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조선의 별궁과 궁가)] ||<table width=700> [[파일:안동별궁 현재.png|width=100%]] || || [[충청남도]] [[부여군]]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경내에[br]옮겨 [[복원]]된 안동별궁의 현광루와 경연당. || [목차] == 개요 == 安洞別宮.--절대 이 [[안동시|安'''東''']]이 아니다!-- [[한성부]] 북부 안국방,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3길 4 - 구 [[풍문고등학교|풍문여자고등학교]] 자리[* 2017년 3월에 [[강남구]] [[자곡로]] 152로 이전]에 있던 [[조선시대]]의 [[행궁|별궁]]이다. 옛 명칭으로는 '동별궁'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안국동별궁(安國洞別宮)'이라고도 한다. == 역사 == 원래 이 자리는 [[명당]]으로 유명해 [[조선시대|조선 초기]]부터 [[왕실]]에서 사용한 땅으로 [[세종(조선)|세종]] 때에는 [[왕자]] [[영응대군]]의 [[저택|대저택]]이 있었고 1471년([[성종(조선)|성종]] 2년)부터는 연경궁(延慶宮)으로 불리며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이 살기도 했다. 월산대군이 그 집 안에 [[정자]]를 하나 세웠는데 성종이 직접 풍월정(風月亭)이란 이름을 내려줄 정도로 관심을 가졌다. 또한 [[인조]] 때에는 [[드라마]] [[화정]]으로 유명한 --[[이연희]]--[[정명공주]]와 그 남편 --[[서강준]]--영안위 홍주원[* [[혜경궁 홍씨]]의 6대조.]의 [[집]]이 되어 크게 넓어졌는데 이 무렵 헐었던 [[인경궁]]의 남은 자재 약 170칸분을 이용하였으며 이 후 홍주원의 [[자손]]들이 크게 번창하여 더욱 명당으로 여겨졌다. [[숙종(조선)|숙종]] 때에는 이를 사들여 막내 아들 [[연령군]]의 [[집]]으로 삼기도 하였다.[* 원래 [[연잉군]]이 갖고 싶어했는데 [[숙종(조선)|숙종]]이 --씹고-- 무시하고 [[연령군]]에게 주었다고.(...) --연잉군 [[지못미]]--] [[19세기]] 이후 임금이었던 [[헌종(조선)|헌종]]과 [[철종(조선)|철종]]이 [[후손|후사]]가 없었던 반면, [[적장자]]를 얻어 매우 기뻤던 [[고종(대한제국)|고종]]은 [[순종(대한제국)|원자]]의 [[왕세자]] 책봉 및 가례소를 마련하기 위해 이 곳에 1879년(고종 16년) 11월에 본격적으로 왕실 직속 별궁으로 공사를 시작하였다. 1881년(고종 18년) 완공하였고 안국방 소안동에 있다 하여 안국동 별궁이라 하였다. 일상에서는 줄임말인 안동별궁으로 많이 불렀다. 1882년([[고종(대한제국)|고종]] 19년) 2월, [[순종(대한제국)|왕세자 이척(순종)]]과 [[순명효황후|세자빈 민씨(순명효황후)]]의 [[결혼|가례]]를 여기서 올렸다. 하지만 순명효황후는 1904년([[광무]] 8년) [[사망]]하고 1906년(광무 10년) 황태자 이척은 [[순정효황후|새 황태자비 윤씨(순정효황후)]]와 두 번째 가례를 치뤘는데 그때 가례도감이 설치된 곳 역시 안동별궁이었다. ||<table width=600>[[파일:475e36fed1027.jpg|width=100%]]|| || 일제강점기 안동별궁 전경을 찍은 사진 || 1910년 [[경술국치]] 이후에는 잠시 [[상궁]]들이 모여 살기도 했다가 1936년 큰 길에 면해 있는 768평이 최창학[* [[일제강점기]] [[광산|광산업]]으로 [[조선]]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된 친일부호. [[김구]] 선생에게 [[경교장]]을 마련 한 그 인물 맞다.]에게 15만원에 낙찰되었다. 1937년에는 [[명성황후]]의 먼 일족이자 [[휘문고등학교]] 설립자 [[민영휘]]의 [[아내]] 안유풍이 당시 [[돈]] 30만환으로 부지 4천여평과 함께 부속 건물을 매입한 뒤, 이 자리에 경성휘문소학교를 세웠다. 7년 뒤 [[증손|증손자]] 민덕기가 폐교된 다른 여학교의 학생들을 모아 증조모의 이름 '풍' 자와 휘문의 '문'을 따 풍문여학교로 개편했고 [[8.15 광복]]후 풍문여중과 [[풍문고등학교|풍문여고]]로 나누었다. 1992년 풍문여중은 폐교되었고[[https://ko.wikipedia.org/wiki/풍문고등학교|#]], 풍문여고는 계속 그 자리에 있다가 2017년 [[강남구]] [[자곡로]]로 이전한 뒤 [[풍문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서울특별시|서울시]]에서 [[부지]]를 매입해 공예박물관을 만들고 있다. ||<table width=600>[[파일:근대 안동별궁건물.jpg|width=100%]]|| || [[일제강점기]] [[학교]] [[건물]]로 쓰일 당시의 안동별궁 현광루 || == 건물들의 수난 == ||<table width=600>[[파일:안국동별궁(풍문여고)copy.jpg|width=100%]]|| || 풍문여고 내에 있던 안동별궁 건물 || 주요 건물들은 [[풍문여고]]가 들어선 뒤에도 한 동안 대부분 제 자리에 남아있었다. 그러나 [[학교]]의 부지확보와 [[건물]] 신축을 위해 남아있던 정화당과 경연당, 그리고 현광루를 해체해 다른 곳으로 매각했다. ||<table width=600>[[파일:정화당.jpg|width=100%]]|| || 정화당 || 정화당은 [[서울특별시]] [[강북구]] [[우이동]]으로 이전되었다. [[군사정권]]이 들어선 뒤 [[요정]] '선운각'이 되었고[*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애인]] 장정이가 [[마담]]으로 있었다는 곳. [[정인숙 사건]]과 관련 된 그 곳 맞다.] [[김성곤]] [[쌍용그룹]] [[회장]]이 별장으로 쓰기도 했다. 1975년 김성곤 사후 '쌍용중앙연수원'이 되었다가 1997년 [[동양화재]]로 매각돼 현재 [[메리츠화재]] 연수원으로 존속중이다. ||<table width=600>[[파일:11908-1-6831.gif|width=100%]]|| || 한양컨트리클럽에 있을 당시 현광루와 경연당 || 현광루와 경연당은 풍문학원 이사장 [[민병도]][* [[민영휘]]의 [[손자]]. 민덕기의 [[숙부]].]의 [[개인]] [[별장]]과 자신이 [[회장]]으로 있었던 [[골프장]]인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한양컨트리클럽 신코스 18번 홀로 옮겨져 [[수영장]] 관련 건물로 사용되다가 2006년 무렵 존재가 확인되었고 이후 [[문화재청]]에서 매입 후 [[복원]]하여 현재는 [[충청남도]] [[부여군]]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경내에 있다. ||<table width=600>[[파일:정관루.jpg|width=100%]]|| || 정관루 || 그리고 민병도가 설립한 또 다른 관광지 [[남이섬]] 유원지 동쪽 끝에 있는 ‘정관루’라는 목조 건물이 안동별궁의 건물 일부라는 설이 있다. 남이섬 유원지 측은 이 건물이 1965년 남이섬을 구매 할 무렵 [[서울]]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하는데, 2006년 당시 강우현 남이섬 사장은 [[풍문여고]]에서 옮겨왔다는 얘기를 들었다했지만, 당시 [[공사]]에 참여한 한 [[목수]]는 [[포도청]] [[건물]]을 옮겨와 지었다고 주장해 아직 확실하게 결론짓지는 못한 상황이다. 그나마 앞서 말한 [[건물]]들은 [[사정]]이 나은 편인데 《[[고종실록]]》에도 존재가 확인된 '정상루(定祥樓)'의 경우 어디 있는 지 확인이 안 된다. 만약 [[남이섬]] 정관루가 만약 안동별궁 건물이 맞다면, 정상루가 옮겨와 정관루가 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분류:조선의 별궁과 궁가]][[분류:조선/건축]][[분류:궁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