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예루살렘 왕국의 국왕, rd1=앙리 1세(예루살렘 왕국))] [include(틀:다른 뜻1, other1=아이티 왕국의 국왕, rd1=앙리 1세(아이티))] [include(틀:역대 프랑스 국왕(카페 왕조))] ||||[[파일:앙리 1세(프랑스).jpg]]|| ||<tablealign=center> '''이름''' ||앙리 1세(Henri I) || || '''생몰년도''' ||1008년 5월 4일~ 1060년 8월 4일 (52세) || || '''재위기간''' ||1031년 7월 20일 ~ 1060년 8월 4일 || || '''출생지''' ||프랑스 왕국 랭스 || || '''사망지''' ||프랑스 왕국 비트리오로주 || Henry I [[프랑스 왕국]]의 국왕. [[카페 왕조]]의 3대 왕. 로베르 2세와 아를의 콘스탄스 사이에서 태어난 [[차남]]이다. 형 위그는 공동 왕이었으나, 1025년 사망하여 왕이 되지 못했다. 그의 치세 내에서 중요한 일은 어린 나이에 [[서자]]로써 작위를 상속받았던 [[노르망디 공국|노르망디]] [[공작(작위)|공작]] 기욤 2세가 귀족들을 정복하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욤 2세가 강성해지자 프랑스의 왕위를 노릴까봐 경계했던 그는 1054년과 1056년에 전투를 펼쳤으나 패하고 말았다. 거기다 그 기욤 2세는 나날이 승승장구하고 엄청난 행운들로 1066년 브리튼 섬으로 건너가서 [[노르만 왕조]]를 건국하는 [[윌리엄 1세]]가 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잉글랜드 노르만 왕조를 성립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밖에도 교황과 대립하고 [[신성 로마 제국]]에 압박을 가해 로렌 지방 탈환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당시 프랑스 왕령은 고작 수도 [[파리(프랑스)|파리]] 주변과 오를레앙에 그쳤다. 1060년 비트리오로그에서 사망했다. 또, 지금에 와서 보면 잘 상상이 안 되는 이야기지만, 이 당시 '''프랑스는 우크라이나에게 문화적으로 무시당하는''' 굴욕을 당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앙리와 결혼하여 프랑스로 시집 온 우크라이나의 전신인 [[키예프 공국]]의 [[공녀]] 안나(А́нна Яросла́вна, Anne de Kiev; 1024~1075)가 자기 아버지 야로슬라프 1세한테 '''프랑스는 주택들이 음침하고, 성당은 초라하며, 풍습은 혐오스러운 야만국'''(...)이라는 문구가 적힌 편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편인 앙리 1세는 아내와는 달리 글을 몰랐으며 더 가관인 건 저렇게 무시한 프랑스가 그나마 서유럽에선 가장 문화가 발달한 나라였다(...)] 사실 이것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분으로, 당시 키예프는 [[동로마 제국]]의 문화를 받아들여 화려한 문화적 전성기를 꽃피우고 있었다. [[파리(프랑스)|파리]]를 비롯한 서유럽의 본격적인 전성기는 약간 더 후대인 12세기쯤부터 시작되는데, 반대로 키예프 공국은 그 때부터 쇠퇴하다가 13세기에 몽골의 침공을 맞아 멸망해버린다. [[분류:프랑스 국왕]][[분류:카페 가문]][[분류:1008년 출생]][[분류:1060년 사망]][[분류:생 드니 대성당 안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