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사건사고)] '''항공계 최악의 해 [[1985년]]을 마무리한 추락사고''' [목차] == 사고 과정 == 1985년 12월 12일, [[미 육군]]이 대여한 애로우 항공의 [[DC-8]] 전세기가 [[이집트]]에서 이륙해 [[독일]]과 [[뉴펀들랜드]]를 경유한뒤 [[켄터키]]의 포트 캠벌 [[육군]][[기지]]로 가는 중이었다. 탑승자 248명 전원 모두 [[육군]] [[제101공수사단|제101공중강습사단]] [[장병]]들이었고, 5개월간 [[시나이 반도]]에 파병되었다 귀국하기 위해 탑승했다. 당시 [[조종사|기장]]는 존 그리핀으로 비행교관이기도 했다. 부기장은 존 코넬리, [[항공기관사]]는 마이크 파울러로 조종사들은 비행 전 점검 절차를 진행했다. 비행기는 이후 겐더 공항에서 재급유를 했으며, 이륙 마지막 순간에 활주로가 변경되어 22번 활주로에서 오전 6시 46분에 이륙했다. 그런데 이륙한지 2초 후 속도가 떨어지고 '''비행기가 숲에 추락한 뒤 폭발했다.''' 관제탑에서 폭발을 목격해 소방대를 출동시켰으나 불길이 너무 강해 진압이 힘든 상황이었다. 결국 탑승자 256명이 '''전원 사망했다.''' 이는 101 공수사단이 창설된 후 겪은 사건 또는 단일 전투 중 가장 큰 사망자 수였다.[* 2차 세계 대전에서 101 공수사단은 2043명이 사망했지만 전쟁기간 모두 합쳐서이며 단일 전투로는 256명 이상 사망한 전투가 없었다.] == 사고 원인 == 원인은 결빙과 과적이었다. 애로우 항공의 지침서의 평균무게는 남녀 노소의 무게 평균으로, 약 77kg인데 탑승자 대부분은 건장한 남성이었고, 파병 후 귀국하는 이들 특성상 꽤 무거웠을 개인 수하물과 장비까지 계산하면 평균 무게는 100kg이나 되었다. 총 탑승 중량은 24.5톤으로 적하목록에 기재된 중량보다 5.5톤 무거웠다. 이것도 모르고 이륙해 사고가 난 것이었다. 또한 당시 날씨가 너무 추워서 날개에 쌓인 얼음이 얼어붙은것 또한 이유였다. 1980년대 중반 이전에는 얇은 얼음층이 꼈는지는 알아보지 않고, 큰 얼음이 얼어있는지만 확인했는데 이것은 당시에 얇은 얼음층의 위험성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 테러? == 사고가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하드]] 소속이라 밝힌 한 남성이 자신들이 비행기를 테러했다고 미국 [[영사관]]에 통보했다. 그런데 파편에서는 폭발물이 하나도 검출되지 않았고, 추락 당시 목격자들이 엔진에서 불꽃을 목격하긴 했으나 이는 실속할 때 기수를 너무 높게 들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또한 희생자의 혈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은 것이 공중 폭발의 증거라는 설도 있었으나 이는 화재로 인한 것으로 드러났고, 정체불명의 도료도 잔해를 치우던 굴삭기에서 묻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와중에 전세기에서 정체불명의 [[상자]]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적하목록에 없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이집트에서 이륙할 때[* 당시 이집트는 보안이 허술했다.] 누군가가 몰래 실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이것이 기체 추락에 원인을 제공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 추모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Ft_Campbell_memorial_for_Arrow_Air_Flight_1285.jpg]] 추모비는 101사단 사령부가 위치한 FT.campbell에 설치되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Gander_airport_Silent_witness.jpg]][* 아이러니하게도 위 사진에서 이륙하는 비행기는 101 강습사단을 태우고 추락한 비행기인 [[DC-8]]이다.] 갠더 호수에는 1285편의 희생자를 기리는 동상이 설치되었다. [[분류:1985년 항공사고]][[분류:레이건 행정부]][[분류:미군/사건사고]][[분류:과적으로 인한 항공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