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attachment/arras_1940_may.jpg]] [[영어]]: Battle of Arras [[프랑스어]]: La bataille d'Arras [[제2차 세계 대전]] 초반 [[프랑스 침공]] 당시 [[프랑스]] 북부의 아라스(Arras) 일대에서 벌어진 [[전차]]전. [* 아라스 지역은 1차 대전 당시에 아라스 전투라고도 불리는 제 2차 솜전투가 벌어진 지역이기도 한데, 한 전장에서1차대전 참전용사들의 자식뻘인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가히 한 지역내에서 2세대에 걸친 2번의 대학살극이 벌어진 셈이다. ] [[프랑스]] 전역에서 [[영국군]]과 [[독일 국방군]]이 벌인 거의 유일한 전차전이지만, 정작 공격당한 부대는 독일 기갑부대에서도 전차가 별로 없는 후방지원부대였으므로 전차전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벨기에]]의 숲을 통과해 온 [[독일군]]의 기습으로 인해 벨기에-[[프랑스]] 방면의 영프 [[연합군]]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대부분의 부대가 패닉 상태에 빠져 전선이 걷잡을 수 없이 붕괴되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 원정군 직할 제1전차여단[* 영국군에는 2가지의 전차여단이 존재했는데, 하나는 기갑사단 직할 전차여단이었고 다른 하나는 야전군 직할 기갑여단이었다. 야전군 직할 전차여단은 보병전차, 사단 직할 전차여단은 순항전차를 중심으로 하는 차이점이 있었다.]은 임무 특성상 거의 전투를 치르지 않아 온전한 전력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잔존한 [[프랑스군]]의 [[샤르 B1 bis]]를 주축으로 하는 전차부대와 협동으로 아라스에서 독일군에게 역공을 계획했다. 프랑스군의 전차들이 사전에 약속한 작전시간까지 전개되지 않자 [[영국군]]은 예하 2개 전차연대[* 영국군의 연대는 사실 대대급 부대이다. 이는 각 연대 예하에 다수의 대대를 두고 이 대대들을 모조리 쪼개서 몇 개의 대대를 모아 1개 여단을 만들어 전투에 투입하는 영국군의 전통적인 부대편성 방식 때문에 생긴 일이다.] 단독으로 공격을 개시하여 시골 마을인 아라스에서 독일군의 보급부대를 급습, 이를 유린했다. [[파일:attachment/GB-Infantry-Matilda1-Mk2.jpg]] 독일군의 대전차포로는 [[마틸다 전차|마틸다 보병전차]]에 흠집도 낼 수 없었다. 결국 [[88mm 대공포]]를 부랴부랴 끌어와서 이 전차를 파괴할 수 있었다. 훗날 독일군은 독소전에서 이와 비슷한 KV 쇼크를 겪게 된다. 어쨌든 제1전차여단은 [[88mm 대공포]]와 기타 포병이 집중된 방어선에 돌격하다가 전차의 1/3을 잃고 패퇴했으며, 이어서 뒤늦게 날아온 총 300회에 달하는 [[슈투카]] 급강하폭격기의 맹폭을 몇 시간 동안 계속 당한 끝에 최종적으로는 전 차량의 2/3을 상실하는 심각한 피해를 입어 완전히 와해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러한 반격은 당시 쾌속으로 진격하던 [[에르빈 롬멜]]의 7기갑사단에게 큰 공포심과 쇼크를 주었다. 보급선이 끊기고 적진에 고립된 전차부대가 [[전멸|어떻게]] [[끔살|될지는]]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롬멜은 그 충격에서 금세 벗어날 수 있었지만, 이때의 위기감이 상급부대로 전파되면서 결국 영국군 및 프랑스군의 전면 반격 가능성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돌아보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는 지나친 성공에 뒤늦게 긴장하고 있던 [[아돌프 히틀러]]에게 갑작스러운 역전에 대한 심각한 두려움을 불러일으켰으며, 훗날 [[됭케르크 철수작전|됭케르크]]에서 연합군을 섬멸하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당시 독일 국방군 육군의 전력이 영프 연합군보다 열세였기도 했다. [[분류:제2차 세계 대전/전투]] [[분류:지상전]] [[분류:1940년 전투]]