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able align=right><bgcolor=white> [[파일:안옥희.jpg|width=300px]] || || 성명 ||안옥희(安玉熙) || || 본관 ||[[순흥 안씨]] || || 생몰 ||[[1863년]] [[9월 16일]] ~ [[1939년]] [[3월 16일]] || || [[출생지]] ||[[경기도]] 광주유수부 도척면[br](현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궁평리)[* [[순흥 안씨]] 집성촌이다.] || || 사망지 ||[[경기도]] [[광주시|광주군]]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안옥희는 1863년 9월 16일 경기도 광주유수부 도척면(현 광주시 도척면 궁평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895년 경기도 이천에서 [[김하락]], 민승천(閔承天) 등이 의병을 일으킬 때 참여했고, 이천 의병대가 남한산성으로 이동할 때 종사관(從事官)으로 임명되어 남한산성 공방전에 참가했다. 남한산성이 함락된 후 영남으로 이동해 경북 의성을 거쳐 경주에 이르렀다. 경주에서는 현지 의병대와 연합하여 새로운 의병대의 좌익장(左翼將)으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의병대가 갈수록 위기에 빠지자, 결국 [[구연영]]의 인솔에 따라 김하락의 본진을 이탈하여 광주로 돌아갔다. 이후 1897년경 [[구연영]]의 전도를 받아들여 기독교에 귀의했고 상동교회에서 목회활동에 전념했다. 그러면서도 구연영과 함께 구국회(救國會)를 조직하여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했지만 구연영이 1907년 8월 24일 일본군에게 총살되자 그의 무덤을 장만한 뒤 구국회 활동을 그만뒀다. 이후 궁평교회에서 권사를 맡아 목회 활동에 전념하다가 1939년 3월 1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안옥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조선 의병장]][[분류:일제강점기의 개신교 신자]][[분류:광주시 출신 인물]][[분류:순흥 안씨]][[분류:1863년 출생]][[분류:1939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