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align=right><:> [[파일:external/img.ichannela.com/46703960.3-46703956.3.jpg|rev=1]]|| || '''이름''' ||<(> 안도현(安度昡) || ||<|2> '''출생''' ||<(> [[1961년]] [[12월 15일]] ([age(1961-12-15)]세) ||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황지리 소망실마을[[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943460.html|#]] || || '''학력''' ||안동 풍산초등학교 → [[대구아양초등학교]][br][[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br][[대건고등학교]][br]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사[br][[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박사 || || '''직업''' ||<(> [[교수]], [[시인(문학)|시인]] || || '''소속''' ||<(> 前 이리중학교 국어교사 [br] 前 장수산서고등학교 국어교사 [br] 現 [[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정교수 [br] 現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전북지역위원회 상임공동대표 [br] 現 한국작가회의 소통위원회 위원장 [br] 現 [[단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부교수 || || '''대표작''' ||<(> <연어>[* <연어 이야기>의 전작으로, <연어 이야기>의 주인공의 부모인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br] <연어 이야기>[* <연어>의 속편으로, <연어>의 주인공인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의 자식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br] <연탄 한 장> [br]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br] <외로울 때는 외로워하자> [br] <스며드는 것> || || '''등단''' ||<(> [[1981년]] [[매일신문]] <낙동강> || || '''수상''' ||<(> [[1996년]] 시와시학상 젊은 시인상 [br] [[1998년]] 소월시문학상 대상 [br] [[2002년]] 노작문학상 [br] [[2005년]] 이수문학상 [br] [[2007년]] 윤동주문학상 문학부문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시인(문학)|시인]]. == 생애 == 1961년 12월 15일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황지리에서 아버지 안오성과 어머니 임홍교 사이의 4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http://www.maniadb.com/artist/106614?o=d&d=s|#]] 첫 돌이 지난 후 [[안동시]] [[풍산읍]]으로 이주하여 안동 풍산초등학교를 다녔다.[[http://www.y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863|#]] 그후 [[대구아양초등학교]]로 전학하여 졸업하고,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와 [[대건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등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대구광역시]]에서 보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원광대학교]]를 거쳐 [[단국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낙동강' 이 당선되면서 데뷔하였고 1985년 [[전라북도]] [[익산시]]에 있는 이리중학교 국어교사로 활동하며 중학교 국어과목을 가르쳤으나 학교 측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회원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해임되었다. 1994년 [[전라북도]] [[장수군]]에 있는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복직하여 고교 국어과목을 가르쳤으나 1997년에 자진으로 퇴임하고 전업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1996년 시와 시학 젊은 시인상, 1998년 소월 시 문학상, 2000년 원광문학상, 2002년 노작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임하며 대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작가활동을 병행했다. 2012년 6월 26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교과서 출판사들에게 16종 중학교 교과서에서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도종환]] 의원의 시와 산문들을 모두 빼라고 권고하였는데 그때 트위터에, “현역 야당 국회의원이라는 이유로 작가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다면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 저는 더욱 자격이 없습니다. 저는 문재인 대선 예비후보를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는 정치행위를 했으므로 현재 교과서에 실려 있거나 앞으로 실릴 예정인 저의 작품 모두를 추방해주기 바랍니다.”라고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7092158145&code=940401|요구했다.]] 이어 “만약 도종환 시인이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에 배정이 되었다면? 시인의 시를 국어교과서에서 빼라고 지시한 [[이주호]] 장관 취소하느라고 허둥지둥 정신없었을 테죠”라고 덧붙였다. 2013년 초에 현 정부에 대한 반대로 절필을 선언했다. 대선이 끝난 직후 검찰의 소환을 받았는데, 본인의 생각에 따르면 아무리 생각해도 야당을 지지한 것에 대한 보복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어 이런 환경에서는 시를 쓸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2017년 4월 말에 다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3&oid=028&aid=0002362770|시를 발표]]했다. 2019년 2월부로 우석대를 떠나 대학원 시절 몸담던 단국대로 부임하였다. 2019년 10월 7일 황석영, 공지영 작가 등과 함께 조국 법무부 장관을 지지하고 검찰 개혁의 완수를 촉구하는 ‘2019 작가 선언’을 발표했다.[[https://m.news.naver.com/memoRankingRead.nhn?oid=081&aid=0003034091&sid1=102&date=2019100716|#]] 이러한 맥락에서 2020년 초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내인 정경심 교수가 동생에게 강남에 빌딩을 사는 것이 목적이라는 문자가 공개되어 비난을 받자 자신도 강남에 건물을 소유한 건물주로서 편하게 살고 싶은데, 이런 꿈을 꾸는 것조차 허용될 수 없는 거냐며 정경심 교수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https://news.mt.co.kr/mtview.php?no=2020020308302012690|#]] [[진중권]] 전 교수는 이에 대해 연탄재를 밟지 말라는 시를 쓴 안도현 시인이 이제는 연탄재를 본 적도 없을 강남 사모님을 위해 노래한다며 자신의 칼럼에서 비판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469&aid=0000464144|#]] 2020년 초에 안도현 교수는 전주를 떠나 고향인 [[예천군]]으로 이동했다. 2020년 2월 안도현 교수 송별회에 송하진 전라북도지사가 깜짝 방문하는 등 안 교수를 기억하는 전북인들이 많이 참석했다. 12월 17일 ‘검찰 권력 해체를 촉구하는 작가 성명’을 공동 발표한 [[권여선]], [[김용택]], [[박민규]], [[장석남]], [[하성란]], [[함민복]], [[현기영]] 등 작가 654명에 이름을 올렸다. 공동성명에서 [[공수처]]의 조속한 설치,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퇴 등을 요구했다.[[https://news.v.daum.net/v/20201218104536936?x_trkm=t|#]] == 작품 ==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 - >-반쯤 깨진 연탄 >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나를 끝 닿는데 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위에 >지금은 인정머리없는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랫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 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 오르기를 >나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하니 손을 뻗어 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한 잠 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만져도 보고 싶은 것이다 > >안도현의 [[시]], '반쯤 깨진 연탄' >우리 연어들이 알을 낳는 게 중요하다는 것은 나도 알아. 하지만 알을 낳고 못 낳고가 아니라 얼마나 건강하고 좋은 알을 낳는가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우리가 쉬운 길을 택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새끼들도 쉬운 길로만 가려고 할 것이고, 곧 거기에 익숙해지고 말 거야. 그러나 우리가 폭포를 뛰어넘는다면, 그 뛰어넘는 순간의 고통과 환희를 훗날 알을 깨고 나올 우리 새끼들에게 고스란히 넘겨 주게 되지 않을까? 우리들이 지금 여기서 보내고 있는 한순간, 한순간이 먼 훗날 우리 새끼들의 뼈와 살이 되고 옹골진 삶이 되는 건 아닐까? 우리가 쉬운 길 대신에 폭포라는 어려운 길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뿐이야. >-안도현, <연어>中 >가을 햇볕 한마당 고추 말리는 마을 지나가면 가슴이 뛴다. 아가야 저렇듯 맵게 살아야 한다. >-안도현, <가을 햇볕>中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 못 든 이 창문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안도현, <우리가 눈발이라면>中 >[[간장게장|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 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안도현, <스며드는 것>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시로는 [[연탄]]을 소재로 한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로 시작하는 그것 맞다. 패러디도 많다. 가령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먼지난다" 같은. 다만 본인은 세간의 그런 인식을 좋아하지만은 않는다. 본인 왈, "나는 시를 이 정도밖에 못 쓰는 사람이 아니다!"(...). 안도현 시인의 강연에 따르자면 이 시는 가을에 대해 학생들에게 시를 쓰라고 하면 맨날 낙엽, 단풍, 추수같은 주제들만 잡는데에 대해 가을에 제일 많이 모이는건 연탄재 아니냐며 지은 시라고 한다...], [[간장게장]]을 소재로 한 '스며드는 것' ,연어의 성장을 주제로 한 '연어'등이 있다. '스며드는 것'의 경우 인터넷에서 알려지면서 '감정 이입 때문에 게장을 먹기 힘들어졌다'라는 하소연(?)도 나온다. 이에 대해 작가는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10502.html#csidx5edd2f04359d4c3b9a80c515253f8f5|'그런 감정이 들면 내 함정에 걸린 것'이라고 말하며, 본인은 여전히 게장을 잘 먹는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와 진짜 나쁘다-- '우리가 눈발이라면'은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 비상교육 중학교 국어 1 3단원, 7차 교육과정 기준으로는 1학년 2학기 4단원 시의 세계 소단원 (4)],중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 천재교육 박영목 교과서 더 읽어보기], 2012년 고1 6월 학평 10~13번 문제 지문에도 등장할 정도로 유명하다. == 기타 == [[서정윤]]과 [[대건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다. 두 시인 모두 "태동기"라는 교내 문학 동아리[* 안도현은 12대 서정윤은 8대.]에서 활동했다. 둘은 동아리에서 전설로 회자된다. [[트위터]]를 자주 하며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편. [[막걸리]]를 좋아하며 막걸리에 대한 에세이는 막걸리 예찬 수준. 전주 중화산동 막걸리집에는 안도현 단골 술집도 있다. 그리고 과거 우석대 문창과 교수 시절 우석대 문창과 홍보 팸플릿에 '교수님들과 막걸리를 마실 수 있는 학과' 라고 당당히 써놓았다(...) '''[[자장면]]'''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짜장면]]'''이라고 쓴다. 지금은 자장면이나 짜장면이나 복수 표준어로 인정되지만 과거엔 자장면만 표준어로 인정받았다. 그는 이것에 반발해 맞춤법 때문에 어린 시절 자신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짜장면을 자장면이라고 쓸 수 없다고 짜장면으로 쓰기를 고집했다. [[백석(시인)|백석]] 시인을 가장 좋아한다고 하며 그가 좋아하는 마음을 담아 쓴 책이 바로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1723940|백석 평전]]이다. 아내 박성란은 2001년에 아들과 딸을 데리고 [[산시성(산서성)|산시성]] [[타이위안]]에서 2년간 살아간 경험을 토대로 [[http://m.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blio.bid=133180|중국행]]이라는 책을 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자신의 이름이 등장하자 '내 이름이 없으면 어떡하나 하는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살펴보았다. 다행이다'라고 [[http://www.ikoreadail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9562|비꼬았다.]] [[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교사]][[분류:문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1961년 출생]][[분류:예천군 출신 인물]] [[분류:대건고등학교 출신]][[분류:원광대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