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관 항목 : [[공주]] ||||<#FFE4E1> '''{{{+1 Princess Alice }}}''' || ||<-2><table width=500><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fa807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Princess Alice 1861.jpg|width=100%]]}}} || ||<#FFE4E1><width=17%> '''이름''' ||앨리스 모드 메리[br](Alice Maud Mary)|| ||<#FFE4E1> '''출생''' ||[[1843년]] [[4월 25일]][br][[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런던]] [[버킹엄 궁전]]|| ||<#FFE4E1> '''사망''' ||[[1878년]] [[12월 14일]] (35세)[br][[독일 제국]] [[헤센 대공국]] [[다름슈타트]] 신궁전|| ||<#FFE4E1> '''장례식''' ||[[1878년]] [[12월 18일]][br][[독일 제국]] [[헤센 대공국]] [[다름슈타트]] 로젠호헤|| ||<#FFE4E1> '''배우자''' ||[[루트비히 4세#s-4]] ,,(1862년 결혼),, || ||<#FFE4E1> '''자녀''' ||[[헤센의 공녀 빅토리아|빅토리아]], [[엘리자베트 알렉산드라 루이제 알릭스|엘리자베트]], 이레네, 에른스트 루트비히, 프리드리히,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알릭스]], 마리|| ||<#FFE4E1> '''아버지''' ||[[앨버트 공|작센코부르크고타의 공자 앨버트]]|| ||<#FFE4E1> '''어머니''' ||[[빅토리아 여왕]]|| ||<#FFE4E1> '''형제''' ||[[빅토리아 아델레이드 메리 루이자|빅토리아]], [[에드워드 7세]], 알프레드, 헬레나, 루이즈, 아서, 레오폴드, 베아트리스|| [목차] == 소개 ==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의 셋째이자 [[차녀]]이며, [[헤센 대공국]] [[루트비히 4세#s-4]]의 아내이다. [[빅토리아 여왕]]의 자녀들 중 처음으로 사망한 자녀이기도 하다.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로 인해 [[혈우병]] 보인자였다. 이 혈우병 보인자가 앨리스의 자녀들에게도 유전되어 차남 프리드리히를 잃었고, 4녀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알릭스]] 또한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로마노프|아들]]의 혈우병을 치료하려다 온 일가가 총살당하였다. == 작위 == * 앨리스 공주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Princess Alice ([[1843년]] [[4월 25일]] ~ [[1862년]] [[7월 1일]]) * 헤센의 루트비히 공자비 전하 Her Royal Highness Princess Louis of Hesse and by Rhine ([[1862년]] [[7월 1일]] ~ [[1877년]] [[6월 13일]]) * 헤센의 대공비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Grand Duchess of Hesse and by Rhine ([[1877년]] [[6월 13일]] ~ [[1878년]] [[12월 14일]]) == 생애 == === 어린 시절 === [[1843년]] [[4월 25일]] [[버킹엄 궁전]]에서 태어나, 6월 2일 [[버킹엄 궁전]]에서 [[성공회]] [[세례]]를 받았다. 당시 영국에서 [[앨리스]]라는 이름이 유행이 아니었으나 [[빅토리아 여왕]]이 신임하던 총리 멜번 경의 추천으로 이름이 정해지게 되었다. 모드[* 마틸다의 애칭]는 앨리스의 대모이자 [[조지 3세]]의 조카인 소피아 마틸다로부터 따왔고, 메리는 [[조지 3세]]의 딸 메리 공주와 같은 날에 태어나서 정해졌다고 한다. ||<tablewidth=500px> [[파일:34796622232_3ba6e4499d_o.jpg|width=100%]] || || 어린 시절의 앨리스 공주 || 앨리스의 출생으로 [[버킹엄 궁전]]이 사생활 보호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한 [[빅토리아 여왕]]은, 와이트 섬에 위치한 오스본 하우스에서 아이들을 양육한다. 앨리스는 그곳에서 살림이나 [[요리]] 등을 배웠고,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할 수 있었다. 검소한 생활을 중시했던 아버지 [[앨버트 공]]의 교육 철학에 따라 화려한 공주보다는 중산층의 자녀처럼 자랐다. 궁전 밖의 생활도 궁금해 하곤 해서 한 번은 몰래 나갔다가 들키기도 했다. 어린 시절에 언니 [[빅토리아 아델레이드 메리 루이자]] 공주, 오빠 [[에드워드 7세]]와 친했다고 하며, 특히 [[빅토리아 아델레이드 메리 루이자|빅토리아 공주]]가 결혼했을 때는 언니와 떨어지기 싫어 상당히 힘들어 했다고 한다. ||<tablewidth=500px> [[파일:AliceSilvy.png|width=100%]] || || [[1861년]] [[6월]]의 앨리스 공주 || 타인에 대한 동정심이 커서, 외할머니 [[마리 루이제 빅토리아|켄트 공작부인 빅토리아]]가 아팠을 때나, 아버지 [[앨버트 공]]이 병마와 싸우고 있을 때 곁에서 정성것 간호했다. [[1861년]] [[앨버트 공]]이 세상을 떠난 후 상심이 컸던 어머니 [[빅토리아 여왕]]의 비서 역할을 하며 나랏일을 도왔다. === 결혼 === [[빅토리아 여왕]]은 자신이 그러했듯 자신의 자녀들도 연애결혼을 하길 바랐지만, 그렇다고 아무하고나 결혼시킬 수는 없었다. 그녀는 앨리스의 남편감으로 [[네덜란드]] [[빌럼 3세]]의 아들 빌럼 왕자와, [[프로이센]]의 알버트 왕자[* 언니 [[빅토리아 아델레이드 메리 루이자|빅토리아 공주]]의 남편 [[프리드리히 3세]]의 사촌이었다.]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빌럼 왕자는 앨리스에게 관심이 적다는 이유로, 알버트 왕자는 공주의 남편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까였다-- 남편감에서 제외되었다. 그 이후 [[빅토리아 아델레이드 메리 루이자|빅토리아 공주]]가 [[독일]] 왕족이었던 [[헤센 대공국]]의 [[루트비히 4세#s-4|루트비히 왕자]]를 추천하였고, 두 사람은 [[1861년]] [[4월 30일]] 약혼하게 된다. ||<tablewidth=500px> [[파일:LudwigIVHeRhein.jpg|width=100%]] || || 남편 [[루트비히 4세#s-4|루트비히]] || 그러나 그녀의 결혼은 [[독일]] 국민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빅토리아 여왕]]은 신혼집을 위해 새 궁전을 짓길 바랐는데, 이것이 국민들의 분노를 일으켰고 미운털이 박힌 앨리스는 신혼집마저도 불확실해졌다. ||<tablewidth=500px> [[파일:alice_wedding_dress.jpg|width=100%]] || || 결혼식 || 설상가상으로 결혼 준비가 한창이던 [[1861년]] [[12월 14일]], 아버지 [[앨버트 공]]이 사망한다. [[빅토리아 여왕|여왕]]의 슬픔에도 결혼 준비는 계속되었으며, [[1862년]] [[7월 1일]] 오스본 하우스에서 [[루트비히 4세#s-4|루트비히 왕자]]와 결혼한다. [[앨버트 공]]의 죽음으로 결혼식 분위기는 굉장히 우울했다. 앨리스 공주는 본식을 제외하고는 검은 옷을 입어야 했고, [[빅토리아 여왕]]은 결혼식 내내 울음을 참았다고 한다. [[빅토리아 여왕|여왕]]이 딸 [[빅토리아 아델레이드 메리 루이자|빅토리아 공주]]를 비롯하여 지인들에게 쓴 편지에는 "결혼식보다 장례식 같았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슬픈 날이었다" 등으로 결혼식을 언급했다. 앨리스는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 친정어머니 [[빅토리아 여왕]]을 기분 나쁘게 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빅토리아 여왕|여왕]]이 찾아올 때면 그녀는 행복한 척을 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왕은 사랑에 물들어 있는 딸을 질투했다고 한다. === 결혼 생활 === ||<tablewidth=500px> [[파일:The_Hessian_family_in_1876.jpg|width=100%]] || || [[1876년]] 가족사진 || [[1863년]] 오빠 [[에드워드 7세]]와 [[덴마크]]의 공주 알렉산드라의 결혼으로 [[영국]]을 방문한 앨리스는 그곳에서 첫 딸 [[헤센의 공녀 빅토리아|빅토리아]]를 낳는다. [[1864년]]에는 둘째 딸 [[엘리자베트 알렉산드라 루이제 알릭스|엘리자베트]]를 낳았다. 직접 [[모유]]수유를 하길 원했던 그녀는 양육 방식에 있어 [[빅토리아 여왕]]과 갈등이 있었고, 어머니와의 관계는 점점 멀어졌다. 셋째 아이를 [[임신]] 중이던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 발발하였다. [[헤센 대공국]]은 [[오스트리아]]를 지지했기 때문에 언니 [[빅토리아 아델레이드 메리 루이자|빅토리아 공주]]와는 대척점에 서게 되었다.[* [[빅토리아 아델레이드 메리 루이자]] 공주는 [[프로이센]]의 왕세자비였기 때문이다.] 남편 [[루트비히 4세#s-4|루트비히 왕자]]는 기사로 전쟁에 참가하였고, 아이들은 [[영국]]으로 보내졌다. 임신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만삭의 몸으로 병원을 돕는 등 왕족으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하였다. 전쟁이 한창이던 그 해 7월, 앨리스는 셋째 딸 이레네를 낳았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남편과 재회했으며 부상자들을 간호했다고 한다. 이때 친해진 사람이 바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나이팅게일]]은 [[영국]]으로부터 앨리스에게 돈을 전해주었고, 앨리스는 간호를 하며 그녀의 조언을 따르곤 했다. === 말년 === ||<tablewidth=500px> [[파일:AliceHesse.jpg|width=100%]] || || 말년의 앨리스 공주 || 앨리스의 말년은 정말 불행했는데, [[1873년]] 그녀가 가장 사랑했던 막내아들 프리드리히가 창문 밖으로 떨어지는 사고로 죽었기 때문이었다. 프리드리히는 외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유전된 [[혈우병]] 환자였기 때문에, 사고가 났을 때 피가 멈추지 않았다.[* 피가 멈추었더라면 살았을 것이라고 한다.] 이 일이 일어난 이후 앨리스는 사망할 때까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첫째 아들 에른스트와 막내 딸 마리[* 프리드리히 사후에 태어났다.]에게 집착하게 되었다. 말년에는 남편과의 사이도 좋지 않았고, [[헤센 대공국]]의 대공비가 된 이후에도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해 심적 부담감이 컸다고 한다. === 사망 === [[1878년]] [[11월]], 첫째 딸 [[헤센의 공녀 빅토리아|빅토리아]]가 [[디프테리아]]에 걸렸다. [[디프테리아]]는 순식간에 다른 아이들에게 전염되었다. 남편 루트비히 4세도 잠깐이지만 감염되었었고, 시어머니 엘리자베스 공주에게 있었던 둘째 딸 [[엘리자베트 알렉산드라 루이제 알릭스|엘리자베트]]만이 유일하게 전염되지 않았다. 결국 막내딸 마리는 어린 나이에 사망하고 말았다.[* 막내딸의 죽음에 앨리스가 어찌나 상심했는지 죽기 직전 마리의 애칭인 '메이'라는 말을 유언으로 말할 정도였다.] 앨리스는 이 사실을 다른 아이들에게 숨겼으나, 몇 주 뒤 아들 에른스트에게 말하였다. 이에 충격을 받아 우는 아들의 이마에 입맞춤을 하다가 본인마저도 감염되어 버렸다. 결국 친정아버지 [[앨버트 공]]의 기일인 [[12월 14일]], 병세가 심각해져 "사랑하는 아빠(dear Papa)" 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사망하였다. 그녀의 관은 [[유니언 잭]]에 감싸져 [[다름슈타트]]의 로젠호헤에 묻혔다. 그녀의 사망으로, 친정어머니 [[빅토리아 여왕]]과 언니 [[빅토리아 아델레이드 메리 루이자|빅토리아 공주]]를 비롯한 [[영국]] 왕실 일원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특히 [[빅토리아 여왕]]은 17년 전 [[앨버트 공|남편]]이 죽었던 그 날 또 딸을 잃었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했다고 한다. == 자손과 비극 == 남편 [[루트비히 4세#s-4]] 사이에서 2남 5녀를 낳았다. 첫째 딸 [[헤센의 공녀 빅토리아|빅토리아]]의 아들이자 [[인도]]의 마지막 총독이었던 [[루이 마운트배튼]] 경은 [[1979년]] [[IRA]] 폭탄 테러로 사망했다. 빅토리아의 외손자 [[필립 마운트배튼]]은 현재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부군이다.[* 따라서 [[필립 마운트배튼|필립 공]]과 [[엘리자베스 2세]]는 8촌 관계이다.][* [[필립 마운트배튼|필립 공]]의 모계 혈통이 앨리스였기 때문에 후에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의 [[미토콘드리아]]를 검사할 때 [[필립 공]]의 DNA와 대조할 수 있었다. [[미토콘드리아]]는 모계 유전만 되기 때문이다.] 둘째 딸 [[엘리자베트 알렉산드라 루이제 알릭스|엘리자베트]]는 [[러시아 제국]]의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 [[알렉산드르 2세]]의 아들이자 [[니콜라이 2세]]의 삼촌. 모계 쪽으로는 엘리자베트와 5촌 관계이다.]과 결혼해서 러시아 황실로 시집을 갔다. 세르게이는 [[1905년]]에 암살당하였고, 과부가 된 엘리자베트는 [[수녀]]가 되어 자선과 봉사에 전념하였다. 그러나 그녀 또한 여동생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가 처형당한 다음 날 [[볼셰비키]]에 의해 살해당하였다. 셋째 딸 이레네는 앨리스 공주의 언니 [[빅토리아 아델레이드 메리 루이자]] 황후의 아들 하인리히 왕자와 결혼하여 3남을 낳았다. 그러나 역시 혈우병 보인자로 두 아들(첫째(1889~1945), 셋째(1900~1904) - 셋째는 4살때 요절, 첫째는 결혼했으나 자녀 없음)에게 혈우병을 물려주었고, 둘째 아들(1896~1978)의 딸의 후손만 현재 남아있다. 장남 에른스트 루트비히는 사촌 [[작센-코부르크-고타]]의 공녀 빅토리아 멜리타[* 빅토리아 여왕의 둘째 아들 알프레드 왕자의 둘째 딸, 1876~1938]와 결혼하였으나 딸 엘리자베트를 낳고 이혼하였다.[* 엘리자베트는 8살에 요절(1895~1903) 했다. 참고로 빅토리아 멜리타는 이후 외사촌인 러시아의 키릴 대공(멜리타의 어머니인 마리야의 오빠이자 러시아 차르 알렉산드르 2세의 넷째 아들인 블라디미르 대공(1847~1909)의 아들)과 연애를 했으나 황실의 반대에 부딪혔는데, 멜리타의 전 남편 에른스트 루트비히의 여동생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헤센의 알릭스]]가(바로 아래 문단에 나오듯) 키릴의 사촌인 [[니콜라이 2세]]의 황후인 것도 큰 몫을 했다. 알릭스 입장에서는 오빠와 이혼한 전 올케가 자기 남편의 사촌과 재혼한 격. 이후 빅토리아 멜리타는 러일전쟁과 1차 대전을 거치며 겨우 인정을 받아 키릴 대공과 혼인했으나, 곧 [[러시아 혁명]]이 터지면서 전 시누이 일가([[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알릭스]]의 가족)를 비롯한 황실 인사들이 볼셰비키에 의해 몰살당하는 비극을 겪었다. 그래도 겨우 외국으로 망명하여 천수를 누렸다.] 이후 졸렘호엔졸름리히의 공녀 엘레오노레와 재혼하여 2남을 낳았는데, 장남 게오르그 도나투스와 그의 아내 세실리아[* 앨리스의 장녀 [[헤센의 공녀 빅토리아|빅토리아]]의 손녀이자 [[필립 마운트배튼]]의 누나이다. 즉, 남편 게오르그 도나투스와 5촌 관계이다.]는 일가가 비행기 사고로 막내 요한나[*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 아이마저도 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수막염으로 사망한다.]를 제외한 전원이 사망하였다. [[헤센 대공가 비행기 추락사고]] 참조. 에른스트의 차남 루트비히 또한 자식 없이 사망하며 헤센-다름슈타트 대공가의 직계 자손은 끊기게 된다. 넷째 딸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알릭스]]는 [[러시아 제국]]의 [[니콜라이 2세]]와 결혼했다. 러시아로 시집가면서 알릭스는 [[루터회]]에서 [[정교회]]로 개종했고, 이름도 러시아식으로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라고 바꾸었다.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는 딸만 4명을 낳은 끝에 어렵게 아들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로마노프|알렉세이]]를 낳았는데, 불행히도 이 아이는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유전된 [[혈우병]]을 가지고 태어났다.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로마노프|아들]]의 혈우병을 치료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던 알렉산드라 황후는 요승 [[그리고리 라스푸틴]]에게까지 매달리게 되었고, 라스푸틴의 전횡으로 러시아 제국은 몰락한다. [[1918년]], 알렉산드라 황후는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볼셰비키]]에 [[총살]]당하여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차남 프리드리히는 1873년 창문 밖으로 떨어져 사망하였고, 5녀 마리는 1878년 [[디프테리아]]로 요절하였다. 이러한 비극적인 죽음으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앨리스의 자손은 장녀 [[헤센의 공녀 빅토리아|빅토리아]], 3녀 이레네의 후손들 뿐이다. == 가족관계 == === 조상 === ||<#FFA3A5> 본인 ||<#FFDBAE> 부모 ||<#FFFFAE> 조부모 ||<#AEFFC6> 증조부모 || ||<#FFE4E1><|13> [[영국]]의 앨리스 공주[br]{{{-2 (Princess Alice[br]of the United Kingdom)}}} ||<#FFF3E4><|6> [[작센코부르크고타]]의 공자 [[앨버트 공|앨버트]][br]{{{-2 (Prince Albert[br]of Saxe-Coburg and Gotha)}}} ||<#FFFFE4><|3>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에른스트 1세[br]{{{-2 (Ernest I,[br]Duke of Saxe-Coburg and Gotha)}}} || ||<#E4FFEC> 작센코부르크잘펠트 공작[br]프란시스 프리드리히[br]{{{-2 (Francis Frederick,[br]Duke of Saxe-Coburg and Saalfeld)}}} || ||<#E4FFEC> 로이스-에보스도르프 여백작[br]아우구스타 카롤리나[br]{{{-2 (Countess Augusta Carolina[br]of Reuss-Ebersdorf)}}} || ||<#FFFFE4><|3> 작센고타알텐부르크의 공녀 루이즈[br]{{{-2 (Princess Louise[br]of Saxe-Gotha-Altenburg)}}} || ||<#E4FFEC> 작센고타알텐부르크 공작 아우구스투스[br]{{{-2 (Augustus,[br]Duke of Saxe-Gotha-Altenburg)}}} || ||<#E4FFEC> [[메클렌부르크슈베린]] 여공작[br]루이즈 샤를로트[br]{{{-2 (Duchess Louise Charlotte[br]of Mecklenburg-Schwerin)}}} || ||<#FFF3E4><|7> [[빅토리아 여왕]][br]{{{-2 (Victoria)}}} || ||<#FFFFE4><|3> 켄트와 스트래선 공작 에드워드 왕자[br]{{{-2 (Prince Edward,[br]Duke of Kent and Strathearn)}}} || ||<#E4FFEC> [[조지 3세]][br]{{{-2 (George III)}}} || ||<#E4FFEC>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공녀 샬럿[br]{{{-2 (Princess Charlotte[br]of Mecklenburg-Strelitz)}}} || ||<#FFFFE4><|3> [[마리 루이제 빅토리아|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공녀 빅토리아]][br]{{{-2 (Princess Victoria[br]of Saxe-Coburg and Saalfeld)}}} || ||<#E4FFEC> 작센코부르크잘펠트 공작[br]프란시스 프리드리히[br]{{{-2 (Francis Frederick,[br]Duke of Saxe-Coburg and Saalfeld)}}} || ||<#E4FFEC> 로이스-에보스도르프 여백작[br]아우구스타 카롤리나[br]{{{-2 (Countess Augusta Carolina[br]of Reuss-Ebersdorf)}}} || === 자녀 === || 자녀 || 이름 || 출생 || 사망 || 배우자/자녀 || ||<#FFF0F5> 1녀 ||<#FFF0F5> [[헤센의 공녀 빅토리아|밀퍼드 헤이븐 후작부인 빅토리아]][br]{{{-2 (Victoria, Marchioness of Milford Haven)}}} ||<#FFF0F5> [[1863년]] [[4월 5일]] ||<#FFF0F5> [[1950년]] [[9월 24일]] ||<#FFF0F5> [[바텐베르크의 공자 루트비히]][br]슬하 2남 2녀[* [[바텐베르크의 공녀 앨리스|그리스와 덴마크의 안드레아스 왕자비 앨리스]], [[루이즈 마운트배튼|스웨덴의 루이즈 왕비]], [[루이 마운트배튼|제1대 버마의 마운트배튼 백작 루이 마운트배튼]] 등] || ||<#FFF0F5> 2녀 ||<#FFF0F5> [[러시아 제국]] 대공비[br][[엘리자베트 알렉산드라 루이제 알릭스|엘리자베트 표도로브나]][br]{{{-2 (Grand Duchess Elizabeth Feodorovna of Russia)}}} ||<#FFF0F5> [[1864년]] [[11월 1일]] ||<#FFF0F5> [[1918년]] [[7월 18일]] ||<#FFF0F5> [[러시아 제국]] 대공[br]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알렉산드르 2세]]의 5남이다.] || ||<#FFF0F5> 3녀 ||<#FFF0F5> 이레네 공녀[br]{{{-2 (Princess Irene)}}} ||<#FFF0F5> [[1866년]] [[7월 11일]] ||<#FFF0F5> [[1953년]] [[11월 11일]] ||<#FFF0F5> [[프로이센]]의 하인리히 왕자[* [[프리드리히 3세(독일 제국)|프리드리히 3세]]의 차남이자 [[빅토리아 여왕]]의 손자이다.][br]슬하 3남 || ||<|2><#F0F8FF> 1남 ||<|2><#F0F8FF> [[헤센 대공국]] 대공[br]에른스트 루트비히[br]{{{-2 (Ernest Louis, Grand Duke of Hesse)}}} ||<#F0F8FF><|2> [[1868년]] [[11월 25일]] ||<#F0F8FF><|2> [[1937년]] [[10월 9일]] ||<#F0F8FF> --[[작센코부르크고타]]의 공녀[br]빅토리아 멜리타--[* [[빅토리아 여왕]]과 [[알렉산드르 2세]]의 손녀이다.][br]슬하 1녀 || ||<#F0F8FF> 졸름스-호헨졸름스-리흐의 공녀 엘레오노르[br]슬하 2남 || ||<#F0F8FF> 2남 ||<#F0F8FF> 프리드리히 공자[br]{{{-2 (Prince Friedrich)}}} ||<#F0F8FF> [[1870년]] [[10월 7일]] ||<#F0F8FF> [[1873년]] [[5월 29일]] ||<#F0F8FF> || ||<#FFF0F5> 4녀 ||<#FFF0F5> [[러시아 제국]]의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알릭스 황후]][br]{{{-2 (Alix, Empress of Russia)}}} ||<#FFF0F5> [[1872년]] [[6월 6일]] ||<#FFF0F5> [[1918년]] [[7월 17일]] ||<#FFF0F5> [[니콜라이 2세]][br]슬하 1남 4녀[* [[올가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러시아 제국 여대공 올가 니콜라예브나]], [[타티아나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러시아 제국 여대공 타티아나 니콜라예브나]], [[마리아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러시아 제국 여대공 마리아 니콜라예브나]], [[아나스타시야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러시아 제국 여대공 아나스타샤 니콜라예브나]],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로마노프|러시아의 황태자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 ||<#FFF0F5> 5녀 ||<#FFF0F5> 마리 공녀[br]{{{-2 (Princess Marie)}}} ||<#FFF0F5> [[1874년]] [[5월 24일]] ||<#FFF0F5> [[1878년]] [[11월 16일]] ||<#FFF0F5> || [[빅토리아 여왕/가족관계#s-3]] 참조. [[분류:색스코버그고타 가문]] [[분류:헤센다름슈타트 가문]] [[분류:영국의 공주]][[분류:1843년 출생]] [[분류:1878년 사망]] [[분류:전염병으로 죽은 인물]] [[분류:런던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