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9251DE0B-2F94-4FE6-BE7A-63153A76D5A2.jpg]] [목차] [clearfix] == 개요 == 柳原愛子, 1859년 6월 26일 ~ 1943년 10월 16일 (향년 만 84세) [[메이지 덴노]]의 측실([[후궁]])이자 [[다이쇼 덴노]]의 생모. [[데이메이 황후]]의 친시어머니이자, [[히로히토]]의 친할머니이다. == 생애 == [[일본]]의 공경 중 4번째 서열[* [[고셋케|오섭가]](五攝家), 청화가(清華家), 대신가(大臣家) 다음이자 우림가(羽林家)와 동격]인 명가(名家) 중에서도 막부 말 13명가라 불리던 가문 중 하나인 [[후지와라]](藤原) 북가(北家) 히노류의 야나기하라 가문 출신이다. 우림가와 명가는 대신의 자리에는 오를 수 없었지만 태정관에서 바로 그 다음가는 대납언(大納言)까지는 오를 수 있기에, [[헤이안 시대]]로 따지면 대신(大臣)의 딸이 임명되는 여어(女御) 다음가는 갱의(更衣)는 될 수 있는 신분이었다고 보면 된다. 이들은 [[메이지유신]] 이후 [[화족]] 서열 중에서도 4번째인 [[자작(작위)|자작]]이었지만, 흔히들 떠올리는 하급 귀족으로서의 자작이 아니라 근대 이전만 해도 당상관 자리를 차지하던 가문이었다. [[조선]]시대에 당상관이 정3품에서 상하로 나눈 것과 전근대 시절 일본의 관위가 30계급으로 나누어진 걸 생각하면 진짜로 고위직이었다. 거기다 역사도 있는 만큼, 말 그대로 나름 이름 있는 명가였다는 소리다. ~~후궁은 아무나 되는 거 아니다~~ [[메이지 덴노]]의 정실 [[쇼켄 황후]](하루코)는 허약하여 아이를 낳지 못했다. 대신 메이지 덴노는 여러 측실들로부터 5남 10녀를 얻었으나, 대부분은 1~2살 안팎으로 일찍 죽었다. 살아남은 아이들은 1남 4녀뿐으로, 야나기하라 나루코 소생의 하루노미야 요시히토 친왕과 [[소노 사치코]] 소생의 내친왕([[공주]])[* [[일본 황실]]에서 덴노의 딸과 손녀까지는 내친왕, 증손녀부터는 여왕이라 한다. 다만 1947년 현행 [[황실전범]]이 제정되기 이전에는 4대손까지를 내친왕, 5대손부터를 여왕이라 했다. 남자의 경우 친왕/왕.]들뿐이었다. 나루코도 2남 1녀를 낳았으나 요시히토 친왕을 제외하곤 모두 요절한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요시히토 친왕이 황태자가 되었고, 훗날 [[다이쇼 덴노]]로 즉위했다. 그러나 나루코는 측실이기 때문에 친아들 [[다이쇼 덴노]]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했다. 그래서 다이쇼 덴노는 아버지 [[메이지 덴노]]의 정실 [[쇼켄 황후]](하루코)가 친어머니인 줄 알았으나, 나이를 제법 먹은 후에야 생모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다이쇼 덴노]]의 임종 즈음해서야 아내 [[데이메이 황후]](사다코)가 배려하여, 다이쇼 덴노가 요양 중이던 하야마의 별장으로 나루코가 찾아가 비로소 상봉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다이쇼 덴노는 친어머니 나루코의 손을 잡은 채로 사망했다. 이후 말년에는 [[도쿄]] 시나노 정에서 황족과 같은 대우를 받으며 지내다가, 1943년([[쇼와]] 18년) 10월 16일 84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평소에 [[와카]]에 뛰어났다고 한다.[* [[메이지 덴노]]의 정실인 [[쇼켄 황후]] 역시 [[와카]]에 뛰어났다] == 친정 == 나루코의 오빠 야나기하라 사키미쓰(柳原前光) [[백작]]의 서녀 [[야나기하라 뱌쿠렌]]은 '다이쇼 시대 3대 미인'이자 문학가로서, 그리고 파란만장한 사생활로 유명했다. 야나기하라 사키미쓰의 또다른 딸인 노부코(信子)는 고모 나루코의 막내 손자인 [[다카히토 친왕]]의 아내 [[유리코 비]]의 외할머니이다. [각주] [[분류:일본 제국의 인물]][[분류: 일본의 후궁]][[분류:1859년 출생]][[분류:1943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