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러시아의 민족)] [include(틀:튀르크)] || [youtube(hNWRyRE8Hks)] || [목차] [[사하어]]: саха[* 야쿠트인들이 선호하는 명칭 중 하나로 이외에도 [[야쿠트어]]로 ‘용감한 [[무사#s-1|무사]]’라는 뜻의 [[우량카이족|‘우랑하이(ураанхай)’]]로도 불리길 좋아한다고 한다. 돌간인의 명칭 중 하나이기도 하다.] [[러시아어]]: Якуты [[영어]]: Yakuts, Sakha == 개요 == [[북아시아]] 북동부 내륙지방의 [[사하 공화국]]에 있는 [[튀르크]]계 민족. 사하인이라고도 부른다. 야쿠트인들은 같은 튀르크계인 [[투바인]], [[카자흐인]], [[키르기스인]], [[돌간인]]과 함께 외모에선 [[황인종]]에 속한다. 언어 계통상으로 [[돌간어]]를 쓰는 [[돌간인]]들과 매우 가까운 편이다. 실제로 [[돌간어]]는 야쿠트어와 매우 가까운 관계라서 언어도 거의 통하는 편이다. [[2010년]] 기준으로 약 478,085명의 야쿠트인이 존재하며 [[미국]]에는 17,000명대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캐나다]]에는 4,257명 정도[* [[2017년]] 조사.]가 살고있다고 한다. [[중국]]에도 캐나다 절반 가량의 인구가 살고 있다. == 시조 설화 == || [youtube(R340t1SGgZ8)] || || 야쿠트의 시조 중 하나인 엘레이의 이야기를 다룬 애니메이션. || >야쿠트의 시조는 ‘오노호이’(Онохой)[* ‘오모고이’(Омогой)로 표기하기도 함.]와 ‘엘레이(Эллей)’이다. 오노호이는 힘이 [[장사#s-3|장사]]였고, [[약탈]]을 일삼는 강도였다. >오랫동안 오노호이의 [[부랴트인|괴롭힘을 당한 사람들]]은 그를 벌하게 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쫓아 나섰다. 오노호이는 식구들과 가축을 데리고 군대를 피해 야쿠츠크 남쪽에 정착하게 되었다. >어느 날 오노호이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약탈과 살해를 일삼다가 사람들에게 쫓기던 거구의 ‘엘레이’와 만나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같이 지내기로 하였다. >엘레이는 오노호이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났다. 오노호이는 엘레이를 사위로 삼고자 두 딸 중 예쁜 둘째 딸과의 혼인을 원했다. >그러나 엘레이는 못생겼지만, 부지런한 첫째 딸과 결혼을 요청했다. 오노호이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데 화가 나 엘레이와 첫째 딸을 내쫓았다. >오노호이는 엘레이의 소식이 궁금해 사람들을 보내 알아보게 하였다. 엘레이는 잘 정돈된 풍요로운 마을을 만들어 살고 있었다. >정찰을 떠난 사람들은 엘레이가 술잔을 높이 들어 노래를 부르며 기도하자 하늘에서 세 마리의 [[두루미|학]]이 날아와 그 술을 마시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오노호이는 자신 앞에서 그 의식을 다시 보여 달라고 요청하였다. 엘레이는 기꺼이 그 의식을 올렸고 또 다시 세 마리의 학이 날아와 술을 마시자 모두들 기뻐하며 3일 동안 잔치를 벌였다. 이것이 최초의 ‘으스아흐(Ысыах)’ 축제였다. >엘레이의 풍요로운 마을을 목격한 사람들은 가축을 이끌고 엘레이의 마을로 도주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오노호이는 자신의 마을을 버리고 사람들이 없는 곳을 찾아 북쪽으로 이동하였다. >이 결과 오노호이계 사람들은 야쿠츠크 북쪽에 위치한 ‘남스키 울루스(Намский улус)’ 지방 토착민들의 시조가 되었고, 엘레이계 사람들은 야쿠츠크 동쪽에 위치한 ‘캉갈라스(Кангалассы)’, ‘보로곤(Борогонцы)’ 등지의 토착민들의 시조가 되었다. >동부 출신들은 대부분 부유하고 운이 좋지만, 북부 출신들은 가난하고 어둡다고 전해진다. == 역사 == 원래는 튀르크족이 아닌 [[예니세이 강]] 상류에 살고있던 [[사모예드족|우랄계 사얀-사모예드인]]이였으나, 주변의 [[철륵]] 부족들과 부대끼면서 이에 동화되어 튀르크화되었다. 이후 [[돌궐]] 시절에 [[바이칼 호]] 남안으로 이주해서 5세기간 정착해 살고 있었지만 [[부랴트인]]의 팽창으로 군사적 압박을 받자, [[14세기]]부터 점차 좀 더 북동쪽 [[레나 강]] 유역으로 이주하여 그곳에 살게 되었다.[* https://en.wikipedia.org/wiki/Yakuts#Origin_and_history] 이곳에서는 [[어웡키족]], [[에벤족]] 등 퉁구스계 민족들이 거주하기도 했고 그 외 [[축치인]], [[코랴크인]] 등 [[축치캄차카어족]] 민족들과 같이 살면서 이들과 혼혈되었다. [[1620년대]]에 [[루스 차르국]]이 야쿠트인들의 영역으로 진입하여 그곳을 합병 및 정착과 동시에 야삭(모피세)를 부과하였다. 1634~1642년 사이에 일어난 [[제노사이드|이들의 반란을 가까스로 진압]]하였지만, 계속되는 러시아의 세금 징수는 레나 강의 야쿠트인 및 퉁구스어계 부족들의 대항을 촉발시켰다. 그러자 러시아측의 [[프린스#s-1.3|보이보드]]은 [[공포정치|원주민들이 살던 곳을 불태워버리고 수백명을 죽이는 식으로 대응하였다.]][* 또한 1642~1682년, 약 40년 동안 원주민 인구의 70%가 감소했는데 이는 [[천연두]] 및 다른 [[전염병]] 때문이었다.] 이후 [[18세기]]에 들어 러시아는 [[문화 통치|야쿠트인에 대한 압력을 줄이고, 야쿠트 족장들에게 약간의 특권을 주거나 러시아 정교회 사절단을 보내거나 땅을 준뒤 농업에 관하여 교육시키는 등의 행보]]을 보였다. [[골드 러시|금의 발견]]과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건설은 점점 더 많은 러시아인들을 [[사하 공화국|이 지역]]으로 끌어들였다. [[1820년대]]까지 거의 모든 야쿠트인들은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했다고 하지만, 그들은 [[샤머니즘]]적 관습들을 계속 유지했다. 야쿠트 문학은 19세기 후반부터 상승하기 시작했으며, 20세기 초에는 전국적인 부흥이 일어났다. [[1922년]] [[소련|새로운 사회주의 정부]]는 이 지역을 야쿠트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명명했다. [[https://en.m.wikipedia.org/wiki/Yakut_revolt|야쿠트 반란]]으로 알려진 [[적백내전]]의 마지막 분쟁은 이곳에서 백계 러시아 장교인 [[https://en.m.wikipedia.org/wiki/Mikhail_Korobeinikov|미하일 코로베이니코프]]가 [[소련군|붉은 군대]]에 대항하는 봉기와 최후의 저항을 이끌면서 일어났다. [[1920년대]] 후부터 [[1930년대]] 후반까지 [[스탈린]]의 집단화 정책으로 인해 야쿠트인들은 조직적으로 박해를 받았는데, 이 기간 동안의 기아 및 영양실조로 야쿠트 총 인구가 [[1926년]]에 "240,500명", [[1959년]]에는 "236,700명"으로 감소했으나 [[1972년]]에 이르러선 다시 인구가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현재에 이른다. == 문화 == 대부분의 투르크인들이 중세시대부터 이슬람화되어 이슬람을 믿는데 비해 많은 야쿠트인들은 [[샤머니즘]]을 신봉한다. 하지만 러시아의 영향으로 [[러시아 정교회]]를 믿거나 소련 문화의 영향으로 [[무신론|무신론자]]가 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외모는 러시아인들과 생판 다르지만, 정교회 세례명을 이름으로 쓰고 성씨도 러시아풍이기 때문에, 이름만 보고는 러시아인과의 구별이 어렵다. 언어는 [[사하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러시아 소속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야쿠트인들이 [[러시아어]]를 할 줄 안다. === 축제 === [[파일:Кормление_огня.jpg]] 특이하게도 신년을 두 번 맞이하는데, 여름에 개최하는 "으스아흐"가 바로 그 신년 중 하나이다. 사하 공화국의 영토 대부분은 북극권이면서 [[내륙지역]]에 속한 탓에 [[겨울]]에 [[냉대기후|-60°C까지 내려가는 혹한의 기후]]를 가지고 있다. 야쿠트인은 혹한의 겨울을 견뎌내며 따뜻한 여름을 고대하게 되는데, 오랜 겨울을 끝내고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6월에 큰 축제를 열어 건강과 안녕을 기원한다. 한국의 풍속과 비슷한 면이 몇 가지 있다. 연장자가 7명의 처녀, 9명의 총각들과 함께 축제를 여는데 연장자는 먼저 불의 정령과 땅의 정령에게 [[아이락|쿠므스]]를 뿌리며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음식을 먹기 전에 [[고수레]]를 외치며 음식을 던지는 행위와 유사하다. 으스아흐는 [[태양신]] 숭배와 풍요를 기원하는 관습과 관련이 있다. 하절기 축제의 기원은 중앙아시아의 스텝지역에서 시작되었는데, 당시 사하인들은 가축과 짐을 싸들고 끝없는 [[스텝(지리)|스텝]]을 유목하였다. 그래서 이들 축제는 같은 튀르크 계열인 [[투바인]], [[알타이인]], [[타타르인]], [[바시키르인]]의 하절기 축제와 공통점이 있다. 으스아흐 축제는 6월 말에 열리고 이 날을 [[새해]]로 삼았다. 의식이 끝나고 나면 축제 참가자들이 모두 모여 둥글게 원을 그리며 ‘오수오하이(Осуохай)’라는 춤을 춘다. 이 때 한 사람이 선창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이어 부른다. 이 또한 한국의 [[강강술래]]와도 매우 유사한다. === 음식 === [[파일:Dish_Stroganina_.jpg]] 언급했듯이 추운 기후인데다가 북극과 가까운 곳이기도 해서 [[생고기]]를 먹는 식습관이 발달했다. 대표적인 음식으로 "스트로가니나(строганина)"라는 생선회인데, 주로 [[레나 강]] 등지에서 잡은 [[송어]], [[연어]]를 얼려서 만든 날생선 요리이다. 야쿠티야의 추운 겨울 날씨에서 갓 잡아 올린 생선은 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그대로 얼어버리게 되는데 야쿠트인은 이렇게 얼어버린 생선을 날 것으로 먹는다. 생선 꼬리 부분을 잡고 직각으로 세운 후에 꼬리부터 칼질을 하면 생선살이 동그랗게 말려 나오는데, 이것을 [[소금]]에 찍어 먹는다. 이외에도 추위를 견디기 위해 지방 섭취 또한 많이 하는데, 주로 말이나 순록의 [[비계]]를 날것으로 먹기도 한다. 야쿠트인도 다른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우유를 마시는데 소보다는 가축으로 키우는 말과 순록의 [[우유]]를 주로 마신다. 순록 우유는 소에서 짠 우유보다 [[지방(화학)|지방]]이 풍부하고, [[단백질]]이 흡수가 잘 되고, 맛이 더 좋다고 한다. === 가옥 === 전통가옥은 겨울과 여름에 주거하는 양식으로 구분된다. 겨울에는 흙을 바른 통나무집에서 살고, 여름에는 다른 유목민족들과 마찬가지로 ‘우라사(ураса)’라고 불리는 원추형 천막에서 살았다. 그리고 이 가옥 주위에는 가축우리와 곡식을 보관하는 장소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 매우 추운 곳임에도 온돌과 유사한 난방 문화는 발전시키지 못했다. 대체로 방 한가운데 불을 지피거나 벽난로를 땠으며, 가족들은 벽 한구석에 설치된 침상에서 생활했다. 현대에는 다른 러시아인들처럼 대다수가 [[아파트]]에 산다. === 의복 === [[파일:Yakut_costume_7.jpg]] 겨울에 입는 사하 [[전통의상]]은 두꺼운 외투, 목이 긴 장화, 머리 전체를 덮는 털모자가 특징적이다. 우선 외투로는 주로 순록 가죽으로 만든 한 겹 혹은 두 겹의 두꺼운 옷을 입는다. [[외투]]에 별다른 장식을 하지 않는 단순한 남성용 외투와 달리 여성용 외투에는 가죽을 조각내어 무늬를 만들거나 [[은]], [[실]] 등으로 장식을 하여 입는다. 한겨울에도 외투 밖에 은으로 만든 [[액세서리|장신구]]를 착용하여 멋을 내기도 한다. 야쿠티아 지역은 [[늪]]이 많은데, 1년의 대부분이 동토지만 여름에 녹으면서 늪지를 이룬다. 이 때문에 모기가 늪지에 번식하고 그곳에서 서식하는데, 이는 사하인들과 순록들에게 매우 귀찮으면서도 적지 않게 위험하다. 때문에 [[모기]]를 쫓기 위해 손잡이가 달린 말꼬리 모양의 "데이비이르(дэйбиир)"라는 도구를 만들어 사용한다. [[얼음]]이 녹기 시작하여 모기가 들끓기 시작하면 이 데이비이르(дэйбиир)를 늘 지니고 다녔다. 데이비이르는 주로 [[말총]]으로 만들어진다. == 관련 문서 == * [[사하 공화국]] * [[튀르크]] * [[북극]] * [[돌간인]] [[분류:러시아의 민족]][[분류:북아시아의 민족]][[분류:튀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