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rokps.or.kr/356.jpg|width=150]] 安龍大. 일본식 이름: 安田龍大 1913년 1월 13일 ~ 1999년 5월 6일 [[대한민국]]의 전 법조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정치인]]이다. 호는 남사(南史)이다. 1913년 [[경상북도]] [[경주시|경주군]]에서 태어났다. [[일본]] [[주오대학]]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1941년 일본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였다. 그리고 [[경상남도]] [[사천시|사천]][[군수]], [[함안군]]수, [[창원시|창원]]군수, 거창군수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인 1948년 [[대한민국 국회]] 내무위원회(현 [[안전행정위원회]]) 전문위원, 국무원 사무처 인사국 인사과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경주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일민구락부 [[김철(1898)|김철]]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김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경주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당선 후 자유당에 복당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월성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김종해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민주공화당]]에 입당하였으나 [[제6대 국회의원 선거]] [[공천]]에서 [[이상무(정치인)|이상무]]에 밀려 탈락하자 민주공화당을 탈당하고 [[민정당]]에 입당하였다. 1965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1967년)|신민당]]에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황한수에 밀려 탈락하였다. 1972년 승소액 횡령 사건으로 기소되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관료 부문에 수록되었다. [[분류:친일반민족행위자/문화]][[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친일단체]][[분류:경주시 출신 인물]][[분류:주오대학 출신]][[분류:1913년 출생]][[분류:1999년 사망]][[분류:고등문관시험 출신]][[분류:사천군수]][[분류:함안군수]][[분류:창원군수]][[분류:거창군수]][[분류:제2대 국회의원]][[분류:제4대 국회의원]][[분류:무소속 국회의원]][[분류:자유당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