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요 == [[1934년]], [[장로회]]와 [[감리회]]의 신학자들이 개신교 선교 50주년[* 선교사 [[호러스 언더우드]], [[헨리 아펜젤러]], 메리 스크랜턴 등이 조선에 입국한 [[1885년]]을 한국 개신교 선교의 시작으로 본다.]을 기념해, 당시 미국의 유명한 기독교 출판사였던 아빙돈[* Abingdon Press. 미국연합감리교회의 출판사.]의 ‘아빙돈 단권 성경 주석’[* 감리회의 류형기 목사가 편집/발행하였다. 고등비평을 지지한 주석이었다.] 을 번역한 일이 있었다. 이 책은 다소 진보적인 고등비평을 수용했지만 당시로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성경 주석서였다. 그런데 한국의 [[장로회]][* [[길선주]] 목사와 황해노회의 헌의에 의해 문제가 제기되었다.] 가 이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는 당시 이 책이 한국 장로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기 때문인데, 아빙돈 주석은 [[성서무오설]] 기반의 근본주의 성서 이해를 전적으로 수용한 한국 장로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 책을 이단서로 규정한 것이다. 이 번역에 참여한 이들은 감리회의 유형기 양주삼 변홍규, 장로회의 [[김관식]], [[김재준]], [[송창근]], [[조희염]], [[채필근]], [[한경직]] 등 이었다. [[박형룡]] 목사는 아빙돈 성경주석의 구매, 열람, 참고를 금지시켰고, 이 책의 번역에 참여한 장로회 소속 목사들을 심문하면서 그들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일부는 사과했지만 송창근, 김재준 박사 등이 이를 거절하였다. [[감리회]]에서는 문제시되지 않았으나 장로회에서는 총회적 사건으로 비화되었다. 이에 [[장로회]]는 김재준, 송창근 목사를 제명하였고[* 이들은 총회의 징계로 더이상 "신학지남"에 글을 기고할 수 없었다.], [[예수교장로회|대한예수교장로회]]와 [[한국기독교장로회]]가 분열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신학을 가르치는 신학교인 [[장로회신학대학교]]와 [[총신대학교]]가 설립되는 배경이 된다. ] [[분류:기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