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사산 제국 샤한샤)] [[사산 왕조]] 제14대 [[샤한샤]]. 재위기간 399-421년. [목차] == 즉위하기까지 == [[샤푸르 3세]]와 그의 유대인 아내 슈샨두흐트 사이의 아들이였으며, 궁중암투중 승계권을 빼앗긴다. 그러나 곧 재기하였고 399년에 --단물빠진-- [[폭군]]이였던 [[바흐람 4세]]를 암살하여 제위에 오르는데 성공한다. == 즉위 후 == 야즈데게르드의 치세는 특별한 일이 없이 평온했다. 사산 왕조는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동로마 제국]]과 불화없이 지냈다. 오히려 로마의 황제 아르카디우스가 408년에 죽자, 평소에 후원하기로 다짐했던 그의 아들 테오도시우스 2세를 제국의 황태자로서 충실히 지켜주었다.[* 이로 인해서인지 로마의 역사학자 프로코피우스는 그를 선한기질의 소유자이며 자신이 말한 것을 반드시 지키는 자라고 기록했다.] 유대인 어머니를 두었기 때문에 종교에 관심이 많았는지 모르지만 치세 초기엔 기독교를 옹호하고 [[조로아스터교]]를 멀리했으며 '''오히려 기독교로 개종하길 원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그의 치세 초기엔 기독교가 별다른 방해를 받지 않고 널리 퍼질 수 있었다. 그리하여 '''410년에는 이들의 영향으로 인해 기독교의 자유가 선포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기독교도들은 그를 황제 가운데 거룩한 호의를 베푼 선하고 자비로운 황제라며 칭송했'''었'''다. 그러나 [[크테시폰]]에 있는 조로아스터교의 불의 신전이 기독교도들에 의해 전소되어 재건 불가능하게 된 적이 있었는데, 이 방화사건은 조로아스터교의 신관들에게 큰 반발을 일으켰다. 신관들은 야즈데게르드가 어떠한 조치를 취하기를 요구하였고. 결국 야즈데게르드는 신관들에게 제국 내의 기독교를 박해할 권한을 부여한다. 그 후 5년 동안 제국내의 기독교인들은 붙잡히거나 살해당했으며, 거리의 모든 교회가 파괴되었다. 이러한 살육과 배신적인 행위로 인해 기독교도들 사이에서는 [[악플|악평]]이 자자했으나--근데 위에서 보다시피 기독교도들이 먼저 잘못했다는게 함정-- 그러나 그는 여전히 페르시아인에겐 훌륭한 황제였다. 유대인 어머니를 기려 [[이스파한]]에 "예후디예"라는 유대인 거주지를 건설하는 등 유대인들을 적극 배려하였다.~~효자다~~ == 의문사 == 야즈데게르드는 421년에 사망하는데, 이에대해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히르카니아에 머물고 있을 때, 강에서 매우 멋진 말이 갑자기 나타났는데, 그것에 치여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마디로 [[암살]]. [[지못미]] == 평가 == 기독교로 인한 소요사태를 제외하고는 치세동안에는 상당히 평온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암살로 최후를 맞이하는 등 이 시기에는 귀족들과 [[조로아스터교]] 신관 들 그리고 황실 내부의 암투가 격화된 시기이기도 하였다. 아무리 평온하게 정국을 안정 시켰어도 [[막장 드라마]]스러운 상황은 해결하지 못했다는 소리. 이는 [[사산 왕조]]의 역대 황제들의 짧은 제위기간 및 최후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분류:사산 왕조 샤한샤]] [[분류:기독교 박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