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당 6도호부)] [[파일:안남도호부.png]] [목차] == 개요 == 679년, [[당고종]]은 [[참파]], 입읍 그리고 진랍 등 남만족의 침입을 막기위해 현 베트남 [[하노이]]에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를 설치하였다, 안남도호부는 13주 39현 32기미주로 구성되어있다. == 역사 == 안남도호부는 교주총관부(交州總管府)의 전신으로 621년, [[당고조]] 때 교지부에 설치됐다. 651년, 당나라는 안남도독부(安南都督府)로 개칭했다. 722년, 매숙란[[https://vi.wikipedia.org/wiki/Mai_H%E1%BA%AFc_%C4%90%E1%BA%BF|梅叔鸞]]의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다. 이 반란군은 참파와 캄보디아인의 진랍(眞臘)과도 제휴하여 도호부를 점령하고 마이 툭 로안은 흑제(黑帝)라는 칭호로 불리며 지배체제를 갖추었다. 당은 [[환관]]을 지휘관으로 파견하여 진압에 나섰지만 저항이 격렬하여 현지에서 병사를 모집해 가까스로 반란을 진압했다. 757년, 당숙종은 진남도호부(鎮南都護府)로 승격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768년, 당대종이 진남도호부를 안남도호부로 개칭했다.[* '안남'은 여기서 비롯된 단어이다.] [[당선종]] 연간 안남도호부에 이탁(李琢)이란 자가 안남경략사(安南經略使)로 배치받았다. 이탁은 탐욕스러운 사람이었던데다가 [[가렴주구|가혹하게 세금을 걷었기 때문에]] 이민족들이 [[버틸 수가 없다|버티지 못했다]]. 862년, 이민족은 남조와 결집해 당의 안남도호부를 공격했고 성이 무너지지 않자 남조는 재차 공격해 안남도호부를 함락시켰다. 그러나 얼마지나지 않아 [[형남]]의 군사들이 교주성을 포위 공격하여 회복했고 863년, 당은 안남도호부를 재건했다. 이후에도 남조의 침입은 계속되었고, 880년, 안남도호부에서 군대가 반란을 일으키자 절도사는 성을 빠져나와 도망쳤으며, 옹관(邕管)에 파견되어 그 수비를 담당했던 제도(諸道)의 병력가운데 일부는 스스로 귀환했다. 안남도호부는 함락되었고 당은 당시 [[황소의 난]]으로 변방을 지킬 여력이 없어 결국 폐지하고 월남에서 철수하였다. == 부속 관할 == === 주(州) === 교주(交州), 애주(愛州)[* 교주의 남쪽, 청화(清化)], 환주(驩州), 봉주(峰州), 육주(陸州), 연주(演州), 장주(長州), 군주(郡州), 양주(諒州), 무안주(武安州), 당림주(唐林州), 무정주(武定州), 공주(貢州) === 현(縣) === 송평현(宋平縣), 남정현(南定縣), 태평현(太平縣), 교지현(交趾縣), 주연현(硃鳶縣), 용편현(龍編縣), 평도현(平道縣), 무평현(武平縣), 구진현(九真縣), 안순현(安順縣), 숭평현(崇平縣), 군영현(軍寧縣), 일남현(日南縣), 장림현(長林縣), 구덕현(九德縣), 포양현(浦陽縣), 월상현(越裳縣), 회환현(懷驩縣), 가녕현(嘉寧縣), 승화현(承化縣), 신창현(新昌縣), 숭산현(嵩山縣), 주녹현(珠綠縣), 오뢰현(烏雷縣), 화청현(華清縣), 영해현(寧海縣), 충의현(忠義縣), 회환현(懷驩縣), 기념현(龍池縣), 사농현(思農縣), 무랑현(武郎縣), 무용현(武容縣), 무금현(武金縣), 문양현(文陽縣), 동살현(銅蔡縣), 장산현(長山縣), 기상현(其常縣), 무안현(武安縣), 임강현(臨江縣), 유원현(柔遠縣), 당림현(唐林縣), 복록현(福祿縣), 무아현(武峨縣), 염여현(如馬縣), 무의현(武義縣), 무이현(武夷縣), 무연현(武緣縣), 무로현(武勞縣), 양산현(梁山縣) === 기미주(羈縻州) === [[분류:수당시대]][[분류:베트남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