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width=100%><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000><bgcolor=#000000> '''{{{#efd88f 안네 소피 무터의 주요 수상 및 경력}}}''' || ||<bgcolor=#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include(틀: 역대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 수상자)] ------- [include(틀:그라모폰 명예의 전당 헌액자)] ------- [include(틀: 역대 폴라음악상 수상자)] ------- [include(틀:도이치 그라모폰 소속 아티스트)] }}} || ||<-2><table width=450><table align=right> [[파일:external/www.violinist.com/anne-sophie-mutter-2013.jpg|width=100%]] || || 이름 ||안네 소피 무터(안네 조피 무터) || || 이름(원어) ||Anne-Sophie Mutter || || 출생지 ||[[라인펠덴]], [[서독]] || || 생년월일 ||[[1963년]] [[6월 29일]] || [목차] == 소개 == 독일의 바이올리니스트. '''현존하는 바이올린계의 [[여제]] 중 한명''' [youtube(0RKmN3gOZ3E)] 비발디 <4계> 중 '여름'편의 3악장, '겨울'편의 2악장 등을 주제로 한 연주 영상 == 주요 활동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강력한 푸쉬를 받으며 데뷔했다. 남들은 몇년씩 기다려서 협연하는 카라얀과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3번/5번을 협연한 것이 데뷔 음반이었으니 그야말로 전폭적인 관심과 지지를 받은 셈. [[파일:external/static.bz-berlin.de/mutter-karajan_443171a-1024x576.jpg]] (소녀 시절, 카라얀과 함께 1978년으로 추정된다.) 비록 카라얀은 1989년에 타계했지만, 이후에도 세계 정상급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명성을 날렸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기까지는 [[정경화]], 미도리 등과 함께 여성 바이올리스트를 대표했던 인물이다. 연주를 들어보면 소리에서부터 '''나 바이올린 잘함'''이 묻어나온다. 자신감 있고 섬세한 연주. [[파일:external/ecx.images-amazon.com/51N7ExvdDjL.jpg]] [[파일:external/img.maniadb.com/328584_1_f.jpg]] [[파일:external/img.maniadb.com/330820_1_f.jpg]] [[파일:external/99bf9eef9a4c3d3545711b4d9dc893c9d71b4a21f6e2095392ff66cf7949206e.jpg]] [[파일:external/ecx.images-amazon.com/615MBZDZW5L.jpg]] 음반은 [[도이치 그라모폰]]을 통해서 발매중이다. 웬만한 패션모델 뺨칠 정도의 미모 덕분인지, 리즈시절인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 발매된 음반들을 보면, 흡사 패션지 표지가 연상될 정도. 그만큼 본인의 탁월한 연주 실력과 더불어 스타성이 대단함을 보여주는 것. [[파일:external/resources0.news.com.au/572468-74b61d7e-8259-11e3-becd-783f573ae36f.jpg]] 50대의 나이로 접어든 현재의 모습. 1997년부터는 자신의 이름을 딴 '안네 소피 무터 재단'을 세워 세계 각국의 차세대 연주자들을 발굴, 후원하고 있다. 수혜자 가운데는 한국인 최예은(1988년생)도 있다. 2018년 12월 7일, 소속사인 [[도이치 그라모폰]] 창립 120주년 기념의 일환으로 열린 서울 시향과의 협연을 위해 예술의 전당에서 연주했다. 이듬해인 2019년 11월, 아시아 순회 공연의 일환으로 다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베토벤 소나타 등을 연주했다. 2020년 3월말 코로나19 확진으로 [[자가격리]], 치료를 받았으며, 본인의 SNS를 통한 온라인 연주로 공백을 메우기도 했다. 이후 퇴원한 듯. [[분류:고전 음악 연주자]][[분류:독일의 문화]][[분류:바이올리니스트]][[분류:독일의 음악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