Ἀρχοντόπουλοι Archontopouloi [목차] == 개요 == >(아르콘토풀레라는)이름을 통해 그들은 부모들의 희생을 기렸고, 맹렬하게 정의를 향해 나아갔으며, 그들의 결단력과 힘이 필요한 순간에 용기를 내어 자신들을 증명했다. -안나 콤니니 '''[[아콘]]의 자제들'''[* 고대 그리스의 아르콘이 아닌 귀족이라는 의미이다.] 이라는 뜻의 아르콘토풀레는 [[동로마 제국]]의 중앙군(타그마) 부대 중 하나였다. 고아들과 귀족 자제들을 모집해 만든 부대였으며 대부분 [[카타프락토이]] 중장기병으로 복무했다. === 창설 === 기존의 중앙 야전군이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큰 타격을 입고, [[디라히온 공방전]]에서 완전히 궤멸된 이후 로마인들은 만성적인 병력 부족에 시달렸다. 제국의 전략은 각 지역의 [[테마 제도]]를 통한 방어로 적의 진격을 막고, 기병 비율이 높은 중앙 야전군이 수도 인근에서 출동해 적을 요격한 뒤 적지까지 반격하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두 참사 이후 그런 역할을 해 줄수 있는 부대가 남아있지 않게 된 것이다. 이 혼란을 수습한 [[알렉시오스 1세]] 콤니노스 황제는 중앙군 복원의 신호탄으로 '''아르콘토풀레'''라는 새 부대를 모집했다. 하지만 아르콘토풀레가 꼭 직업적 중앙군을 건설하는 역할만을 한 것은 아니었다. 투르크의 침공으로 아나톨리아 대부분을 잃은 상황에서 많은 수의 피난민들이 고향을 버리고 제국 서부로 도망쳐왔다. 이 과정에서 수 많은 전쟁고아들과 근거지를 잃은 군사귀족들이 생겨났고, [* 콤니노스 황가 자신들도 [[파플라고니아]]의 영지를 잃은 상태였다.] 이 아르콘토풀레는 그러한 고아들과 귀족 자제들을 위한 일종의 후견 시스템이기도 했다. 군사 분야에 자질이 있는 고아들이나, 귀족의 자제들을 후견하는 시스템은 이미 고대 [[아테네]]시절부터 [[로마]]로 전파되어 중세시기 로마인들에게로 이어져 성행하고 있었는데, 이 제도를 국가적으로 행한 게 바로 아르콘토풀레였던 것. 대략 2,000 ~ 3,000명으로 이루어진 이들은 대부분 [[콘스탄티노플]]에 주둔하며 장교 과정을 교육받았다. 안나 콤니니는 이들이 '수염이 거의 나지 않은 상태'였다고 설명했으므로 16세 이전에 모집했음이 거의 확실할 것이다. 이들은 필요할때마다 수백명의 '반돈' 단위로 나뉘어서 전선에 투입되었지만, [[레부니온 전투]]나 [[베로이아 전투]]처럼 위급한 상황에선 전 타그마가 한번에 출동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 의미의 분화 === >폐하는 그들(아르콘토풀레)의 전사에 슬픔을 숨기지 못했다. 서글픈 눈물속에서, 폐하는 전사자들에게 돌아오라고 소리쳤다. 마치 그들이 막 여정을 떠난 사람들인것처럼. 알렉시오스 1세 이후로 온전히 [[아르콘토풀레]]라고 따로 지칭되는 야전군 부대는 언급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들이 해체된 것은 전혀 아니었다. 서 아나톨리아 전선이 안정되고 부대를 이룰만큼 많은 수의 전쟁고아가 생기지 않으면서, 전쟁 고아로 이루어진 엘리트 기병대라는 기능과, 귀족 자제들을 모아 군문에 오르게 하는 기능이 분화된 이유에서 하나의 '타그마'로 존재하지 않게 된 것 뿐이었다. 옛 의미의 '아르콘토풀레' 는 황궁에 거주하는 주요 귀족의 자제들이 모여 군사적 기능을 하는 궁정직 [* 하지만 타그마와 같은 전투부대는 아니었다.], 즉 '이키이(oikoi)' 내의 호칭을 뜻하는 단어중 하나로 분화되었다. 이들은 아르콘토풀레라는 말 뜻대로, 황제를 보필하는 귀족들이었으므로, 황제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또 다른 하나는 콘스탄티노플에 주둔하며 [[프로니아 제도]]를 통해 봉급을 받는 엘리트 장교들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들은 중앙군 부대인 '타그마'로써의 역할을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도 하나의 '타그마'로 존재한 것은 아니고. 프로니아를 받는 하급 귀족이나 평민 직업군인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 활약 === 이들은 [[디라히온 공방전]]의 참패 이후 제국 북방을 휩쓸던 [[페체네그]]와 [[보고밀파]]의 반란 진압에 상당수가 동원된 것으로 추정된다. [[타티키오스]]가 알렉시우스 황제의 명을 받아 수백명의 아르콘토풀레 기병대를 이끌고 수십곳의 페체네그 촌락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레부니온 전투]]에 집결했다는 기록도 있다. 니코메디아에 주둔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볼때, 메가스 둑스인 [[요안니스 두카스]]가 [[1차 십자군]] 직후에 이끈 재수복전쟁에도 참전했을 가능성이 높다. [* 물론 2000명이 넘는 중장기병이 콘스탄티노플에 주둔해있을 만한 막사가 없었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다(옛 타그마들도 그랬다).] 이어지는 페체네그와의 전쟁 당시 승기를 잡아 진군하던 아르콘토풀레 병력을 페체네그 부족이 역습하여 포위당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르콘토풀레 부대는 패주하는 대신 그대로 대열을 유지하고 적의 돌격을 그대로 받아내었다. 2000명의 부대원 중 300명이 사망했지만, 그 덕에 페체네그족은 로마인들의 전선을 무너트릴 수 없었고, 꽁무니를 뺄 수 밖에 없었다. [[분류:동로마 제국]][[분류:병과]][[분류:병과/고대~근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