하였다. 1965년 통합야당 [[민중당(1965년)|민중당]]이 창당되자 원내부총무, 전라남도지부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1967년)|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처음에는 [[민주공화당]] 기세풍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부정선거임이 드러나자 기세풍이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서민호]]의 [[대중당]]으로 이동하였다. 그리하여 1968년 [[재보궐선거]]가 치러졌는데, 이 때는 대중당 기세풍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신민당에서 전라남도지부 부위원장, 원내부총무 등을 역임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불출마를 선언하고 [[미국]]에 [[유학]]갔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에 전라남도 화순군-곡성군-[[담양군]]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고재청]]에 밀려 탈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