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동명이인/ㅇ]] [[분류:동로마 황족]] [[분류:십자군 전쟁/관련인물]] [[분류:콤니노스 가문]] 알렉시오스 콤니노스(Ἀλέξιος Κομνηνός) 본래 알렉시오스라는 이름은 대왕 [[알렉산드로스 3세]] 처럼 'Alex-' 계통의 이름 중 하나로 그리스어권에서 종종 쓰이던 이름이었으나, [[알렉시오스 1세]]가 대박을 치면서 [[콤니노스 왕조]]의 황족을 중심으로 널리 쓰이게 되어 많은 동명이인을 낳게 되었다. 그러나 알렉시오스라는 이름을 가졌던 황제들은 [[알렉시오스 1세]]를 제외하고 어째 다 운명이 좋지 않다. [목차] == [[알렉시오스 1세]](1056 - 1118) == 이 이름을 가진 인물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 항목 참조. == 알렉시오스 콤니노스(1077? - 1108~) == [[알렉시오스 1세]]의 조카. 알렉시오스 1세의 둘째형이자 제국의 2인자인 세바스토크라토르(Sebastocrator) [[이사키오스 콤니노스#s-2]]와 알라니아의 이리니 사이에서 태어난 삼남이다. 황제의 조카이다보니 세바스토스(Sebastos) 작위를 가졌고, 1106년 봄에는 큰형 [[요안니스 콤니노스#s-3]]의 뒤를 이어 제국 서부의 요충지 [[디라히온]]의 둑스(Doux)가 되었다. 마침 1106년 즈음은 [[보에몽 1세]]의 재침공 징후가 농후해지던 때였다. 황제도 이를 감지하고 있었으므로, 숙질간에 서신을 교환하며 부지런히 방비를 서둘렀다. 1107년 10월, 과연 보에몽이 [[아드리아 해]]를 건너 침공해왔다. 11월이 되자 보에몽은 디라히온을 포위하고 공성을 시작했는데, 26년전 [[디라히온 공방전]]의 패배에서 배운 교훈을 기억하고 있던 황제는 예전과는 달리 단기결전을 위한 야전을 걸지 않았다. 조카인 알렉시오스는 26년전에 같은 처지였던 요르요스 팔레올로고스처럼 디라히온을 잘 방어해냈다. 결국 겨울동안 질병과 보급부족, 배후에 있던 황제의 위협에 시달린 보에몽은 패배를 인정했고, 이듬해인 1108년에는 자신과 [[안티오키아 공국]]이 제국의 봉신임을 인정하는 데볼 조약(Treaty of Devol)을 맺었다. 이후의 생애는 기록이 적어 불확실하다. 생몰년이 명확하지 않을 정도. 위의 디라히온 공방전에 대한 내용도 사촌인 [[안나 콤니니]]의 저작인 [[알렉시아스]]에 근거한 것이다. == 알렉시오스 콤니노스(1106 - 1142) == [[파일:prince alexios_Agia_Sophia.jpg|width=400]] [[요안니스 2세]]와 이리니 황후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 마리아 콤니니와 쌍둥이로 태어났다. 1122년에는 공동황제로 지명되었으나, 아버지 요안니스 2세의 마지막 원정에 종군했다가 병으로 급사하였다. 그를 묘사한 모자이크 중 [[하기아 소피아]]에 부모의 모자이크 옆면에 그려진 것은 종종 그의 조부의 것으로 오인 되어 혼란을 가중시킨다(...). == 알렉시오스 콤니노스(1135/1142 - 1182) == [[요안니스 2세]]의 손자로, 요안니스 2세의 차남인 안드로니코스 콤니노스의 아들이다. [[마누일 1세]]의 조카이자 [[알렉시오스 2세]]의 사촌형(아버지 뻘 사촌형)이다. 프로토세바스토스(Protosebastos: 대공, 대군주 정도에 해당하는 작위)였으며, 마누일의 어린아들인 [[알렉시오스 2세]]를 보좌하는 섭정단의 수장이었다. 다만 인기가 없었는지 어린 황제의 모후인 [[안티오키아의 마리아]]와의 염문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제위를 찬탈할 것이라고 의심받아 마누일 1세의 장녀인 마리아 콤니니가 쿠데타를 일으키게 되었으며, 결국 우유부단하게 대처한 끝에 당숙 [[안드로니코스 1세]]가 개입하게 되어 실명을 당한 뒤에 목숨을 잃게 된다. == [[알렉시오스 2세]](1169 - 1183) == [[마누일 1세]]와 [[안티오키아의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