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소방공무원, rd1=안종석(소방공무원))] [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등장인물, rd1=안종석(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 성명 ||안종석(安鍾奭) || || 생몰 ||? ~ ? || || [[출생지]] ||[[평안남도]] [[대흥군]] 이남면 가덕리 || || 사망지 ||미상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안종석은 평안남도 대흥군 이남면 가덕리 출신이지만 출생년도는 알 수 없다. 그는 1908년 음력 4월경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성명회(聲明會)에 가입했고, 1910년 음력 8월 총재 [[유인석]]의 명에 따라 일본관헌의 실정 등을 정탐을 목적으로 국내의 원산에 잠입했다. 이후 1914년 음력 정월에 간도 국자가에서 공교회(孔敎會)에 가입하여 활동하던 중 성명회원 이성림(李聲林) 등을 만나 국권회복의 방안에 대하여 논의했다. 1915년 음력 7월엔 길림성 동년현 민배식 등과 함께 창의소를 설치하여 사령관을 지냈고, 그해 음력 10월 부하 70명을 거느리고 두만강 부근으로 전진하다 러시아의 [[카자크]] 기병대에게 격파되기도 했다. 그는 1916년 2월 중국 관헌에 체포되었지만 이듬해 4월 함흥지방법원 검사국에서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었고, 1919년에는 의병대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서울 주재 러시아 총영사인 4등관 류트샤가 도쿄 주재 러시아 대사에게 보낸 1917년 4월 20일자 보고서에 그의 행적에 대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http://contents.nahf.or.kr/item/item.do?levelId=kifr.d_0004_0210_0530#self|#]]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안종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흥군 출신 인물]][[분류:건국훈장 애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