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정의당 대표)] ---- ||<tablebordercolor=#FFCC00><tablebgcolor=#FFF><tablealign=right><-2><:>[[파일:NISI20190613_0015294667_web_20190613144530_20190613144704325.jpg|width=400]]|| || '''이름''' ||<(> 양경규(梁暻圭) || || '''출생일''' ||<(> [[1959년]] [[6월 9일]] ([age(1959-06-09)]세) || || '''출생지''' ||<(> [[서울특별시]] || || '''학력''' ||<(> [[용문고등학교(서울)|용문고등학교]][br][[고려대학교]] 경영학과 학사 || || '''소속 정당''' ||<(> [include(틀:정의당)] || || '''전직''' ||<(> 서울 상공회의소 노동조합 제 3대, 4대 위원장[br]전국 전문기술노동조합연맹 제 4대, 5대 위원장[br]노사관계개선위원회 민주노총측 대표[br]공공연맹노동조합 위원장[br][[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위원장 겸 정치위원장[br][[민주노동당]] 초대 부대표[br][[정의당]] 사회연대임금특별위원장 || || '''현직''' ||<(> [[노동정치연대]] 대표 || || '''링크''' ||<(> [[https://www.facebook.com/yangandhope|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yangmollehaha2019|후보 몰래 운영하는 양경규 페이지]] [br][[https://www.youtube.com/channel/UC0mRVSYkb8GhlUSCzaHFtLw|유튜브 ‘채널 양경규’]] [[https://yangandhope.tistory.com/|티스토리]] || [목차] [clearfix] == 개요 == >국민들에게 이 불평등과 차별의 세상에서 이것이 대안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보다 분명하고 명확한 언어를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민주적 사회주의'''입니다. >---- >당대표 출마 연설 중 정의당의 노동운동가이자 정치인, 정치적으로는 [[PD(정파)]] 온건파인 [[중앙파]] 소속의 좌장이다. 정의당의 4자 통합 이후 [[노동정치연대]]를 이끌었다. 한국에서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정치권에 알려지기 이전에부터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천명한 진보 좌파 논객이기도 하다. == 노동운동가로서의 활동 == 고려대학교 졸업 후 [[대한상공회의소]]에 취직했다가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불법 해고된 이후 노동운동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전문기술노조, 공공연맹을 이끌며 민주노조 건설운동의 거두가 된 그는 정부의 노사관계개선위원회와 민주노총 준비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노동자들을 대변했다, 곧 이러한 활동의 헌신을 바탕으로 1999년 [[민주노총]]의 부위원장으로 당선되었다. == 진보정당에서의 활동 == [include(틀:한국 진보진영 관련 문서)] 그는 [[노회찬]], [[심상정]]과 같은 진보정당운동 1세대로 분류된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국민승리21]] [[권영길]] 대선후보 선거대책본부 조직위원장으로 활동했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과정에서 초대 부대표를 역임하고 노동자 근로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당시 부대표의 성격은 정치인 보다는 조직가, 실무자의 역할에 가까웠기 때문에 언론이나 대중매체에 크게 등장하지는 않았다. [[http://nodong.org/statement/95900|#]] 그가 진보정치 전면에 등장한 것은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사태였다. 당시 민주노동당이 [[NLPDR]]의 패권주의와 일심회 사태로 노동조합의 단일한 지지와 시민들의 여론을 잃자, 그는 노동자와 시민, 진보정당이 연대하는 정치 단체를 복원하기 위해 '''새로운 노동정치를 위한 제안자들의 모임'''을 만들었고 이는 이후 [[노동정치연대]]로 발전했다. 이때의 전국적 연대 활동으로 붙은 별명이 '''노동자들의 호민관''' 이었다고. 이후 2015년에 [[정의당]] 중심의 4자통합 움직임이 일자 정의당에 선도 입당하면서 통합의 물꼬를 틀었고, 그 결과 수천명의 노조 활동가들이 양경규를 따라 입당하며 정의당의 외연 확장과 노동중심성 확립에 큰 기여를 했다. [[https://yangandhope.tistory.com/m/98?category=634336|인터뷰]] 입당 이후 당내 노동조합 좌파들의 구심점이 되었다. [[2016년 총선]] 비례대표 후보 10번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 근황 == 지금은 여러 강연과 교육, 팟캐스트 사업을 진행하고있다.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지도위원 겸 교육센터 센터장과 진보정치학교 <오늘과 내일> 대표 강사, 역사기행 팟캐스트 <붉은 오늘> 출연 및 운영자 등을 겸임하고 있는데 특히 한국 운동권 사이에서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로자 룩셈부르크]] 관련 내용은 명 강연으로 알려져있다. 2018년 3월 [[민주평화당]]의 공동교섭단체 제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http://www.redian.org/archive/119646|#]] 2019년 정의당 당직선거에서 당대표 후보로 출마를 선언했다. 거물 [[심상정]] 의원과의 2파전 양상으로, [[민주사회주의|민주적 사회주의]]를 들고 선명성을 외쳐 일부 당원들의 호응을 받았다. [[나경채]], [[김세균]], [[권수정]], [[김윤기]], [[이현정(정치인)|이현정]], 장석준, 손호철 등이 양경규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http://www.redian.org/archive/134037|기사]] 하지만 심상정 후보가 16,177표(83.58%)를 득표해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고, 양 후보가 3,178표(16.42%)를 득표하며 낙선했다. [[https://www.yna.co.kr/view/AKR20190713043600001|#]] 2019년 9월 25일 [[박창진]] · [[김조광수]] · [[강기갑]] · [[노서진]]과 함께 [[정의당]] 5대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양경규는 5대 특위 중 사회연대임금특위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9251117001&code=910402|경향신문 기사]] 2020년 2월 4일, [[2020년 총선]]에서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할 것을 선언했다. 출마 기자회견장에는 [[김명환(1965)|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권수정]] 서울시의원 등이 후보 지지를 위해 참석했다. [[http://www.redian.org/archive/140616|기사]] 이후 정의당의 [[민주사회주의]] 청년그룹인 [[모멘텀]]이 양경규 후보를 공식 지지하였다. 최종적으로 당내 경선에서 비례대표 순번 8번을 받았다. 조사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나 당선은 애매한 상황이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정의당의 비례대표 당선자가 6~8명 정도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정의당이 정당득표율 15%정도를 받아야 당선이 된다. == 선거 이력 ==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tablealign=center><rowbgcolor=#FFCC00> 연도 || 선거 종류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 2016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 [[정의당]] || 1,719,891 (7.23%) || 낙선 (10번) || || || 2020 ||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 [[정의당]] || 2,697,956 (9.67%) || 낙선 (8번) || ||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정의당 소속]][[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59년 출생]][[분류:민주노동당 출신]][[분류:한국의 사회주의자]][[분류:대한민국의 진보주의자]][[분류: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출신 인물]][[분류:노동운동가]][[분류:고려대학교 출신]] [[분류:용문고등학교(서울)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