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131230><bgcolor=#ffffff><tablewidth=400><width=100%> [[파일:하계올림픽안한봉2.png|width=100%]] || ||<bgcolor=#131230> {{{#ffffff '''이름'''}}} ||<bgcolor=#ffffff> 안한봉(安漢奉, An Hanbong) || ||<bgcolor=#131230> {{{#ffffff '''국적'''}}} ||<bgcolor=#ffffff> [[대한민국]][[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25]] || ||<bgcolor=#131230> {{{#ffffff '''출생'''}}} ||<bgcolor=#ffffff> [[1968년]] [[10월 5일]], [[전라남도]] [[해남군]] || ||<bgcolor=#131230> {{{#ffffff '''학력'''}}} ||<bgcolor=#ffffff> 해남중학교[br]광일고등학교[br][[한국체육대학교]] || ||<bgcolor=#131230> {{{#ffffff '''종목'''}}} ||<bgcolor=#ffffff> [[레슬링]] || ||<bgcolor=#131230> {{{#ffffff '''체급'''}}} ||<bgcolor=#ffffff> 그레코로만형 -57kg || ||<bgcolor=#131230> {{{#ffffff '''신체'''}}} ||<bgcolor=#ffffff> 161cm, 57kg || ||<bgcolor=#131230> {{{#ffffff '''별명'''}}} ||<bgcolor=#ffffff> 작은 거인 || [목차] == 소개 == [[대한민국]]의 前 [[레슬링]] 선수이다. 1990 세계선수권 은메달, 1989 세계선수권 동매달,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57kg 금메달리스트이다. == 선수 경력 ==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그레코로만형 57kg급에서 금메달을 딴 레슬링계의 스타 선수로 활약을 펼쳤다. 아쉽게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을 따 그랜드슬램 달성에는 실패하였다.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시작으로 이름만 알려졌을 뿐 세계랭킹에서는 압도적으로 밀렸다. 그래서 권덕용[* 1991년 세계선수권 그레코로만형 48kg급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예선에서 초반에 탈락했다.], [[박장순]][* 박장순의 경우도 그의 체급인 자유형 74kg에 동급 최강 '케네디 먼데이'(미국)가 버티고 있었다.] 등 다른 선수들에게 금메달을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사람들은 안한봉을 '''단지 스페인 구경이나 가는 사람''' 정도로밖에 취급하지 않았다. 뉴스에서도 '''잘해야 동메달'''이라고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나, 그는 만나는 선수들마다 악착같이 밀어붙였다. 1점을 실점하면 2점을 딸 때까지 끈질기게 매달렸고 결국 따내고야 말았다. 안한봉을 만나는 선수들은 죄다 안한봉의 이 악착같음에 혀를 내둘렀고 결국 근성에서 밀려서 졌다. 결승에서는 동체급 세계랭킹 1위였던 [[독일]]의 '리파트 일디즈'[* 1990년과 1991년 세계선수권에서 연속 우승한 이 체급 세계 최강자였다.]를 만났다. 여기서도 안한봉은 마치 도베르만이 목덜미를 물어뜯듯 일디즈를 잡고 사정없이 몰아붙였다. 힘에서 일디즈에게 밀렸으나 악착같이 밀어붙였다. 한마디로 너죽고 나죽자 식으로 경기를 했다. 중반에 역습을 당해 3점을 내줬지만 불 같은 정신력을 발휘해 옆굴리기로 2점을 따냈고 일디즈를 장외로 밀어내 1점을 만회해 동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연장에서 결국 일디즈를 쓰러뜨리고 금메달을 [[http://mn.kbs.co.kr/mobile/news/view.do?ncd=1078764|획득했다.]] ||<bgcolor=#ffffff><table bordercolor=#131230> [youtube(Nygq_dvZDcg, width=100%)] || ||<bgcolor=#ffffff> 올림픽 결승전 하이라이트 || 안한봉이 금메달을 획득하자 대한민국 올림픽 팬들은 그의 악착같은 성격에 혀를 내둘렀다. == 지도자 경력 == 현역에서 은퇴한 후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지도자로서 또 하나의 레전드를 작성했다. 현역 은퇴 후, 2004년부터 현재까지 삼성생명 레슬링단 감독을 맡으며 레슬링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2004 아테네 올림픽]] 국가대표팀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감독을 지내면서 애제자 정지현 선수의 금메달 획득의 성과를 낸다. 이후, 국가대표팀과 인연이 없다가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레슬링이 '노 골드'의 수모를 당하자, 급히 [[2012 런던 올림픽]] 국가대표팀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감독으로 재발탁되었다. 한국 레슬링의 자존심을 세울 '비장의 무기'로 김현우를 점찍었는데, 당시 김현우는 안 감독이 김현우가 강원고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삼성생명으로 스카우트할 정도로 안 감독이 일찍 [[김현우(레슬링)|김현우]]의 천제성을 눈여겨 보았다. ||<tablebordercolor=#121230><bgcolor=#ffffff> [[파일:국제레슬링연맹(FILA) 선정 올해 최고의 지도자 안한봉_subeen2323.jpg|width=100%]] || ||<bgcolor=#ffffff> 국제레슬링연맹(FILA) 선정 올해 최고의 지도자 || [[2012년 런던 올림픽]]에 국가대표팀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감독으로 참가하며, 수제자 '김현우'의 금메달 환호성이 런던 하늘에 울려 퍼지는데 일조하였다. 또한 2013년 9월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김현우(74㎏급), 류한수(상무·66㎏급) 등이 금메달을 목에 거는 등, 금메달 2개와 은·동메달 1개씩을 휩쓸며 지도력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국제레슬링연맹(FILA)이 선정하는 올해의 최우수지도자상을 수상했다.[* 한국 레슬링이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따낸 것은 1999년 이후 무려 14년 만이었다.] 한국 지도자가 FILA 선정 최우수지도자에 뽑힌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과 동시에 최초로 아시아인 수상자라는 점에서, 위 수상은 매우 큰 의미를 갖지며 지도자로서의 능력과 성공을 세계로부터 인정받았다.[* 축구로 따지자면 FIFA 올해의 감독상과 비슷한 개념이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레슬링 선수단 감독으로 참여하며 스타 레슬링 감독으로서의 전설을 이어나갔다. 리우 올림픽에서 김현우가 예선 첫경기에서 동급 라이벌인 러시아의 '로만 블라소프'와의 경기에서 편파판정을 당하자 펄펄 뛰면서 울먹이며 항의하던 모습 또한 유명하다. == 수상 기록 == ||<-3><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131230><table width=350><bgcolor=#131230> {{{#white 올림픽}}} || ||<bgcolor=#ffd700> 금메달 ||<bgcolor=#ffffff>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1992 바르셀로나]] ||<bgcolor=#ffffff> 57kg || ||<-3><bgcolor=#131230> {{{#white 세계선수권}}} || ||<bgcolor=#c0c0c0> 은메달 ||<bgcolor=#ffffff> 1990 오스티아 ||<bgcolor=#ffffff> 52kg || ||<bgcolor=#cd7f32> 동메달 ||<bgcolor=#ffffff> 1989 마티니 ||<bgcolor=#ffffff> 52kg || ||<-3><bgcolor=#131230> {{{#white 아시안 게임}}} || ||<bgcolor=#ffd700> 금메달 ||<bgcolor=#ffffff>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1990 베이징]] ||<bgcolor=#ffffff> 52kg || [각주] [[분류:레슬링 선수]][[분류:해남군 출신 인물]][[분류:1968년 출생]][[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병역특례자/레슬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