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고구려 국왕)] ||<-3><bgcolor=#000000><tablealign=right><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fff,#191919><tablewidth=450> '''[[고구려/왕사|{{{#gold 보덕국 초대 국왕}}}]]'''[br]{{{+1 {{{#gold '''報德王 | 보덕왕'''}}}}}} || ||<:><black> '''{{{#gold 시호}}}''' ||<-2><colbgcolor=#fff,#1F2023><(> 보덕왕(報德王) || ||<:><black> '''{{{#gold 봉국}}}''' ||<-2><(> [[보덕국]] || ||<:><black> '''{{{#gold 관등}}}''' ||<-2><(> [[소판]](蘇判) || ||<:><black> '''{{{#gold 성씨}}}''' ||<-2><(> 고(高)(?) · 연(淵)(?) / 김(金) || ||<:><black> '''{{{#gold 휘}}}''' ||<-2><(> 안승(安勝) / 안순(安舜) || ||<:><black> '''{{{#gold 왕비}}}''' ||<-2><(> 왕비 김씨(金氏) || ||<:><black> '''{{{#gold 부친}}}''' ||<-2><(> [[보장왕]](寶臧王)(?) / [[연정토]](淵淨土)(?) || ||<:><black> '''{{{#gold 조카}}}''' ||<-2><(> 대문(大文) || ||<:><black> '''{{{#gold 생몰년도}}}''' ||<:> 음력 ||<(> ? ~ ? || ||<:><black> '''{{{#gold 재위기간}}}''' ||<:>음력 ||<(> 669년 ~ 670년(부흥운동)[br]674년 ~ 683년(보덕국왕) || [목차] [clearfix] == 개요 == [[고구려]]의 [[왕족]]으로 [[고구려부흥운동]] 때 [[옹립]]된 고구려의 비정통 [[국왕]]이자 [[보덕국]]의 국왕이다.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 [[검모잠]] 등 고구려 [[유민]]들에 의해 고구려 국왕으로 추대되었고 지금의 [[황해도]] 지역에서 고구려 부흥 운동을 주도했으나 [[당나라]]의 군대가 대대적인 토벌 작전을 시작하면서 결국 실패했다. 이후에 남쪽 [[신라]]로 달아나서 보덕국의 국왕이 되었고 나중에는 신라의 [[귀족]]이 되면서 완전히 신라에 편입되었다. == 생애 == === 출신 === [[보장왕]]의 [[서자]] 또는 외손자.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서는 보장왕의 서자 안승(安舜)이라 기록되어 있고 신라본기에서는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의 아들 안승(安舜)이라 기록되었으며 [[신당서]] 고려전에서는 보장왕의 외손자 안순(安舜)이라 기록되었다. 그래서 [[이름]]도 고안승(보장왕의 서자라는 추정) 혹은 연안승(연정토의 아들이자 보장왕의 외손이라는 추정)으로 여러 서적에서 뒤섞여서 쓰인다. 임기환은 "보장왕의 외손자로써 연정토의 아들, 둘 다 맞다"라고 보고 있다.[* 출처: 임기환, <고구려 정치사 연구>] 안승이 고구려 멸망 후 부흥 세력의 왕으로 추대된 점 등으로 볼 때 고구려인들이 보기에도 당나라에 끌려간 보장왕 대신 [[왕위]]를 이을만한 [[지위]]를 가진 인물, 즉 보장왕의 아들이라는 설이 더 우세하다.[* [[동사강목]]의 저자 [[안정복]]도 삼국사기에 [[문무왕]]이 안승을 보덕국왕에 봉한 글에서 "선왕(보장왕)의 정당한 후사(正嗣)는 오직 그대 뿐이니 제사 맡을 자 또한 그대 말고 누가 있겠는가"라고 언급한 부분을 인용하면서 "외손자라면 정당한 후사라느니 하는 말을 쓸 수 있겠느냐"고 지적하고 안승을 보장왕의 서자로 보았다. 다만 이건 다분히 [[유교]]적인 시각이고 당장 [[고려]] 시대까지만 해도 외손도 직계로 쳐줬다. [[조선]] 전기까지도 딸이 [[제사]]를 지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다만 이건 제사나 친척관계의 친소에 있어서의 경우고 삼국시대부터 이미 부계 혈통 계승이 명확히 확립되어 있어서 무언가의 계승에 있어서는 형제상속이든 부자상속이든 무조건 부계가 우선시 되었다.] 이성 승계 사례가 있기는 있었던 신라와 달리 고구려는 안승이 연씨 부계였다면 안승이 수많은 고씨들을 제치고 국왕으로 옹립될 수 있었을지가 의문이다.[* 만약 안승이 연씨 부계였다면 국왕보다는 차라리 연개소문과 같은 실권자나 모계 혈통으로 옹립되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하지만 보장왕 직계가 다 끌려가서 왕위를 이을 자가 없었다면 도피에 성공했던 외손이 가장 [[왕통]]과 가까우므로 이상하지만은 않다. 고구려 고씨가 아예 남아있지 않았나?에 대해서는 안승과 함께 활동한 고연무(高延武) 등 분명 고씨가 남아있었다.[* 현재도 남아있는 [[고(성씨)|횡성 고씨]]의 경우 보장왕 직계를 자칭하긴 했지만 그게 정말로 맞다고 해도 전란을 피해 아예 꽁꽁 숨어있던 일족으로 보인다.] 하지만 [[고자(고구려)#s-2.1|고밀]](高密)의 경우처럼 사성 고씨가 존재했음이 확인되며 고구려 유민들의 이름만 봐도 정말로 개나소나 고씨인 경우가 많아서 고씨라고 해도 다 왕족이었던 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승의 [[출생]]에 대한 기록은 산만한 점이 많아서 1가지만 믿기는 힘들지만 현대인이 안승의 가계에 대해 어떻게 해석하는지와 별개로 당시 고구려인들은 안승을 고구려왕이 되기에 충분한 [[혈통]]을 가진 사람으로 보았음은 확실하다. 고구려 유민들이 스스로 안승을 고구려왕으로 추대했다는 점에서 왕위 계승권이 분명히 있는 고구려의 마지막 왕인 보장왕의 가계에 속하는 인물이라는 것은 [[정설]]이다. 생몰년은 불명이나 670년 검모잠을 [[살해]]했고 671년 7월 [[나당전쟁]] 중 [[설인귀]]가 문무왕에게 보낸 [[편지]]에서 안승이 나이가 어리다고 하고 있으므로 이 때 10대 후반~30대 정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 [[고구려부흥운동]] === 668년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평양성]]이 함락되고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 안승은 서해의 사야도(史冶島)[* 현재 [[인천광역시]]의 [[소야도]].]에 피신하였다. 그러던 중에 670년 고구려 유민들을 규합하여 당나라 [[관리]]를 살해하고 남쪽으로 이동해 온 검모잠이 안승을 발견하여 [[한성#s-1.2|한성]](漢城)[* [[한강]] 변의 [[서울]]이 아니라 오늘날의 [[황해도]] [[재령군]] 부근의 땅.]에서 안승을 왕으로 추대하였다. === 보덕국왕 === [[문무왕]]은 [[신라]]로 투항한 안승과 고구려 유민들을 옛 [[백제]] 땅인 서쪽 금마저(현재의 [[전라북도]] [[익산시]])에 머물게 하였다. 왜 하필 고구려 고토와 가까운 곳도 아닌 백제 영역인지에 대해서는 고구려 유민의 보덕국으로 백제 유민들을 견제하기 위한 신라의 [[이이제이]]라는 것도 있고, 혹은 7세기 고구려가 [[기자(중국)|기자신]]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과 기자의 후손(으로 당시에 알려져 있었던) [[준왕]]이 [[위만]]에게 찬탈당한 뒤 평양을 떠나 마한 땅으로 남하해서 한왕이 되었다는 전승에 근거해서 이에 연결시켜 고구려 피난민들에게 익산지역의 땅을 내준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현대에는 [[고고학]]의 발달로 실제 마한의 중심지가 경기도 광주나 충청남도 천안이라고 추정하고 있지만 고고학이 없던 조선시대까지는 준왕이 남하해 자리잡은 곳이 익산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674년에는 안승을 [[보덕국]]의 왕인 '보덕국왕(報德國王)'에 봉하였다. 이어서 680년에는 [[문무왕]]으로부터 [[금(원소)|금]]과 [[은]]으로 만든 그릇과 [[비단]] 1백 단을 예물로 받고 문무왕의 여동생의 딸과 결혼하였으며[* 혹은 잡찬(迊湌) 김의관(金義官)의 딸과 결혼하였다고도 기록되었다. 만약 두 기록이 동시에 참이라면, 김의관이 문무왕의 여동생과 혼인했다는 얘기가 된다. 김의관은 [[원성왕]]의 증조부이다.] 교서를 받았다. 안승은 이후 10여 년간 보덕국을 통치했는데, 비록 괴뢰국으로 평가받지만, 태대형(太大兄) 같은 [[고구려]] 시절의 관직체계를 그대로 이식해 사용하고 [[일본]]에 고려의 이름으로 사신을 보내는 등 어느 정도 국가 체계를 갖추고 통치가 이뤄졌다. === 이후 === [[나당전쟁]]이 [[신라]]의 승리로 끝나고 [[한반도]]가 어느 정도 안정된 683년 신라 [[신문왕]]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소판(蘇判)[* 신라 17관등 3번째 [[잡찬]]과 동일.] [[벼슬]]을 얻었으며 [[김씨]](金氏) 성을 [[사성정책|사성]]받고 진골 [[귀족]]이 되었다. 받은 소판직 자체가 [[6두품]] 이하는 오를 수 없는 [[진골]]의 관등이다.[* 폐쇄적인 [[골품제]]를 시행했던 신라 [[역사]]상 외부 인사를 진골 취급해 준 것은 [[김유신]]을 비롯한 [[금관국]] 왕족,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 안승 이렇게 3번뿐이었다. 명목상으로는 신라 김씨 [[왕족]]도 똑같은 진골이기 때문에 외부인인 안승이 진골이 된 것은 신라치고는 굉장히 높은 대우를 한 것이다.] 이로써 안승은 신라의 중앙 귀족이 되어 [[경주시|경주]]의 큰 저택에서 머물게 되었고 [[익산시|익산]]에 있는 [[보덕국]]과는 격리되어 버렸다. 보덕국 설치를 허락했던 [[문무왕]]이 어떤 의도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들인 신문왕은 [[고구려]] 유민들을 흡수하기 위해 만들었던 보덕국을 이 시점에서 서서히 없애버릴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신문왕은 즉위하자마자 [[김흠돌]], [[김군관]] 등 [[통일]] 전쟁 [[공신]] 귀족들을 [[숙청]]하고 [[녹읍]] 폐지로 [[왕권]]을 강화했다. 이렇듯 결정과 시행이 확실한 철혈 [[군주]] 신문왕에게 신라의 통일성을 해치는 구 시대의 잔재인 보덕국도 마찬가지로 제거 대상이었음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684년 보덕국에서 안승의 [[조카]]였던 장군 [[대문]](大文)은 안승이 신라 귀족으로 [[편입]]된데에 불만을 품고 신라 조정을 상대로 모반하다가 대문은 곧 [[처형]]되었고 고구려 유민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사건이 터졌다. 이에 김영윤 [[열전]]에 따르면 [[반굴]]의 아들 [[김영윤]]을 황금서당(黃衿誓幢) 보기감(步騎監)으로 삼아 토벌군으로 보냈는데 황금서당은 옛 고구려인들로 구성된 부대였으니 고구려인의 반란을 고구려인으로 진압한 셈. 이후 함께 반란을 일으켰던 이들은 대문이 죽은 이후로도 [[관리]]들을 살해하며 읍성을 점거하였는데 김영윤은 전사했지만 곧 [[토벌]]되었다. 이로써 보덕국은 완전히 소멸되었으며 신라는 보덕국이 있었던 지역에 금마군을 설치하여 신라의 [[행정]] 구역에 완전히 편입하였다. 보덕국 사람들이 [[익산]]에서 싸울 때 [[경주]]에서 살고 있었던 안승이 어떻게 살았는가는 기록이 없어 자세히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김씨로서 진골로 편입되어 중앙 귀족 수준으로 살았거나 혹은 이미 죽지 않았다면 반란에 연루되어 처벌되었다고 추정된다. 고구려 왕족의 [[후손]]이라 자처하는 [[고(성씨)#s-2.1|횡성 고씨]] 족보에 따르면 안승의 형 [[인승]]이 [[횡성군|횡성]]에 살기 시작하면서 [[고(성씨)#s-2.1|횡성 고씨]]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다만 숭조 [[사업]]으로 작성된 [[족보]]의 기록이기에 신빙성은 떨어진다.[* [[강원도]] 횡성군의 명칭의 기원이 고구려 명칭의 횡청현이었음을 생각한다면 고구려계 인물들이 강원도 지방에 남아있었을 [[확률]]은 있다. 그것이 안승의 형인지는 불명이다.] == 평가 == 안승에 대한 평가는 좀 애매한 편이다. 결과적으로는 [[당나라]]에 제대로 저항하지도 않고 [[신라]]로 달아나려고 했던 점과 함께 [[고구려부흥운동]]을 주도하였던 [[검모잠]]을 살해했던 일 등, 유능한 신하를 죽인 것도 모자라 보덕국도 결국 반란으로 망해버리는 결과로 인하여 조금 부정적으로 평가받는 편이다. 심지어 "고구려 유민들의 편입을 위하여 신라 조정에 의해 이용만 당했다"면서 박하게 평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검모잠]]을 죽이고 고구려 부흥을 망친 꼭두각시 군주"로 모는 [[고구려]] 사관론자들은 물론 [[신라]] 사관론자들도, 대문의 난을 일으킨 그 안승 일당들을 역적으로 꼽는다. [[백제]] 사관론자들 입장에서도 안승 일당들이 백제 유민들을 밀어냈다고 욕한다. 박하게 평가한 원조가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인데, 안승을 부각시킨 것은 크게 2가지로 추정한다. 첫째는 [[고구려]]의 혈통적 정통성을 가지고 [[신라]]에 흡수된 안승의 존재로 통일신라론의 명분을 쌓기 위해서다. 고구려는 엄연히 [[고씨]] 왕조국가였고 현대인이 어떻게 생각하든 당시에는 대씨 같은 생판 다른 성씨보다는 보장왕 직계로 보이는 안승이 가장 높은 고구려의 정통성을 가진 사람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연정토 가계라는 다른 기록도 있지만, 어쨌든 당시 고구려인들이 안승을 고구려 왕으로 추대할만한 사람이라고 인증했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정통성을 인정받은 사람인 건 확실하다.] 둘째는 고구려 폄하용인데 그래서 [[검모잠]] 참살과 덤으로 안승 일당들의 반란도 부각시켰다. 하지만 정작 안승을 받아들인 것도 [[문무왕]]이기 때문에, 더 이상 부각하다가는 문무왕의 영웅화에도 금이 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국사기]]를 보게 되면 [[신문왕]]의 태자 때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문무왕과 엄청난 갈등을 빚은 것으로 추측되는 것이, 이후 문무왕 이후 신문왕이 철혈군주가 되어 문무왕이 만든 보덕국마저 토벌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자면 이미 일부 [[고구려]] 부흥군의 힘으로는 [[당나라]] 군대에 맞설 수가 없는 형편이었으니, 당나라에 투항하기보단 [[신라]]에 의탁하고자 하였던 안승의 선택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평도 만만치 않은 편이다. 고구려 왕족인 안승이 신라 편을 든 덕에 고구려 유민들이 신라에 협조하여 [[나당전쟁]]에서 신라가 이기는 데 어느정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특히 안승을 따라 [[신라]]로 투항한 [[고구려]]계 귀족들이 신라로부터 [[6두품]]을 하사받고, 신라 귀족 사회에 살아갔다는 점을 상기해보자면 안승이라는 사람 본인의 외교적인 안목은 그리 나쁘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점은 [[경순왕]]이 처신을 잘 해서 신라계 가문이 고려시대와 그 이후까지 번성한 것과 비슷하다. 이들 고구려계 귀족들은 나중에 [[후삼국시대]]에 [[후고구려]]의 중심 세력이 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한국 역사상 한 인물을 통해 이렇게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이 일어난 사례는 [[후삼국시대]] 호족 세력의 등장 이전 그야말로 처음 있는 일이다. 또 그만큼 가장 미스테리하고 어찌보면 가장 믿음없는 인물이 안승이기도 하고, 옛 고구려인과 신라인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된 인물의 중심이 안승이고 당시 옛 고구려, 백제인들과 나당연합이다. 후삼국시대 이전만 놓고 보면 역사상 가장 의심스럽고 흥미로운 시대와 인물인 셈이다. 어찌보면 드라마에 주역으로 나올 인물이기도 하지만, 사료가 지나치게 부족하므로 가상시대의 가상인물로나 가능할 것이다.[* 대조영에서는 검모잠과 같이 고구려 부흥에 힘쓰지만 현실적으로 신라에 기댄 것에 불과하기에 검모잠을 죽이고 신라에 투항한다. 검모잠이 그의 비겁함을 일갈하자 흔들리는 말투로 원한 자리가 아니고 자신에게는 버겁다고 토로한다.] == 같이보기 == * [[고구려부흥운동]] * [[보덕국]] * [[고(성씨)#s-2.1|횡성 고씨]] == 둘러보기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5><:><bgcolor=#000000> [[삼족오|[[파일:고구려 삼족오.png|width=50]]]] [br] '''{{{+1 [[고구려/왕사|{{{#ffffff 고구려의 역대 국왕}}}]]}}}''' || ||<width=30%><:><|2> 28대 [[보장왕]] 고보장 ||<:><|2> {{{+1 ←}}} ||<:><width=30%><bgcolor=#000000><|2> '''{{{#white 고안승}}}''' ||<|2> {{{+1 →}}} ||<width=30%> 부흥운동 종결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5><:><bgcolor=#000000> [[삼족오|[[파일:고구려 삼족오.png|width=50]]]] [br] '''{{{+1 [[보덕국|{{{#ffffff 보덕국의 역대 국왕}}}]]}}}''' || ||<width=30%><:><|2> 신규 책봉 ||<:><|2> {{{+1 ←}}} ||<:><width=30%><bgcolor=#000000><|2> '''{{{#white 초대 보덕왕 고안승}}}''' ||<|2> {{{+1 →}}} ||<width=30%> 봉국 폐지 || [각주] [[분류:생년 미상]][[분류:몰년 미상]][[분류:아시아의 왕]][[분류:한국의 군주]][[분류:고구려의 왕자]][[분류:진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