阿非知 생몰년도 미상. [목차] == 개요 == [[백제]]의 기술자. [[황룡사]] 찰주본기[* [[남북국 시대]]인 872년 제작된 금문.]에 따르면 아비(阿非)로 기록되어 있다. 643년 [[신라]]가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우는데 참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비지는 신라의 요청을 수락한 백제가 파견한 기술자로 645년부터 소장(小匠) 200여명을 거느리고 완공한 것으로 되어있다. == 설화 == [[삼국유사]]에서 아비지가 처음 찰주를 세운 날 밤, 그는 [[백제]]가 멸망하는 꿈을 꾸고 일손을 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나더니 한 노승과 장사가 금당문에서 나와 기둥을 세우고 홀연히 사라지는 것을 목격한 아비지는 후회하면서 탑을 완공시켰다고 한다. == 의문점 == 그런데 이 당시 [[백제]]와 [[신라]]는 철전지 원수사이였다. 아무리 [[자장(신라)|자장]] 법사의 요청을 받아들였다지만, 불과 1년 전 신라는 백제에게 미후성, 대야성 등 40여성을 뺏기고 이듬해 당항성이 위협당하는 등 수세에 몰려있었다. 다만 삼국이 서로 사이가 나빴다고 해도 [[불교]]라는 종교적 가치는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이 시대에 유독 [[승려]]가 여러 나라를 오가며 여행, 유학하는 것은 자유로운 편이었다. 그래서 승려가 [[스파이]]나 정보통으로 이용되는 경우도 많았다.] 군사시설도 아닌 불교 시설물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목적으로 백제에서 장인 파견을 허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당장 현대 남북한도 사이가 나쁘지만 개성 유적지를 공동으로 발굴하거나 스포츠의 [[A매치]]같은 비정치적 문화교류는 허용하는 경우도 있는 것과 같다. 물론 황룡사 목탑은 백제를 제압하겠다는 속뜻이 있었다지만 아비지가 꿈에서 보았다는 걸 봐선 처음엔 신라가 숨겨서 몰랐다고 볼 여지도 있다. 한편 [[삼국유사]]와 달리 [[황룡사]] 찰주본기에선 백제에 기술자를 '''요청한 기록이 없다.''' 이로 보아 아비지는 백제에서 신라로 끌려온 포로였을 수 있지만 기록이 거의 없어 확실치 않다. [각주] [[분류:생년 미상]][[분류:몰년 미상]][[분류:백제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