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파일:Anton Ferdinand.jpg|width=100%]] || || 이름 || 앤턴 줄리언 퍼디낸드 (Anton Julian Ferdinand) || || 생년월일 || 1985년 2월 18일 || || 국적 || [[잉글랜드]] || || 포지션 || 수비수 || || 키 || 183cm || || 프로 입단 || 2003년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입단 || || 소속팀 ||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2003~2008) [br] [[선더랜드 AFC]] (2008~2011) [br] [[퀸즈 파크 레인저스]] (2011~2013) [br] [[부르사스포르]] (2013, 임대) [br] [[안탈리아스포르]] (2013~2014) [br][[폴리스 유나이티드]] (2014)[br] [[레딩 FC]] (2014~2016) [br] [[사우스엔드 유나이티드 FC]] (2016~2018)[br][[세인트 미렌]] (2018~2019) || || 가족 || 형 [[리오 퍼디난드]] || [목차] == 소개 == [[잉글랜드]] 출신의 [[축구]] 선수. 대인방어 능력이 대단이 뛰어나며, 활동적인 수비를 펼치며 공격수를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여기에 [[단신]]임에도 불구하고 공중볼 처리 능력이 뛰어나며, 세트플레이시 득점력도 뛰어나 공격 가담 능력도 출중하다. 게다가 빠르고 민첩하며, 파울 숫자가 굉장히 적고 롱패싱 능력이 대단하다. 또 중앙수비수와 오른족 윙백을 자유롭게 도맡아 볼 수 있는데다 리더십 역시 뛰어나 어린 나이임에도 곧잘 수비라인을 통솔한다. [[세인트 루시아]]계 [[혼혈]]이며, [[리오 퍼디난드]]의 동생으로 유명하다. 이들 형제의 사촌 형 [[레스 퍼디난드]]도 축구선수 였었다. 포지션은 리오, 안톤 형제와는 달리 스트라이커, 레스는 현역시절 [[QPR]]과 [[토트넘]]에서 활약했었고, [[유로 1996]]과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 잉글랜드 대표팀 선수로 뛰기도 했었다. 은퇴 후 친정팀인 토트넘과 QPR에서 코치 생활을 하다 현재는 QPR의 풋볼 디렉터[* 단장]을 맡고 있다. 레스 외에도 케인 퍼디난드 라는 사촌이 풋볼 리그 1 소속인 피터보로 유나이티드[* [[알렉스 퍼거슨]]의 아들인 대런 퍼거슨이 감독을 했었던 팀이다.]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 포지션은 미드필더고,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아일랜드 청소년 대표팀]]에서 뛰었으나 국가대표팀에는 소집 되지 못하고 있다. == 클럽 == 2002년 형과 마찬가지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유스에 소속되어 성장했으며, 2003-04 시즌 개막전인 [[프레스턴 노스 엔드]]와의 경기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시즌 종료때까지 리그에서 20경기를 뛰었으며, 2004-05 시즌에는 팀의 핵심 선수로 중용되며 [[왓포드 FC]]와의 리그 최종전에서 데뷔 이후 첫 골을 터뜨리며 팀이 2:1로 승리하는 데 일조하는 등 팀이 6위를 기록해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다. 이후 팀은 [[입스위치 타운]]과 프레스턴 노스 엔드를 차례로 꺾고 2시즌만에 1부 리그로의 승격에 성공했으며, 좋은 활약에 힘입어 퍼디난드는 2005년 7월 구단과의 계약을 3년 연장했다. 팀 입단 이후 프리미어리그에서 맞는 첫 시즌인 2005-06 시즌에는 2006년 1월 [[풀럼 FC]]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어 팀의 2:1 승리를 견인하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이달의 선수'에 선정되어 [[FC 바르셀로나]]의 관심을 받기도 했으며,[* 참고로 리오 퍼디난드와 안톤 퍼디난드는 '이달의 선수상' 제정 이후 상을 받은 최초의 형제로 기록되었다.][* 또한 2001년 2월 [[스튜어트 피어스]] 이후 5년만에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소속 선수가 '이달의 선수상'을 받는 역사를 세웠다.] 퍼디난드의 활약에 힘입어 팀 또한 [[FA컵(잉글랜드)|FA컵]] 결승전에 진출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이후 [[리버풀 FC]]와의 결승전에서 3:3 무승부를 이룬 뒤 [[승부차기]]까지 갔는데, 퍼디난드는 팀의 세 번째 키커로 나왔다가 실축해 결국 리버풀이 3:1로 승리를 거두었다. 2006-07 시즌에도 좋은 활약을 계속 이어갔으나,[* 중간에 잠시 [[슬럼프]]가 있었으나 [[마이클 조던]]과 함께 식사를 하며 탈출했다고 한다.] 2007년 3월 [[할머니]]의 병문안을 핑계로 팀을 떠나 [[미국]] [[나이트 클럽]]에서 [[생일]][[파티]]를 즐긴 일이 들통나 2주치 주급을 벌금으로 냈다. 팀은 시즌이 시작되면서 [[에게르트 마그누손]]가 새로운 구단주로 취임하면서 [[카를로스 테베스]]와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등을 영입하며 좋은 성적이 기대되었으나 새로 영입한 선수들이 부진한 활약을 펼치며 강등권까지 떨어졌고, 결국 팀의 감독을 [[앨런 파듀]]에서 [[앨런 커비쉴리]]로 교체하는 강수를 둬 간신히 잔류에 성공했다. 2007-08 시즌이 시작되기 전 4백만 [[파운드]]에 [[토트넘 핫스퍼]]로의 이적설이 돌았으나 팀에 잔류했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기록하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하지만 2008년 4월 [[볼턴 원더러스]]와의 경기에서 경기 시작 직후 [[햄스트링]] 부상을 입었으며, 결국 시즌 아웃 상태가 되었다. 부상에서 회복하는 사이 [[제임스 톰킨스]]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자 시즌 종료 이후 구단과의 재계약을 거부하며 다른 팀으로의 이적을 추진했으며, 이번에는 6백만 파운드로 이적료를 올려 토트넘 핫스퍼가 다시 영입을 시도했으나 결국 8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제시한 [[선더랜드 AFC]]와 4년 계약에 합의하였다. 이적 이후 맞이한 2008-09 시즌에는 [[로이 킨]] 감독의 전술에 잘 녹아들었으며, 같이 중앙 수비진을 구성한 [[대니 콜린스]]와의 호흡도 척척 들어맞았다. 시즌 도중 팀의 감독이 로이 킨에서 [[리키 사브라지아]]로 바뀐 이후에도 주전 자리를 공고히 했으며, [[엘 하지 디우프]]와 다투며 디우프를 [[블랙번 로버스]]로 이적시키기도 했다.(...) 2009-10 시즌을 앞두고 팀의 주장인 [[딘 화이트헤드]]가 [[스토크 시티]]로 이적하자 [[나이론 노소르시]]가 화이트헤드의 번호인 6번을 이어받으며 퍼디난드는 노소르시의 번호인 5번을 배정받았다. 하지만 2009년 10월에는 이전에 동점골을 넣어 승리에 공헌한 바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경기 종료 직전 [[자책골]]을 기록해 팀은 2:2 무승부를 거두게 되었으며, 팀에 새로운 중앙 수비수인 [[존 멘사]]가 영입된 이후에는 [[스티브 브루스]] 감독의 눈에 들지 못하며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 한때는 존 멘사가 퍼디난드의 5번을 달았으나, 이후 29번을 달게 되었다.] 2010-11 시즌에는 [[아스날 FC]]와의 경기에서 공을 잘못 걷어내는 실수를 저지르며 [[세스크 파브레가스]]에게 골을 내주며 팀이 1:1로 비기게 되었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는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의 슈팅이 자신을 맞고 골대 안으로 들어가 팀이 0:2로 패하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악연을 이어갔다. 2011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팀이 [[존 오셔]]와 [[웨스 브라운]]을 영입하자 이적시장 마지막 날에 1백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퀸즈 파크 레인저스]]로 팀을 옮겼으며, 9월 12일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렀다. 데뷔 이후 [[대니 가비동]]과 호흡을 맞추면서 빠르게 주전 자리를 차지했다. 2013년 1월 [[부르사스포르]]로 임대되어 7경기를 출장하였다. 2013년 8월 14일 터키의 안탈리아스포르와 3년 계약을 맺고 이적하였으나 불과 3경기 출장에 그쳤다. 2014년 6월 18일 [[태국 프리미어 리그]] 폴리스 유나이티드와 2년계약을 맺었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안톤은 부인하였다. 8월 11일 [[레딩 FC]]와 2년계약을 맺었다. == 사건 사고 == 10월 23일 [[첼시 FC]]와의 경기 도중 [[존 테리]]가 자신에게 [[인종차별]]성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전에는 2006년에 있었던 [[독일]]과의 UEFA U-21 유럽선수권대회 예선 경기에서 [[마이카 리차즈]]와 함께 독일 선수들에게 [[원숭이]]라고 불렸다는 의혹도 있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날조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두 선수간에 이 발언이 오갔기 때문이다. 안톤 퍼디난드:"나더러 black c*nt라고 했어." 존 테리:"내가 언제 Black C*nt라고 했어." 심지어 퍼디난드는 2012년 7월에 있는 재판에서 인종차별 사건이 일어난지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당사자도 모르는 걸 뭘 뻘짓을 해~~] 결국 11월 1일 [[경찰]] 당국이 수사를 하는 상황까지 번졌으며, 며칠 뒤에는 이 사건과 관련해 퍼디난드가 [[살해]] [[협박]] [[편지]]를 받기도 했다. 12월에는 검찰에서 다음 해 2월 1일에 존 테리를 [[기소]]한다고 밝혔으며, 2012년 1월 28일에는 퍼디난드가 [[총알]]이 담긴 [[소포]]를 배달받으며 다시 한 번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결국 존 테리는 이 사건으로 인해 [[잉글랜드]] [[축협]]에 의해 국가대표팀의 주장 완장을 박탈당했으며, 이 결정에 반발한 국가대표팀 감독 [[파비오 카펠로]]는 결국 감독을 사임하기에 이르렀다. [[FIFA]] [[회장]] [[제프 블라터]]는 이 사건에 대해 "인종차별을 해도 경기장에서 악수하고 화해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허튼-- 말을 했다가 안톤 퍼디난드의 형 [[리오 퍼디난드]]와 설전을 벌이기도 했으며, [[영국]] [[정부]]는 이 사건과 [[파트리스 에브라]]와 [[루이스 수아레스]] 간의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며 축구에서의 인종 차별 철폐에 대한 [[회담]]을 개최할 예정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 국가대표 == 2004년 U-21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으며, 8월 17일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2007년 [[UEFA]] U-21 유럽선수권대회 당시 국가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네덜란드]]와의 준결승전에서 교체 투입되었다. 경기에서 팀은 1:1로 무승부를 이룬 뒤 [[승부차기]]까지 갔는데, 12:12까지 가는 기록적인 상황에서 퍼디난드가 키커로 나서 실축해 네덜란드가 13:12로 승리하게 되었다. == 여담 == [[마이클 잭슨]]의 광팬이라고 하며, 잭슨이 사망했을 당시에는 추모 [[세리머니]]까지 계획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후 골을 못 넣었다.-- [[지동원]]이 [[선덜랜드]]로 이적할 당시 잠시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는데, 당시 [[지동원]]이 좋은 선수라는 칭찬을 해서 [[한국]] 축구팬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은 적도 있다. [각주] [[분류:1985년 출생]] [[분류:잉글랜드의 축구선수]] [[분류: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은퇴, 이적]] [[분류:선덜랜드 AFC/은퇴, 이적]] [[분류:부르사스포르/은퇴, 이적]] [[분류:레딩 FC/은퇴, 이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