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909년 출생]] [[분류:1990년 사망]] [[분류:아르헨티나의 축구선수]] [[분류:아르헨티나의 축구감독]] [[분류:이탈리아의 축구감독]] [[분류:선수 겸 감독/축구]] [[분류:CA 인데펜디엔테/은퇴, 이적]] [[분류:이탈리아의 축구선수]] [[분류: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은퇴, 이적]] [[분류:노바라 칼초/은퇴, 이적]] [[분류:코센차 칼초/은퇴, 이적]] [[분류:코센차 칼초/역대 감독]] [[분류:아르헨티나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분류: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 참가 선수]] [[분류:이탈리아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분류: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 참가 선수]] ||<tablewidth=100%><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2c2d32><tablebgcolor=#ffffff,#191919>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ABDDED 15%, #FFFFFF 15%, #FFFFFF 30%, #ABDDED 30%, #ABDDED 70%, #FFFFFF 70%, #FFFFFF 85%, #ABDDED 85%, #ABDDED );" {{{#002643 '''아틸리오 데마리아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bgcolor=#0066aa> '''{{{#ffffff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역대 주장}}}''' || ||<width=30%> [[주세페 메아차]] [br](1931~1940) || {{{+1 →}}} ||<width=30%><bgcolor=#000000> '''{{{#ffffff 아틸리오 데마리아}}}'''[br]'''{{{#ffffff (1940~1943)}}}''' || {{{+1 →}}} ||<width=30%> 알도 캄파텔리[br](1943~1950) || ----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ABDDED 15%, #FFFFFF 15%, #FFFFFF 30%, #ABDDED 30%, #ABDDED 70%, #FFFFFF 70%, #FFFFFF 85%, #ABDDED 85%, #ABDDED );" {{{#002643 '''아틸리오 데마리아의 수상 이력'''}}}}}}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tablealign=left><tablebgcolor=#ffffff,#191919>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9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3D7CBA 0%, #0755A1 30%, #0755A1 70%, #3D7CBA);" {{{#ffffff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ffffff 1934}}}]]'''}}}}}} || ---- }}} || ---- ||<-2><tablealign=right><tablewidth=400> [[파일:Attilio Demaria.jpg|width=100%]] || || 이름 || 아틸리오 호세 데마리아[br] (Atilio José Demaria) || || 생년월일 || [[1909년]] [[3월 19일]] || || 사망년월일 || [[1990년]] [[11월 11일]] || || 국적 || [[아르헨티나]] || || 출신지 || [[부에노스 아이레스]] || || 포지션 || 아웃사이드 레프트, 스트라이커 || || 신체조건 || 176cm / 76kg || || 등번호 || -[*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 || || 소속팀 || 에스투디안틸 포르테뇨 (1926-1931)[br][[클루브 데 힘나시아 이 에스그리마 라플라타]] (1931)[br][[암브로시아나 인테르]] (1931-1936)[br][[CA 인데펜디엔테]] (1936)[br]에스투디안틸 포르테뇨 (1937)[br][[암브로시아나 인테르]] (1938-1943)[br]노바라 (1944)[br]AC 레냐노 (1945-1946)[br]코센사 칼초 (1946-1948) || || 국가대표 || 3경기 / 0골([[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아르헨티나]] / 1930-1931)[br]13경기 / 3골([[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탈리아]] / 1932-1940) || || 감독 || AC 레냐노 (1945-1946)[br]코센사 칼초 (1946-1948)[br][[클루브 데 힘나시아 이 에스그리마 라플라타]] (1951)[br]알미란테 브라운 (1973) || [목차] == 개요 == [[아르헨티나]]의 [[축구선수]] 출신 [[코치(스포츠)|감독]]. [[1973년]]에 알미란테 브라운 감독을 맡았다, == 생애 == === 클럽 === 데마리아의 데뷔는 1926년에 이루어졌다. 데뷔전에서 그는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출전하였고 첫 시즌에는 3경기에 출전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이듬해인 1927년에서야 그는 데뷔 골을 신고하였고 27경기에 출전, 총 8골을 넣었다. 1928년 이후에는 스트라이커로도 활동하면서 팀 내 최다인 35경기에 출전하는 등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하였고 1929년에는 팀 내 최다 득점자로도 자리매김하였다. 그러면서 기량을 계속 꾸준히 발전시켜나갔고 힘나시아 라 플라타 클럽의 투어에 참가하여 그들의 이목 역시 끌기에 이른다. 결국 1931년 시즌에는 힘나시아 클럽에서 새로운 시작을 노렸지만 여기에서 그는 단 한 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하였고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그는 [[우루과이]]의 전설적인 공격수 [[엑토르 스카로네]]와 같이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암브로시아나 인테르]]에 합류하였고 성공적으로 팀에 녹아들어갔다. 첫 시즌은 스트라이커로 뛰면서 준수한 활약을 보였고, 두 번째 시즌에는 13골을 넣으며 [[세리에 A|이탈리아]]에서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꾸준히 활약을 하던 데마리아는 1935-36 시즌을 끝내고 [[이탈리아]]를 떠나 [[아르헨티나]]로 돌아갔고 [[CA 인데펜디엔테]]와 데뷔팀 포르테뇨에서 1년을 보냈다. 1년의 외도 이후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온 데마리아. 그리고 1939-40년 시즌에서야 처음으로 [[스쿠데토]]를 차지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그 시즌에 부상으로 활약이 정체된 [[주세페 메아차]]와 [[조반니 페라리]]를 대체하며 12골을 넣는 활약을 보였다. 1940-41 시즌부터는 암브로시아나 인테르의 주장 자리를 맡았고 1943년까지 활약하였다. 그 이후에는 노바라 등 군소클럽에서 활약하였고 1948년에 은퇴하였다.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국가]][[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대표]] === 데마리아는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두 번의]]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월드컵]]에서 국가를 바꿔 출전했다. 하지만 월드컵에는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8강 이후#s-1.5|단 한 경기]]밖에 출전하지는 못했는데 똑같이 국가를 바꾸면서 두 번 다 주전으로 활동한 [[루이스 몬티|몬티]]와는 사뭇 다른 모양새다. 주로 친선경기에서 활약했으며 가끔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뛰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 플레이 스타일 & 평가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암브로시아나 인테르]]에서는 주로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활약했지만 아르헨티나에서는 아웃사이드 라이트나 스트라이커로 활약하기도 했다. 기술적으로 완성된 선수라는 평이 있었다. 그의 다리는 짧고 굽었지만 정밀한 패스를 뿌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좋은 드리블 기술과 빠른 반사 신경을 가지고 있었다. 정확한 슈팅 역시 가지고 있어서 당시 주요 공격수였던 [[주세페 메아차]]와 좋은 콤비 플레이를 이루었다고 한다. == 뒷이야기 == * 그의 동생인 펠릭스 역시 암브로시아나 인테르 등에서 활약한 축구선수였다. * 우승복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선수였는데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아르헨티나]]에서 포르테뇨는 데마리아가 힘나시아로 나가자마자 바로 역사상 첫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세리에 A|이탈리아]]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데마리아가 아르헨티나에 가 있는 1년 동안 [[스쿠데토]]를 차지한 적이 있었다. 1939-40시즌의 우승이 아니었으면 데마리아는 [[콩라인|콩만 깔 뻔했다]]. == 수상 == === 클럽 === * [[세리에 A]] 우승 1회: 1939-40([[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암브로시아나 인테르]]) * [[세리에 A]] 준우승 4회: 1932-33, 1933-34, 1934-35, 1940-41([[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암브로시아나 인테르]]) === 국가대표 === ==== 아르헨티나 ==== * [[FIFA 월드컵|월드컵]] 준우승 1회: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1930]] ==== 이탈리아 ==== * [[FIFA 월드컵|월드컵]] 우승 1회: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1934]] * 중유럽 인터내셔날 컵 우승 1회: 193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