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1798년]] [[1월]] [[1월 17일|17일]]에 리보빌레에서 태어나 [[1877년]] [[5월]] [[5월 9일|9일]]에 [[스트라스부르]]에서 세상을 떠난 '''앙드레 프리드리크'''(혹은 프리드리히)는, 1826년부터 스트라스부르에서 활동한 알자스인 조각가다. 그는 붉은 사암을 써서 많은 [[묘지]]와 조각들을 제작했다. == 생애 == 앙드레 프리드리크는 자신의 부친과 마찬가지로 최초의 목각사였다. 1826년에 스트라스부르에 정착하기까지, 프리드리크는 스트라스부르, 독일, 파리의 보지오 스튜디오 등에서 작품활동을 했다. 그는 스트라스부르에서 대다수 작품들을 만들었다. 초창기에는 [[베를린]] 아카데미의 학장이자 조각가인 요한 고트프리트 샤도와, [[덴마크인]] 조각가 베르텔 토르발센과 [[로마]]에서 친분을 쌓았다. 프리드리크의 첫 번째 아내인 마리아 안나(1807-1838)는 1838년에 이른 제왕절개 수술을 시도하다가 31살에 죽었다. 갓난아이 역시 살아나지 못했다. 앙드레 프리드리히는 자기 부부의 추억을 영원불멸의 것으로 만들고자 세인트 헬레나 스트라스부르의 묘지에 [[기념비]]를 조각했다. 프리드리크는 두 번째로 마리 앙투아네트 모미와 결혼했는데, 그녀는 [[1890년]] [[1월]] [[1월 19일|19일]]에 사망했다. 이들 사이에 태어난 딸 아멜리(1834-1858)는 24살의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프리드리히는 딸을 위한 기념비를 만들고 자기와 아내를 위한 무덤도 만들었다. 이들의 무덤도 세인트 헬레나 묘지에 위치해 있다. [[분류:프랑스의 화가]][[분류:1798년 출생]][[분류:1877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